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칼럼
류수남 칼럼

2023계묘(癸卯) 토끼년(年)은 견리망의(見利忘義)로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더럽고 치사한 토끼년(年)이 살다 떠난 자리에 용년(龍年)이 앉았다. 속고 사는데 익숙한 민초들이 갑진용년(甲辰龍年)에 부탁한다. 견리망의(見利忘義)에 실망한 우리를 값진 삶을 살수있는 값진용년(用年)이 되겠다고 약속할 것을 부탁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구습(舊習)과 이기주의는 타파하고 이타주의(利他主義)가 뿌리내리는 값진 용(用)년이 되겠다고 말이다. 용년(龍年)은 묘년(卯年)이 덮고 잤던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침구를 버려라. 
버리지 못하면 / 낙엽송(落葉松) / 고목(古木)을 / 말없이 / 쓸어 안고 / 울고만 / 있네/(후략)라는 배호의 안개낀 장춘단공원의 노랫말처럼 될 수도 있다. 동녘의 해는 동창(東窓)만 밝히는 게 아니다. 서창(西窓)도 훤하게 한다. 
우선 얼굴이 안 보이는 전화소통부터 생각해보자. 공직자를 포함해 전화를 이용하는 모든 이가 기관에 하는 전화는 민원전화다. 민원인의 씨(種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민원인이요. 잠재적인 장애인이요. 잠재적인 소비자다. 속고 사는데 익숙한 민초들은 공직자들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감동한다. 공직자의 말 한마디와 전화 한 통은 민원인의 천근(千斤) 발길을 깃털같이 가볍게 할 수도 있고. 깃털같이 가볍던 발길을 천근(千斤) 무거운 발길이 되게 할 수도 있다. 
민원인의 전화는 술밥(酒飯)을 달라는 전화가 아니다. 민원해결을 위한 전화다. 또 출장과 회의는 할 수 있지만 종일 회의하고 다음 날은 쉬는가를 묻고 싶다. 해 뜨는 서산과 살고 싶은 서산과 지금보다 더 좋은 태안, 그리고 시민이 행복한 성남이 되려면 공직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사고(思考)가 바뀌어야 한다. 서산은 해가 뜨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태안은 고소·고발이나 지상전보다는 대화를, 그리고 성남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게 마음을 열어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주위가 변하며, 주위가 변하면 주민이 행복하다. 
그래서 무능한 간부보다 유능한 주무관을 찾고, 무능한 다선(多選)보다 유능한 초선(初選)을 찾는다. 모든 다선(多選)과 모든 간부(幹部)가 무능하고 불친절 한 것은 아니다. 유능한 숫자가 적을 뿐이다. 해뜨는 서산과 지금보다 더 높아지려면 시장 군수를 보좌하는 공직자의 사고부터 바꿔라. 지자체장의 책임은 무한책임이지만 자동차의 네비 같이 모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조직과 지역과 주민을 바로 보는 보좌가 필요한 것이다. 굉음(轟音)이 끊이지 않는 태안군은 많은 생각을 해라. 
상사 이기는 부하는 없지만 지근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은 선출직들보다 지역과 주민을 보는 안목을 더 키워라. 희미한 흔적(痕迹)보다 선명한 족적(足跡)을 남겨라. 백화산이나 옥녀봉만 보지 말고 팔봉산과 도비산. 그리고 가야산과 무학대사의 숨결이 담긴 간월암도 봐라. 역간척사업을 말하는 태안군은 많은 생각을 하라. 오랜 습관에 젖었던 서산 전화안내 주무관들의 혁신(革新)도 봐라. 필자의 건의에 수용전화를 했던 이완섭 시장께 값진 용(用)년을 맞아 값지게 쓰이는 용(用)의 전화에 감사한다. 
습관에 젖은 공직사회는 외부전화에 수신자의 이름을 밝혀라. 당직실이라고? 당직실 누구인가? 혼자가 아닌 당직실에 누구란 말인가?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3.1절과 8.15같은 국가행사는 국가조직인 지자체에서 주최하고,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자들과 관변단체 임직원들만이라도 자가용과 관용차량에 차량용 태극기를 게양하고 운행하면 어떨까? 
또 날자를 정해 노인정과 복지관 또는 타기관의 찢기고 탈색된 깃발을 교체하라. 백색 깃발이 탈색되고 찢기면 무당집 깃발로 혼동한다. 소식지는 기고자의 사진(寫眞)을 게재하고, 지자체장의 이목구비(耳目口鼻) 역할을 하는 공보실의 등화(燈火)와 소등(消燈)은 청내에서 제일 늦게 하고 제일 일찍 하는 부서임을 알라. 
또 관내 석비(石碑)의 퇴색(退色)된 글씨는 선명하게 하라. 진정으로 해 뜨는 서산을 원한다면 시민사회와 공직사회를 포함한 각(各) 위원들의 사고가 먼저 변하고, 위원회는 생업과는 무관한 주민과 대전, 서울, 인천 등지에 거주하는 안목 있는 출향인도 일부를 위촉하라. 
그러면 이해관계와 조석(朝夕) 상대하는 체면 때문에 함구하는 일은 없다. 유권자가 아니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향에 관심 있는 간접유권자를 무시마라. 낮은 자세(姿勢) 높은 봉사(奉仕)자의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없는 것을 생각해보자. 사생활 보호라는 주장은 이해가 어렵다. 
시장의 사생활 보호는 무시해도 되어 전화번호를 밝히는가? 공직자의 사생활은 보호해야 하지만 이를 전제하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 공직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려고 전화하는 주민은 어디에도 없다. 공직자가 아닌 기업체 사원도 명함에 핸드폰 전화번호가 없는 임직원이 없다. 동창에 밝은 햇빛이 비치게 하려면 창가의 나무를 없애듯 주민을 괴롭히는 민원서류는 간소하게 개혁을 하라. 
또 부시장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는 전화를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되 사정이 여의찮으면 다음 날에 해라. 세월만 낚는다는 득과차고(得過且過)와 순서무시라는 월진승선(越津乘船)의 오해를 받지 말라. 해 뜨는 서산, 더 높이 나는 태안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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