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나는 이유 없는 낙천주의자, 따지고 보면 대책은 없지만, 무책임하지 않은 정신만은 소유하련다.
기댈 곳 하나도 없는/ 서늘한 벽죽에 그려진 설움에/ 깊은 밤 나는 너를 만나러 떠난다/ 막소주 한 잔 따라놓고/ 세상살이 그런 거라 말해보지만/ 가로등 없는 캄캄한 거리, 그 속에 들어가면 온갖 촉수가/ 내 몸 언저리 쉴 새 없이 두들기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 귓가에는 시원한 허밍 소리가 일렁인다.
길에서 소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 그리워하지만/ 순결함 보일 수 없어 아프기만 한/ 답답한 현실을 견뎌내는 건/ 기댈 곳 하나도 없는/ 서늘한 내 안의 설움이어라/ 이제 사상은 빛도 소음도 모두 사라지고/ 텅 빈 진공 상태처럼 시간조차/ 저 멀리 삼켜버린 그리움일까/ 아픈 것은 다 아픈 것이 아닌데/ 이럴 때 겨울비라도 내린다면….
어제 서울에서 팔십이 넘은 고종사촌 누님이 태안 버스를 기다리던 중 저녁 대용으로 불고기 햄버거를 드시다가 내가 생각나서 한 개를 사 왔는데, 저녁을 먹은 시간이었기에 보온 밥솥에 넣어두었다가 아침 대용으로 먹으려 했습니다. 턴테이블에 LP음반을 올려놓고, 커피 한 잔을 마주한 채 밥솥을 열어보니 아래쪽은 완전하게 수분이 점령하고 채소는 거의 익은 채, 그 모습이란 정말 처참했습니다. 그나마 위쪽이 온전하여 서양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려니 이게 도통 적응이 안 되는데 다르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 끼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정성이 앞서야 하겠지만 어쩌면 고단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먹느냐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아서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입니다만, 저는 살기 위해서 먹는 편이라고 말하렵니다. 산다는 것, 어떤 주제로 나아가느냐가 문제인데, 수많은 직업군에서 자신의 일을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진 않지만 긍정적 시각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솔직히 저는 이유(옳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문하고 낙천적으로 삽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진 않구요. 바꿔말하면 대책 없이 사는 건데 다만, 무책임하게 흘러가는 인생살이를 원하지 않기에 정신만은 초롱하게 곧추세우는 겁니다. 매년 그렇듯이 10월 31일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가수 ‘이용’의 ‘10월의 마지막 밤’을 수없이 듣게 됩니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도 아직 끝나질 않았고, 지난 여름 수해 피해민도 그렇습니다만, 다소 촌스러운(?)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아무리 거지같이 끝난 인연이라도 코끝 찡한 기억이 되게 하는 거죠. 참 착한 노래입니다.
달빛 아래, 가을 산 계속을 타고 흐르는 이용의 노래는 내게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밤새도록 물었죠. 하지만 단언컨대, 난 10월의 마지막 날에 음탕한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진정.
가을이 절정이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싯구가 있었습니다.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인데, 시인이 한 잔의 술을 마시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 ‘버지니아울프’를 당시 저는 늑대라고 생각했었죠. 여류작가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저도 그 폼나는 늑대처럼 평생 ‘온리 울프’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었습니다.
가수 박인희는 박인환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도 환상적인데,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숨 넘어갈 듯 이어지는 싯구를 따라 읽다 보면 막연한 그리움에 진짜 숨이 막혀옵니다. 당시 식민지와 전쟁을 거쳐 흙바닥까지 황폐화된 나라에 도대체 호수가 어디고, 벤치는 또 뭐였을까. 그래서 같은 시대의 시인 김수영은 박인환을 ‘그저 폼잡기에 급급한 시인’이라고 비웃기도 했었죠. 
사실 박인환의 시는 많이 뜬금없습니다. 록 그룹 「부활」 김태원의 노래가사처럼 도무지 맥락이 애매한 이미지의 연속일 겁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또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자꾸 박인환의 시가 파편처럼 기억되는데, 김수영의 시는 의도해야만 기억되지만, 박인환을 중얼거리면 그가 던지는 실존의 질문을 반복하게 됩니다. 통속할 건가, 외로울 건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갈 건가, 이젠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건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겠지요. 아 가을, 그리고 겨울.
단 한 번의 인연이지만 채곡채곡 가슴속에 새기고 묵혀 두었던 감성, 그리고 연민, 존중, 새겨두었던 사랑, 그나마 그것을 10년 만에 끄집어 내어 우여곡절 끝에 소통된,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감성의 그녀를 떠올리며 마음 담아보지만 달리 표현할 길 없어도 어찌하겠습니까. 그래도 초겨울, 이것이 인생살이라면 너무나도 가혹하지만 그 형벌 고스란히 받아야겠지요. 그것이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래도 가슴이 시립니다. 아마 가슴을 쓸어내리라고 그러는가 봅니다만, 아니 그만하라고, 그리고 절제하라고 가슴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 겨울을 그와 몇 번(?)이나 더 맞이할지 내겐 또 그에겐 궁금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러진 가을, 그리고 겨울, 정말 아쉽기만 합니다. 이젠 더 추운 겨울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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