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술(57ㆍ근흥면 용도로ㆍ농업ㆍ사진) 근흥면의용소방대장이 호탕한 웃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신현술(57ㆍ근흥면 용도로ㆍ농업ㆍ사진) 근흥면의용소방대장이 호탕한 웃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바쁜 농사일로 아픈 아내 병수발로 또 이제는 마을을 위한 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 속 그가 입을 열었다.

“16년 전 아내가 쓰러졌습니다. 그때 아내 나이 고작 서른아홉 때였죠. 막막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지병으로 인천 길병원에 입원해계셨는데 어머니 대신 농사일을 돕던 아내가 원인도 모른 채 갑자기 쓰러진 겁니다.”

한참을 어둡고 깊은 터널에서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 남자. 지난달 25일 생활 속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할 줄 아는 신현술(57ㆍ근흥면 용도로ㆍ농업ㆍ사진) 근흥면의용소방대장을 마주했다.

“고향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내 이곳에서 살고 있죠.”

고향 근흥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자란 신 대장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난만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앞만 보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박윤옥(55)씨가 어린 두 딸과 아들을 남겨둔 채 무려 43일간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16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괴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신 대장.

“남들이 저를 보면 집안이 이런 걸 잘 몰라요. 밖에 나가면 내색을 잘 안하니까요. 왜 남에게 힘든 모습을 보입니까? 그저 웃으면 되는 것을.”

지금도 궂은 농사일로 몸이 불편한 아내를 수발하는 일로 온전한 시간을 쓰고 있지만 과거 아내의 원인모를 병세에 전국방방곡곡을 들쑤시며 다닐때가 더 힘들고 괴로웠다는 그.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된 사실은 심장종양으로 인한 뇌경색이었다. 지금도 한쪽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없는 아내를 보면 왠지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는 신 대장.

“살아준 건만도 감사하죠. 아내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지 엄마 아픈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학교 다닐 때도 말썽한번 안 부리고 자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43일간의 사투. 그리고 아내는 44일째 되는 날 기적처럼 눈을 떴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던 상태였지만 이렇게라도 살아준 아내가 신 대장은 참 고맙고 눈물겹게만 느껴진다.

16년 전 에피소드에 대해 신 대장은 할 말이 참 많다.

“어머니랑 아내가 동시에 입원을 했던 상황에서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농사일로 바빠 병문안을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도 많이 속상하고 서운하셨겠죠. 근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아들이 병원에 안 나타나니까 나중엔 아내가 아파 병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며느리의 갑작스런 비보에 시어머니도 위암수술을 앞두고 퇴원을 감행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몇 해 전 신 대장은 갖은 노고 끝에 3층짜리 집을 지었는데.

아픈 아내의 시골생활의 편의를 위해 살던 집을 놔두고 인근에 새집을 지어 지금도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는 중이다.

지난 2002년에는 새농민상을 수상하며 중국을 가게 됐는데, 그때도 거동이 불편해 극구 만류하는 아내를 업고 산을 오르며 중국의 좋은 경치를 감상했다.

“남들이 저희를 보면 잉꼬부부라고 하는데, 아내가 몸이 불편하다보니 제가 곁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잖습니까. 허허허. 내 식구니까 내가 챙겨야죠.”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게 농부의 마음. 한시라도 젊을 때 돈을 더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신 대장은 조그만 밭을 논으로 또 밭으로 개간해 사계절 한시도 빼놓지 않고 농사일에 매달리고 있다.

또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 몸이 불편한 아내와 많은 시간 얘기를 나눈다.

이번 의용소방대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대원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는데.

“남들은 마을행사가 있을 때 대장 부인들이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식구가 불편하니까 다른 대원들이 더 고생하게 돼 그게 죄스럽죠. 대원들이 제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제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아요.”

근흥은 전담소방대로 구성돼 화재 시 직접 현장에 투입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신 대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뜨거운 불길에도 뛰어든다.

“누가 알아준다고 하나요? 제 아내가 살아준 기쁨처럼 이제는 마을을 위해 봉사할 나이도 됐죠. 혹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왜 이렇게 늦었냐’는 서운한 말씀도 하시지만 그게 제 업본걸요 뭐. 허허허.”

많은 시간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반자와 함께 이제는 의용소방대장직을 통해 마을 해안가 정비나 동네 환경미화, 독거노인 돕기 등의 활동으로 건강한 마을지킴이로 서고 싶다는 그.

신 대장이 바라는 꿈과 미래가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희망찬 웃음 속에 머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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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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