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옥(71ㆍ근흥면 안기1리ㆍ사진)씨가 지난 4일 본지 사무실을 방문했다.
윤용옥(71ㆍ근흥면 안기1리ㆍ사진)씨가 지난 4일 본지 사무실을 방문했다.

마을 반상회 서기 일을 도맡아 본지 10여년째가 돼가는 한 남자가 있다.

제109호. 매달 써온 반상회보가 벌써 100호를 넘어섰다.

꾸준한 그의 손놀림에 마을의 경사스런 소식도, 농사에 관한 세세한 사항도, 혹은 잊혀져가는 생활 속 주민들의 깨알 같은 일상들도 모두 마을의 역사서로 다시 태어났다.

“10여년째가 되다보니 이제는 대단하다는 말보다 무척이나 고집스럽다는 평가가 더 맞다”며 전직 공무원다운 겸손의 말을 먼저 건넨다.

지난 4일 그간 써온 반상회보 요약본을 들고 본지 사무실을 찾은 윤용옥(71ㆍ근흥면 안기1리ㆍ사진)씨.
윤씨는 근흥면 안기1리2반 율현반상회(회장 정해남ㆍ반장 이기상ㆍ이장 김일환) 소속 총무이자 일명 영원한 마을 서기다.

꼼꼼한 성격과 메모하는 버릇이 어릴 적부터 숙달되다보니 마을 총무일이 그에게는 잘 맞는 옷처럼 꼭 맞다.

이런 그를 마을주민들은 모두 대단하다며 칭찬일색. 하지만 정작 본인과 가족에게는 반상회보가 큰 짐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공직생활을 하다 위암수술을 한 그는 지난 1998년 3월 1년 반의 공직기간을 남겨두고 태안군청을 퇴직했다.
1996년 찾아온 위암이 문제였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시간이었다.

당시는 요양생활로 온전히 제 몸 하나 가두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차 회복된 몸을 이끌고 시작한 게 2001년 문화관광해설사 일이다.

고장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과 태안지역 문화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는 풍수지리학과 한서대학교 한문교육 등으로 2012년까지 해설사 일과 각종 공부에 전념했다.

퇴직 후를 제2의 인생으로 산 그가 딴 자격증도 노인상담, 요양보호사 등 수두룩하다.

그런 그가 공부만큼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이 바로 마을 서기(총무) 일이다.
반상회라 하면 과거명사로 치부될 만큼 요즘 시대에는 듣기 어려운 단어가 됐다.

하지만 안기1리2반은 매월 음력 11일을 달 밝은 날로 칭해 매달 마을 반상회를 연다.

윤씨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단순히 적는 것을 넘어 회보에 들어갈 지역소식과 국ㆍ도ㆍ군정 홍보자료, 농사메모, 마을의 자랑거리, 잊혀져가는 생활 속 일들, 논어 주요문구 등을 수록해 그 복사본을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일일이 손으로 쓴 그의 어디에도 없을 안기1리2반 반상회보가 매달 쌓여 109호. 곧 마을 10년 역사를 낱낱이 쓴 반상회보10년사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자 목표다.

처음에는 윤씨의 반상회보를 찢어버리거나 반상회 후 놓고 가는 일들이 다반사였지만 요즘은 회보를 주지 않으면 허전할 만큼 주민들에게는 익숙하게 됐다.

또 마을의 소소한 일들을 기록해 놓다보니 주민 불신과 갈등이 타 마을에 비해 많지 않은 것도 회보의 장점 중 하나다.

윤씨는 마을 반상회가 원활히 이뤄지는 요인으로 인적자원의 풍부함을 들었다.

한상기 전 충청남도 자치행정국장을 비롯해 김상호 전 태안군의원, 정해남 설위설경보유자 또 근흥면을 대표하는 이장, 반장, 부녀회장을 배출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고향인 이곳이 좋고 사람들이 좋고 인생 절반이상을 살아온 삶이 좋은 그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반상회보 작성을 미루지 않을 작정이다.

반상회에는 16세대 29명의 주민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하고 있는데 지역 내 청솔가든이라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끼니를 해결하며 조촐하게 치러지고 있다.

회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주민간 정보교류는 물론 저조했던 참석율도 점차 좋아져 이제는 전원이 참석하는 월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살면서 이웃간 서운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회보를 직접 정리하다보면 잠시 생겼던 서운함도 미운정, 고운정 쌓이더라고요. 허허”

그러면서 그가 취재진에게 ‘율현반상회 일일관광을 마치고’란 제목의 사본을 건넨다.

2014년 2월 24일 장소는 아산시 외암마을, 현충사, 도청 참석인원은 정해남 외 25명이다.

내용을 대략 훑어보니 출발시각과 찜질방에 들렀던 내용이며 덕산, 외암마을, 민속박물관, 현충사 등 방문일정이 빠짐없이 기록돼있다.

차 안에서 동네 주민들이 춤추며 놀던 기록도 있다. 당시 상황이 감히 짐작되며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회보 말미에는 늘 작성한 날짜와 ‘윤용옥 쓰다’라고 마친다.

위에 참석자 명단도 있다.

최근 나온 제109호는 베트남 설에 대한 내용과 음식에 관한 간단한 글이 메모돼 있고 올해 지방선거에서 달라지는 것과 도로명주소에 대한 행정구역 구분이 촘촘히 종이를 덮고 있다.

뒷장을 넘기니 부동산서류 통합발급과 태안군청 인사이동 내용, 소치올림픽 주요경기 일정, 농사메모가 기록돼있다.

마을민들에 대한 애정이 섬세한이 글자 한자 한자에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무릇 역사는 써야하고 후대가 읽어야 안다는데 안기1리2반 반상회보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쓴 회보가 109호 정확히 218장, 250페이지에 이른다니 얼마나 많은 연필심과 지우개가 사용됐을까 하는 엉뚱한 궁금증도 든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요즘.

조금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주민들의 안위를 생각하고 후대에 역사가 될 세심한 변화를 관찰하는 이 남자.

어제가 오늘의 역사가 되고 오늘이 내일의 역사가 되듯, 안기1리2반 반상회보의 존귀함이 그의 가족에게나 주민들의 자녀들에게나 온전히 값진 보물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한편 그는 부인 서길화(69) 여사 슬하 2남 1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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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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