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향토문화연구소 소장 박풍수
태안향토문화연구소 소장 박풍수

태안읍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몇 번인가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오고가는 도중 안면읍내의 모 초등학교에 플래카드(펼침막)가 걸려있어 읽어보니,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존경해야한다’는 글귀였는데, 이례적으로 꽤 오랫동안 걸려있어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졌다. 나이어린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쓰신 ‘욕존선겸’(欲尊先謙)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나는 이 글귀를 복사하여 거실에 걸어놓고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갈등이 심했다. ‘욕존선겸’을 풀이해보면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5-6년 전부터 태안읍내에 위치한 두 곳의 단체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곳은 순수 문학지를 발간하는 단체이고, 또 다른 곳은 태안군내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발굴하여 글로 엮어내는 단체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한 단체의 책임자가 되었고, 매년 연말이면 태안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발굴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는 막중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일은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다.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부끄럽지 않은 2021년 제 33호를 내기 위해서 관행을 탈피하여 많은 분들에게 원고청탁을 했다. 염려를 하는 회원도 있었지만,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태안군내의 요직을 거치신 분들에게도 원고청탁의 공문을 보내드렸다. 향토사(고향의)와 연계되는 글과 글의 규격과 분량도 한정시키고 글을 싣는 순서도 글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싣겠다는 내용을 정확히 표기하여 공문으로 보내드렸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다. 공문을 보내드린 후 어떤 분이 글을 싣는 순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다. 자세한 설명을 드려 이해시키는 고충을 겪었다. 얼마 후 부탁드린 분 중, 한 분의 글이 도착하여 열어보니 우리단체에서 제시한 세 가지 조건 중에 한 가지도 부합되지 않아서 부득이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기고문을 돌려받은 분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터이지만 필자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세 가지 조건을 정확히 제시했는데 이를 간과하고 보낸 글을 보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필자 개인이 아니고, 단체장의 명의로 정중하게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분들이 회원으로 구성된 우리 단체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떤 분은 예의 바르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글을 못 보내니 다른 분들의 글을 실어달라고 하여 다시 한 번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자기할 나름’이라는 말처럼 같은 문제를 대조적으로 대처하는 현실을 보면서, 왜 초등학교 교문에 표어를 오랫동안 걸어놓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태안군의 중심지인 태안읍에 나와서 활동하려니 많은 고충이 뒤따랐다.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나’를 내세우는 분들이 있어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만을 내세우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인격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치유가 되지 않는데 반해, 그들은 자기반성이나 잘못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도 없이 자못 당당하다. 태안군이라는 조그만 소 도읍은 인구가 6만 여명이 조금 넘어 무슨 일이 발생하면 3일이면 군내에 유포된다. 하여, 상호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유명인사일수록 그들의 살아온 족적이 본의 아니게 알려져 있다. 공무원 등은 일사분란하게 체계 속에서 그들만의 맡은바 일을 수행하지만, 직장을 퇴직한 분들이나, 나이가 드신 분들은 어떠한 제재가 없기 때문에 한 때 유행어가 되었던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는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단어가 돼버렸고 아마도 수 십 년이 흐르면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에 덧붙여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고자한다. 우리 주위에는 명예를 얻었다고 거만 떠는 사람, 좋은 학교 다녔다고 잘난 체 하는 사람, 재산이 많다고 재산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며, 재력이 많으면 못할 게 없다는 황금만능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현재의 사회 풍토가 그들을 받쳐주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변호사비용이 없어서 성의 없는 국선변호인의 변호를 받는가 하면, 재력이 많은 사람은 수 십 명의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하고, 또 전관예우라는 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수십억의 변호사수임료를 주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도는 세상이다. 헌법 제 11조 1항에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기되어있다. 정말 그럴까? 본인의 돈을 본인이 쓰는 데에야 할 말이 없지만, 없는 사람과 못 배운 사람들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안 된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특권층이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명언을 남긴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에게 근처의 땅을 많이 소유 하고 있는 부호(富豪)가 찾아와 ‘자기의 땅(地)을 밟지 않고는 사람들이 다닐 수 없다’고 하자, 한 참 동안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세계지도 한 장을 들고 오더니 ‘당신의 땅이 그렇게 많으면 이 지도위에 표시해보라’고 하자 그 땅(地)부자는 세계지도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얼굴이 붉어져서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벌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에 더하여 겸손을 더 한다면 후세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떨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백두산고 수하재(白頭山高 樹下在 : 백두산이 높다하지만 나무 밑에 있다)라 했다. ‘겸손한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사람은 자기 할 나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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