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빈(64ㆍ남면 몽산2리) 태안군선주연합회남면분회장
문제빈(64ㆍ남면 몽산2리) 태안군선주연합회남면분회장

배 한척으로 시작한 바다생활이 어언 30여년에 다다른다.

젊었을 땐 기술을 배워 일가족 먹여 살리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가 나요, 내가 바다가 됐다.
태안군선주연합회(회장 정온영) 부회장이자 남면분회장직을 지내고 있는 문제빈(64ㆍ남면 몽산2리ㆍ사진)씨.

숱하게 봐온 바다지만 오늘따라 그의 눈에 비친 바다는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기분 좋은 알싸함을 선사한다.

낙조가 아름다운 이곳 남면 몽산2리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문 회장은 1968년 서울로 상경해 당시 하동환자동차공업주식회사에 취직해 철강기술을 배웠다.

그땐 철강과 자동차가 우리나라 최고 유망사업이었고 기술만 있으면 굶어죽진 않겠다는 생각에 모두들 서울행을 택할 때였다.

그가 다시 고향을 찾은 건 군대생활을 하면서다. 고향에서 방위생활을 하고 제대 후 남면소재지에 철공소를 차렸다. 자전거, 리어카, 경운기, 배 엔진, 각종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못 고치는 것 빼곤 다 고치는 ‘탈것들의 병원’이었다.

그렇게 14년간 철공소를 운영하며 그는 지금의 부인 안지운(55)씨를 만나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고, 남동생 문승관(57ㆍ남면 신장리)씨에게도 서울에서 익힌 신기술들을 전수했다.

하지만 경쟁업체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철공소가 예전만 못해졌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그가 눈을 돌린 건 다름 아닌 자신을 온전히 키워준 바다였다.

1986년 이강망(정치성구획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어로활동에 접어든 그는 바다의 지속가능한 생산 활동에 매료돼 어려운줄 모르고 부딪히기 일쑤였다.

첫해에는 숭어가 풍어라 욕심을 내 어장을 늘렸지만 이듬해부터 4년간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꾸준한 수익원을 찾던 그가 꽃게와 주꾸미어업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농어, 숭어, 광어, 꽃게, 주꾸미 등을 매일같이 끌어올리는 바다는 문 회장에겐 마치 건져도 건져도 끝이 없는 보석상자와도 같았다.

‘화기자생’. 화한기운으로 만물이 자생한다. 서울생활 당시 알게 된 한 인쇄소 사장님이 10년 전 그에게 선물한 액자 속 이 네 글자가 어느 땐가부터 마음속에 들어왔다.
늘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그의 어업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늘 좋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없죠. 아무래도 바다생활이 쉽진 않으니 생각을 좋게 다잡는 게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아닐까요?”

지난해까진 올해 아흔 일곱의 어머니를 한집에 모시고 살만큼 효자기도 한 문 회장.
올해는 어머니 지병이 심해져 더 이상 집안생활이 어렵게 됐다.

“얼마 전 읍내 한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제 손으로 더 못 모셔 안타깝지만 저나 애 엄마나 바다 일로 수발을 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서요.”

바다가 그랬듯 늘 자식들에게 주기만 했던 어머니 사랑이야말로 이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  
2005년 KBS 6시내고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간 소식이 끊겼던 서울 친구들과도 인연이 닿아 7명이 매달 친목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이 일만하다 보니 방송에도 나가고, 잊었던 사람들과도 소식이 닿고, 우리 가족 삼시새끼 이렇게 먹고 살고 있으니 제법 바다 덕을 보고 있지요? 허허허”

간혹 풍랑에 죽을 뻔 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그에겐 바다가 그저 고맙고 소중한 친구다.

살면서 보람된 일이 있다면 1996~2002년 남면몽산포어민회장 활동 당시 그가 자율관리어업공동체 명의로 따온 몽산포수산물판매장 건립예산 2억원과 올해 6회째를 맞는 주꾸미축제 4ㆍ5ㆍ6회 위원장으로서 지역발전에 소신을 다한 일들이 그것이다.

증조할아버지 친동생인 증조작은할아버지 문양목 선생의 선양사업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그가 문씨 집성촌인 이곳 남면에서 올해 더없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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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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