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공기의 결을 따라 피부에 바람이 자라고, 다른 바람이 와서 부딪쳐 소용돌이친 자리 눈이 생긴 길고양이는 허공에서 빠져나온 바람의 파편 땅에 내려놓지 못한 발자국이다. 버림받은 기억으로 발톱을 키우며 걸어온 길을 꼬리에 감으면 생계를 넘어가는 낮은 길목인데, 바람이 가시처럼 일어서고, 길고양이는 보이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자식, 허공에서 떨어진 호흡이다.

 

물방울 위에 물방울이 겹쳐 보인다. 봄빛의 청아함인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건 왜 이리 아름다운 건지, 숲속을 떠다니는 정녕, 미세한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마음 흔드는 표정을 감출 길이 없다. 갈색에서 백색으로 변하는 늙음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무엇인가 기억해보는 시간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다만 내게 문제는 없었는지. 노을빛을 바라보면서 지나가는 겨울을 느끼지만, 새로운 바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가을이 잠시 머물다 서둘러 지나가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을볕에 중독될까봐 그러는 걸까. 그래서 그러는지 우린 그저 가을이 흘리고 간 이삭 여남은 개만으로, 기긴 겨울밤을 지새우라는 뜻인지, 지난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풀들이 갈색에서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쌀쌀해진 바람에 서걱거리는 풀 위로 떨어지는 순한 햇빝 한 줌이 어느새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간, 한여름의 뜨겁던 햇볕과 비바람을 견디고 제자리에서 몫을 다한 가을 끝자락 그리고 이 겨울은 그리고 봄은 정말 아름답고 경건하며 위대하다.

 

봄 구름처럼 둥둥 바람 드는 마음을 도처에서 마주친다. ‘바람들은 어쩌자고 자꾸 와서 흔드나높푸른 바람이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가슴을 싣고 먹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사이를 연일 지나간다. 봄은 화려한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이 봄날 흔들리는 게 남자뿐이랴. 아마 여자들도 날마다 새 바람을 넣은 햇살과 밤 사이를 헤치고 다니느라 하늘을 자주 올려다볼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 데를 한참씩 바라보기도 한다.

 

봄이면 그렇게들 간절해지는 것일까? 놓치고 온 것만 아니라 바람을 따라나서면 무엇이든 만날 것만 같은 마음도 더해지나보다. 그런 날 눈부시되 쓸쓸한어느 바닷가, ‘갈대밭 사이 황금비단앞이면 더할 나위 없으리. 그런 바닷가에서 그리는 이십 대, 어느 한 시절 마음이 와서 울던 곳!’ 옛 마음 다시 펴서 깊이 젖고 싶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봄날!

 

연초록 풀잎, 황금빛 물결의 시대도 지나고, 쓸쓸함이 왔는가. 그건 아니다. 왜 그러냐고, 그대는 묻겠지. 그건 눈에 보이는 세계일 뿐. 환상적 풍경은 이곳에서도 계절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건 그 안에 숨어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때문이고 아직도 우리가 그들을 찾지 못했고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른 풀밭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알록달록한 종다리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은 서로가 통하는 동화적 세계다. 그 나라에는 파란 풀잎속에 들어가 꽁꽁 숨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 어른들은 하루빨리 그 아이를 찾아 그들의 초롱초롱 눈망울에 눈을 뜨고, 그들의 노랫소리로 귀를 씻어 다시 가슴 뛰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한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라 하고, 시심(詩心)은 동심(童心)이라 했다. 가을이 와서 황금물결 일 때면 풀밭의 아이들은 잠을 자고, 풀밭이 그들에게 비단 이불을 깔아주고 햇살을 덮어준 것이다. 그들은 이제 곧 봄이 오고 다시 종다리 높이 날아 풀잎 피어날 때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알록달록 종다리 잡아 그 작은 새의 가슴에서 흰 구름 꺼내 뭉게뭉게 하늘로 날릴 것이다. 그리고 풀잎 속에 들어가 숨어 있을 것이며, 그렇게 아이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동화의 나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대 삶의 즐거움이 있는가? 시간은 흘러 푸르던 나뭇잎들도 어느덧 사라지고 외로운 이들의 어깨 위로 그림자 내린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며 아쉬워하겠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거기서 삶의 희로애락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래서 삶은 더욱 신비롭고 숭고하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삶의 비망록이자 영혼의 여행기이다. 젊을 때 아프리카를 여행한 그는 자연 속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경험하고 자신을 구속해온 도덕적, 종교적 윤리와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욕망과 본능만이 우리의 길잡이라며 모든 허위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삶을 마주하라고 한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고 부단한 유동성을 뚫고 영원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던지는 자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며, 행복은 오직 순간 속에 있다고 노래한다.

 

젊은이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순응이다.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답습하고 따르는 것은 정체와 퇴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스스로의 삶을 자율적으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가치나 제도에 안주하거나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어진 시스템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때 세계는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이며, 행복은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만 손을 잡아준다. 그러므로 긍정적 에너지로 삶을 향유해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태안미래
저작권자 © 태안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