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 강원도 두메산골 평창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시대적 가난보다는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심순덕 시인이 31세에 어머님을 여의고 그리움에 사무쳐 쓴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의 구절구절이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든 불효자의 눈물샘을 고장내고 세파에 식어가는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노천명 시인은 ‘푸른 오월’에서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라고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찬란하게 읊조렸지만, 가난이 강물처럼 흐르던 시절에 오월은 보릿고개의 9부 능선으로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라고 진성 가수가 그 시절 어머님의 처절했던 가슴팍을 대신해 후벼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중에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무게야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만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울고 싶어도 마땅히 울 곳조차 없는 아버지들은 날마다 왜소해져 갈 뿐이고, 그들을 기다리는 건 해질녘 체념의 술잔이 전부였을 겁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기에 가족들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했던 아버지는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우는데 그 눈물은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눈물일 겁니다.

어머니, 엄마는 눈물을 동반하는 단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힘들고 괴로울 때면 어머니를 찾으면서 울게 되고, 군대 가면 어머니라는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나며 세 번 외쳐서 눈물이 나는 단어는 어머니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대개의 동물은 아버지가 없다고 합니다. 가시고기나 원숭이, 사자 등 일부일처제 생활을 하는 동물을 제외하곤 아버지라는 존재와 소임을 인지하는 동물을 찾기가 힘든데 인간만이 아버지의 희생과 보호가 영속되기에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파워가 제우스를 제외한 모든 신이 덤벼도 이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이제는 아버지들의 권위 상실로 그 추락의 속도가 날로 가팔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기둥과 주춧돌이 가족이라는 탄탄한 불멸의 보금자리를 형성하며 오월을 가정의 달로 올해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외로운 객지 생활에 간신히 적응하며 내 자신을 추슬러 갈 무렵 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비보에 무작정 어머님이 계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생활과 퇴원 후 용하다는 곳을 수소문해 헤매었지만 더는 차도가 없어, 낙향하여 살아보려고 보험회사 영업과 함께, 횟집에서 회도 썰어보고, 사료 가게에서 배달 업무로 파김치가 되도록 몸을 닥치는 대로 내몰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로 중풍으로 쓰러지신지 20년이 훌쩍 지나 86세가 되시는 어머님께서 “나는 괜찮으니 면회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며, 용케도 생일을 기억해 전화주시는 가녀린 음성을 듣노라면 오로지 자식생각밖에 모르시는 어머님의 한없는 사랑에 그만 그저 불효자의 서글프고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두 뺨에 흘러내립니다.

혹여, 부모님 중에 편찮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간의 저의 경험과 기운으로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쾌유를 빌어드리며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의 구절로 부모님을 그리며, 아픈 마음들이 치유되길 마음으로 깊게 깊게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태안군의 어르신들께서 계절의 여왕 오월의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코로나 걱정에서 벗어나, 건강과 행복만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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