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칼럼
류수남 칼럼

내가 누군가? 오(吾)등은 자에 정치인(政治人)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지난해 8,9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해 4년 임기에 1년이 지난 나는 누군가? 나는 왕관(王冠)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는가? 나는 가슴에 단 배지 값을 하고 있는가? 
나는 주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인가, 아니면 생계형정치꾼인가? 나는 사감(私感)정치를 하는가? 책임(責任)정치를 하는가? 나는 보복정치를 하는가? 오기정치를 하는가? 나는 소통정치를 하는가? 불통(不通)정치를 하는가? 존경한다는 주민 앞에 답을 해보라.  
또 네 탓은 많은데 내 탓은 왜 없는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는 칼(刀)이 없다. 대장동에는 대장(大將)이 없고, 정치권은 국민이 없다. 대화보다는 막말이 많은 것을 어떻게 보는가?  
지역에 노인(老人)은 많은데 어른이 없고, 정치꾼은 많은데 정치인이 없으며, 말은 많은데 진실(眞實)이 없음을 아는가? 또 등대(燈臺)는 있는데 불빛이 없고, 오기(傲氣)는 있는데 이해가 없음을 아는가?  
민원(民願)은 늙어 원성(怨聲)을 낳고, 원성(怨聲)이 늙어 소송(訴訟)이 되니, 민심은 흉하고 사감(私感)소리가 웬말인가? 지금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이해와 소통이 숨 쉬는 화합(和合)이 필요하다. 
순(順)둥이 계묘(癸卯)토끼 년(年)을 악명 높은 계묘년 소리가 없게 하자.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승한다니 순둥이 토끼가 승하게 하자. 고소·고발 보다는 소통과 이해로 화합을하자. 이는 지도자의 덕목이자 주민의 도리다. 
지역을 좀먹는 모함(謀陷)과 갈라치기를 없애자. 웃음석인 대화(對話)는 없고, 고성(高聲)과 막말, 억지와 소송(訴訟)이 판치는 현실을 우리다(多)같이 생각해보자. 고소·고발과 침소봉대의 반대보다는 대화가 우선인데 선출직들의 생각은 어떤가? 
부석사(浮石寺)의 목탁소리와 간월암(看月庵)의 불빛이 서린 서산(瑞山)과 사해(四海)를 호령하는 백화산 흥주사의 목탁소리가 들리는 태안(泰安)군 선출직들의 생각은 어떤가? 삼전도 굴욕(屈辱)같은 비운(悲運)의 역사가 숨 쉬는 남한산성 밑의 성남시도 예외가 아니다. 
물밑이 얕으면 흙탕물이 인다지만 이들 지역은 너무 심하다. 두 조직이 한 몸인 의회와 집행부는 힘겨루기나 이로 오해를 받지마라. 서 있는 위치는 달라도 주민이라는 정상을 보는 안목은 같지 않은가? 바다에는 배(船)질이 있다면 공직사회는 갑(甲)질이 있고, 사회에 도둑질이 있다면 정치권에는 말질(舌戰)이 있지만 두 조직만은 싸움질을 하지마라. 
선출직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지명의 유래를 먹칠하는 태안과 양반 골이라는 서산의 선출직들은 쌈질하지 말고 주민과 지역을 봐라.  
모든 이들은 자기 반성이 우선이다. 정치는 양심과 책임으로 하는 것이고, 주민은 주민 의무를 다 했을때 소리를 내는 것이다. 
현직들에 묻는다. 본인들은 야인시절 현직과 정당을 비판하고, 현직인 본인들은 왜 남의 비판을 싫어하고 불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의 말하기는 찬물 먹기보다도 쉽다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지역과 조직이 육칠월 장마철의 맹꽁이소리처럼 시끄러운데 말 한 마디 못하는 조직의 수장은 반성을 하라. 그리도 할 말이 없는가? 
내가 최고라는 생각이 있다면 버려라. 많은 이들이 보고 있으니 화광동진(和光同塵=모두가 어울리는)이라는 성어를 안고 살아라. 김기두 의원이 페북에 올렸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특정인이 아닌 선출직 모두에 해당함을 알라.  

SNS 기사보내기
태안미래
저작권자 © 태안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