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칼럼
류수남 칼럼

옛사람들은 지금과는 달리 오를 수 없어 쳐다만 보고 넘을 수 없어 바라만 봤던 보릿고개 밑에서 조반석죽(朝飯夕?)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다. 
그리고 더위를 벗 삼아 가꾼 들판의 곡식이 누렇게 익고, 텃밭의 콩잎이 황금색으로 변할 때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며 안위(安慰)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설움 중에 제일 참기 힘든 설움은 배고픈 설움이라며, 수염(鬚髥)이 대자(五尺)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했다.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단칸방에 사과궤짝으로 부엌살림을 꾸리는 시대가 아니다. 밭머리에 토담집 지어 자식들을 분가 시키던 시대도 아니다. 이제는 고층아파트에 살림을 내고,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一回)용 시대다. 지금은 옛날과는 달리 버리는 것이 의류와 가재도구요, 음식이다. 그래서 양심은 어디가고 쓰레기만 쌓이나 하는 탄식의 시대다. 
옛사람들은 논두렁과 밭머리 흙 묻은 손으로 했던 약속만큼은 지금의 법전(法典)처럼 신뢰했다. 
옛사람들이 바라던 한가위를 지금의 희망에 비유하면 태안군 교환주무관과 이완섭 서산시장만 같으라고 하고 싶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태안군 교환주무관의 친절을 시정에 접목시켜 친절한 교환업무로 바꿨다. 그리고 주위의 건의를 귀담아 실천하고, 해 뜨는 서산건설에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부하의 잘못은 크고 작음을 떠나 모두가 내 탓이라며 시정하는 이완섭 시장에 박수를 친다. 누구를 무시하고 목에 힘주는 오기보다는 화합이 숨 쉬는 이완섭의 소통에 서산시민들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태안군청 교환주무관의 친절은 태안군 공직자들은 물론 전국 지자체 교환주무관들이 본받아야한다. 
공직자의 친절한 말(言)한마디와 성의가 들어있는 전화 한통은 민원인들의 천근(千斤) 발길을 깃털같이 가볍게 하고, 깃털같이 가볍던 발길을 천근 발길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조상님들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직자들에 더도 덜도 말고 이완섭 시장과 교환주무관만 같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무식한 사람은 되지 말자. 
힘 있는 사람에게는 아부하고, 힘 없는 사람은 무시하며, 오기(傲氣)와 보복으로 보이는 폭군(暴君)행정과 폭군의정은 하지말자. 또 이마에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주먹질하는 것도 삼가하자. 복도에 자리깔고 소리지르는 의정과 행정도 하지말자. 우리는 일구이언(一口二言)과 억지, 거짓과 변명, 내로남불과 네 탓이 판 치는 세상이 신물 난다. 
특히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존경(尊敬)과 봉사의 참뜻은 땅속에 묻힌지 오래다. 지금은 품팔이도 봉사(奉仕)고, 혈세인 보조금은 눈먼 돈이라는 시대다. 그래서 태안군 교환주무관의 친절과 이완섭 서산시장의 포용이 주민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친절과 배려, 소통과 의리는 옛사람들이 기다렸던 한가위만큼이나 기다려지는 시대다. 그래서 칭찬과 배려가 인색(吝嗇)한 현실에 이완섭 서산시장과 태안군 교환주무관의 고마움이 빛나는 것이다. 
우리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옥수수에는 옥(玉)이 없으며, 곰탕에는 곰(熊)이 없고, 정치권에는 쌈질만 있는 세상을 산다. 또 내 탓은 없고 네 탓이 판치는 세상에서 산다. 
우리는 지금 억지와 몽니, 오기와 이간질이 판치는 세상에서 산다. 정치권과 사회를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왜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있나? 왜 화합(和合)은 없고 반목(反目)만 있나? 왜 대화(對話)는 없고 송사(訟事)만 있나? 이는 성남시를 포함한 대부분 시·군들도 예외가 아니다.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라 했다. 오호애재(嗚呼哀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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