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자치주>의 발자취를 돌이켜 살펴보면,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었고, 그 후 조선족의 인구가 200만 명으로 늘어나자 중국 정부가 조선족의 여망을 받아들여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승격시켰다.

중국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해 있는 <연변 조선족자치주>는 만주의 연길(延吉),도문(圖們),용정(龍井),돈화(敦化),훈춘(琿春) 등 5개시와 안도(安圖),화룡(和龍),왕청(汪淸) 등 3개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면적이 4만2700km2에 달하고, 한족(漢族),만주족(滿洲族),후이족(回族) 등 19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해방 전에는 간도지방으로 불리던 곳으로 한민족 세계 이주 역사상 유일한 자치주이다.

만주의 길림성(吉林省), 요녕성(遼寧省), 흑룡강성(黑龍江省) 등 동북 3성은 과거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영토로 조선시대 말부터 한반도에 거주하던 한민족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이주해 살던 곳이다. 특히 동북3성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독립투사들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 살면서 국내를 오가며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곳으로 청산리(靑山里)와 봉오동(鳳梧洞) 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정각사(正覺寺),진효공주묘(眞孝公主墓),서길성(西吉城),오동성(敖東城),팔연성(八連城) 등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고, 투먼강(圖們江),쑹화강(松花江),무단강(牡丹江),쑤이펀강(綏芬江) 등이 흐르며 문명을 발생시키는가 하면, 연길분지와 장백산맥 계곡에 전통마을이 많이 분포하여 우리 한민족의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조선족들이 대대로 물려온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와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어 인구가 감소하고 농어촌이 황폐화되고 조선족 학교가 많이 폐교되었다. 그래서 조선족자치주가 민족교육을 체계적으로 잘 실시할 수 없어 한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바람에 조선족자치주가 와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실제로 2010년 기준 중국 내 조선족은 190만 명으로 55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은데, 연변 조선족자치주 271만 명 인구 중 조선족은 80만 명으로 30%에 불과하다. 자치주 설립 초기인 1957년만 해도 65%에 달했다.

최근 조선족 20-30대 여성 3명 중 1명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가임 여성이 줄어들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11년도 외국인 주민현황>에 의하면, 조선족 여성으로서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거주하는 결혼 이민자 수는 총 5만3446명인데, 그 중 충청도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결혼 이미자 수는 총 3206명(대전 537명, 충남 1502명, 충북 1167명)에 달한다.

그래서 그런지 1996년부터 조선족 인구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 연변의 조선족 비율이 2020년이 되면 10%대로 떨어지고, 2030년이 되면 8.7%밖에 안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주 설립 요건에 따르면 소수민족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조선족자치주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50% 수준을 넘어야 한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족 청년들의 가치 기준이 돈벌이와 도시화에 빠지면서 민간기업 취직이나 도시 상업을 선호하고 있어 조선족 주류사회의 인맥이나 정치력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7500만 명 공산당원을 이끄는 204명의 중앙위원 가운데 조선족은 단 한명도 없다. 그리고 일부 조선족들이 한족과의 차별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한족으로 위장하여 취직을 하고 한족과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하고 있어 한족에 서서히 동화되는 바람에 이제 ‘조선족(朝鮮族)’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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