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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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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얼이 숨쉬는 태안제129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 즈음하여
태안미래  |  t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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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6.01  09: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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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소방서 오경진 서장

1894년 갑오동학 농민혁명은 참으로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산봉우리 중 하나이다. 비록 좌절과 실패 그리고 유혈로 끝났지만 그 정신은 항일 의병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나라를 잃은 뒤에는 3·1운동 및 독립군 무장투쟁으로 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4·19의거와 5·18광주민주항쟁, 6·10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에 수많은 동학 지도자들이 주역을 맡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런 참사(慘事)가 다시는 없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글을 쓰는 것이다.  
동학 농민 혁명사상은 인본주의 사상이었고, 백성을 하늘처럼 모시는 인권존중의 사상으로 상하귀천이 없는 자유 평등, 스스로 일어서는 자립정신 이었으며 외세에 의존 하지 않는 자주 독립 정신이었다.
동학농민혁명 제129주년을 맞이하여 태안 동학 농민 혁명의 얼을 계승하는 뜻깊은 행사(제5회 국가기념일)가 지난 5월 11일 중앙로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갑오동학 농민혁명이 촉발하고 고양시킨 민족의 정기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었다. 우리 태안은 동학 농민 혁명의 북접 최초의 기포지요 발원지였고 최후의 항전지였다. 그 동안 우리의 역사는 지배자인 왕조 또는 봉건 지배 계급의 역사만 있었을 뿐 백성의 역사는 없었다. 이곳 태안은 몇 안되는 민초의 역사를 써내려간 곳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질 뻔 했던 우리 지역의 동학농민 정신이 시대 정신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우리의 긍지와 자랑으로 2004년 2월 9일 110년만에 국회에서 통과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동학농민혁명군과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동학농민 혁명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안 지역은 동학농민 혁명의 발원인 기포지(起包地)로  원북면 방갈리 (현:태안화력발전소 부지), 이원면 포지리의 교세가 특히 강했으며 그리고 남면과 안면도 등지이다. 
외부에서 쉽게 접근하기 힘든 지리적 조건이 이곳 태안을 마치 카타콤(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지하묘지)처럼 교인들을 보호해 준 것이다.
내포(內浦)지방의 예포(禮包=예산지방의 포)와 덕포(德包=덕산지방의 포) 소속 북접 동학교도들은 예산·덕산을 중심으로 당진·홍성·서산·태안 등지에서 동학도소(東學道所)를 설치하고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수많은 민중들도 동학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학 세력이 날로 팽창하여 가자 당황한 태안부사 신백희와 별유사(別諭使) 김경제는 동학교도를 모두 진압할 목적으로 동학 지도자 접주와 간부 30여 명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으며, 10월 1일에 태안관아에서 모두 처형하기로 결정한 회의 내용을 몰래 엿들은 이방 김엽춘이 즉시 예포에 알렸으며, 대접주 박희인은 급히 회의를 열어 동학농민 혁명군을 소집하여 태안으로 진군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라에서는 공명첩(空名帖)을 발행하여 매관매직(賣官賣職)하고, 부패한 벼슬아치들은 상납했던 본전을 보충하기 위해 농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수탈했다. 
한해 갖은 고생을 해가며 농사를 지어도 겨우 소작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춘궁기에 비싼 장리쌀을 얻어다 먹으며, 지주들은 흉년이 들어도 소작료를 그대로 받고, 소작인과의 금전거래에도 고리대금으로 고혈을 빨아 먹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의 참담한 현실은 산 자가 죽은자를 부러워하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동학이 민초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동학의 종지인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그러므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事人如天)”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 평등 사상이었다.
이 “사람이 곧 하늘이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자유평등사상을 위해 수천년간 억압받고 핍박받던 민초들이 생존을 위해 그리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어난 것이 바로 갑오동학 농민혁명이었다.
관군이 진압하지 못하자 청군과 일본군이 난리를 평정한다는 구실로 국내에 들어왔다. 이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외세에 나라를 판 것이나 다름없는 암군 고종 및 민비 정권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관군과 외세는 각종 신무기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동학군을 가차없이 깨트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 세력은 사냥감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살기 등등한 관군과 일본군은 혈안이 되어 미친 듯이 날뛰며 동학농민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몇 달 동안 전개 마을마다 숨어있는 동학농민군을 샅샅이 색출하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총살하거나, 산 채로 생매장을 하고,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만행을 자행했다.
특히 백화산(白華山) 중턱에 있는 교장(絞杖)바위에서는 수백명을 붙잡아다가 10여 명씩 포승으로 한 줄씩 묶어 목을 졸라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백화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수백 명의 동학 농민군은 근흥면 수룡리토성산(吐城山)으로 숨어들었다. 관군과 일본군들은 동학농민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가담했던 자를 철저히 색출하는데 주력했다. 
살육의 현장인 토성산은 도살장을 방불케 했다. ‘사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 ‘아이고 어머니 나 죽는다’ 울부짖는 소리,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소리와 총소리가 요란하게 진동하고, 화약 냄새와 죽은 시체에서 피어오르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글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참상은 인간으로는 도저히 눈을 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고 전한다.
비록 동학군은 처참하게 패배하였지만 동학은 살아남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흐름이란 우주 자연의 질서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세간의 현상 즉 일체사물이 모두 일종의 흐름이다. 모든 것은 영원한 흐름 속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물의 흐름이나 불이 타는 순간에도 변화하는 중에 있는 것과 같다.
자연계나 인간계나 간에 무상하고 변화가 끝이 없지만, 범부들은 무상한 면을 상주(常住)하는 것처럼 보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음으로, 본인도 모르게 고통과 죄악의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을 깨닫지 못하고 세속의 부귀영화 허상에 사로잡힌 부패한 집권세력이 나라와 백성들은 안중에 없었다. 그것이 고통을 낳고 끝없는 수레바퀴를 굴린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그 수레바퀴를 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몸부림을 위해 수많은 민초들은 하나뿐인 생명을 초개처럼 버렸다.
체포된 동학군 포로들은 제대로 된 참수검이나 총탄이 아닌 작두로 짚단처럼 목이 잘려 처형되었다. 전사로서, 군인으로서의 대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긍지는 꺾이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것은 위대한 희생이었다.
그들은 정권을 잡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었다.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가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오직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나라의 앞날을 바로잡기 위한 일념으로 몸을 던지고 산화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지으면서 책의 서두에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목민관은 자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의 목민관(수령=군수)이 잘못하면 수많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세상 다를바 있겠는가. 모든 힘이 있는 위정자들이나 공직자들이 연일 부정부패와 관련 되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129년 전에 있었던 갑오동학 농민혁명을 뒤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이 갑오동학 농민혁명을 우리 역사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바라보는 진정한 모습으로 역사 발전이 이룩될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갑오년의 그 혁명정신은 오늘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또 앞으로 계속 멈추지 말고 진행되어야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를 애써 외면하고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려고 몸부림치는 민족의 앞날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태안의 동학 기념관을 지나칠 때마다 동학 지도자들의 준엄한 외침이 본인을 전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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