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51ㆍ태안읍 동문리ㆍ금곡가든 대표)씨
김경수(51ㆍ태안읍 동문리ㆍ금곡가든 대표)씨

이 남자를 보면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날’이 생각난다.

“그(젊은 시절) 나이에 나만큼 돈 많이 번 놈도 태안에 참 드물 거예요.”

산전수전 겪었지만 본인을 운 좋은 남자라고 칭하는 김경수(51ㆍ태안읍 동문리ㆍ금곡가든 대표ㆍ사진)씨를 지난 14일 봄이 오는 그의 일터이자 집 정원 한켠에서 만났다.

근흥면 수룡리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김씨는 “말 못한 아픔을 겪고 나니 이젠 세상을 조금 알 것도 같다”고 말한다.

1989년 그러니까 김씨가 스물여섯 되던 해 부인 조종숙(50)씨와 결혼하면서 물수건장사를 시작했다.

태안군이 서산시에서 복군 될 때니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다.

당시엔 8개 읍ㆍ면 식당가를 혼자 담당하던 때라 프라이드에 물수건을 가득 싣고 학암포에서 만리포로 또 안흥항에서 모항항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칸방에서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이 시작한 신혼생활을 온전히 제 힘으로 일으켜 세우겠다는 욕심이 컸다.

혼자 몸으로는 도저히 배달일이 버거워질 무렵 김씨의 친형이 그를 도와 물수건 배달 일에 나섰다가 돌연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됐다.

당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조카들을 보니 가엾기야 이루 말 할 것 없었다.

형을 잃었다는 자신의 슬픔도 잠시 어떻게든 살아야했다.

어릴 때야 동네(수룡리)에서는 농사 질 땅도 좀 있고 먹고 살 걱정 없이 컸다.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태안읍내에서 자취를 하며 유학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부유했다고.

하지만 결혼한 뒤 가장으로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당시의 김씨에게 조카들을 떠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인에게도 참 미안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다행히 물수건장사가 잘돼 조카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킬 수 있었고, 그 뒤 친구와 동업했던 술장사도 번창했지만 하늘의 장난일까. 술 취한 손님이 마시던 술병에 턱뼈가 다치면서 그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15년여에 걸친 두 번의 장사. 김씨는 금쪽같은 친형과 턱뼈를 잃은 대신 주변 지인들의 두터운 신임과 약간의 재산을 모을 수 있게 됐다.

이후 2002년 태안에 ‘부동산붐’이 한참이던 시절 지금의 금곡가든 터를 사 건물을 짓고 아내와 함께 1층에는 음식점을, 2층에서 살림집을 마련하게 됐다.

하루는 스님들이 김씨를 찾아와 “이곳은 절터니, 이 땅을 팔아라”고 했단다.

김씨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는데, 하지만 산세가 험하고 기운이 워낙 습해 이곳에 음식점을 차리는 것이 뭇사람들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고 김씨 자신에게도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또 ‘샘골에 들어가면 백화산의 기에 눌려 사람이 죽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속설까지 나돌면서 음식점을 까닭 없이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곳에 터를 잡고 주변 경관공사를 진행할 무렵 김씨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코끼리바위다.

이곳에 와서도 좋지 않은 일로 남동생을 잃은 김씨.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내던 찰나 코끼리바위는 그에게 그냥 돌, 그 이상의 영험함을 안겨준 운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백화산 중턱에 자리 잡은 샘골. 백제시대 때 무학대사가 간월암과 태을암을 오갈 때 왕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샘골 주변 오래전부터 천도제터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 터를 찾지 못했단다. 김씨는 이 코끼리바위가 당시 천도제터일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다.

“간혹 이곳을 지나는 도인들이 나침반을 통해 코끼리가 동남쪽인 인도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참 신기하고 기특한 일이죠. 그래선지 언제부터 이 코끼리바위로 시산제를 지내러 오는 등산객들이 늘고 있어요.”

거기다 코끼리바위 위 산기슭에서는 얼마 전 마애삼존불과 비슷한 형상을 누군가 훼손해 놓은 것 같은 바위도 발견돼 코끼리바위와 집 주변 천도제터에 대한 김씨의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올해 계획이라면 아내와 딸, 아들이 모두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여기에 한 가지 더 바랄게 있다면 집 아래 도로가 확장 정비되는 일이다.

“집과 가게가 이곳에 있다 보니 마을을 오가는 길이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주변 동네 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몇 해 전 태안군으로부터 마을 앞 도로를 정비해주겠다는 확답이 있었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현재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그의 일터이자 집 뒤에 자리 잡은 코끼리바위. 코끼리 형상이 정확히 동남쪽인 인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 영험하기로 소문난 이 바위에 일본인들의 짓으로 추정되는 한일(一)자가 코끼리 이마에 새겨져 있다.
그의 일터이자 집 뒤에 자리 잡은 코끼리바위. 코끼리 형상이 정확히 동남쪽인 인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 영험하기로 소문난 이 바위에 일본인들의 짓으로 추정되는 한일(一)자가 코끼리 이마에 새겨져 있다.

“간혹 이곳을 등산하는 분들이 코끼리바위에 동전이나 지폐를 얹고 가시더라고요. 믿음은 믿는 사람들에게 있으니 어찌 보면 저 바위가 영험한 게 아니라 제 마음이나 사람들의 마음이 믿음을 갈구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신도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요. 올해는 이곳에서 소원을 빌어보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코끼리바위에는 일본인들의 짓으로 추정되는 한일(一)자가 코끼리 이마에 새겨져 있다.

“서글픈 일이죠. 일제시대 때 태안까지 정복했던 일본군의 호젓함이 느껴지네요.”

금곡.

재물이 묻힌 계곡이라는 뜻의 김씨 호이다. 꼭 재물을 원하는 소원이 아니라도 올해는 한번쯤 이곳 샘골에 위치한 금곡가든 코끼리바위에 들러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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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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