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화(58ㆍ명화수산 대표) 해당화로타리클럽회장
최명화(58ㆍ명화수산 대표) 해당화로타리클럽회장

30년간 장사로 잔뼈가 굵어진 그녀라지만 어디 세월 속 숨은 아픔이랴 다 지울 수 있을까.

남편이 떠나고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그녀에게 남을 웃게 할 수 있는 봉사는 그녀 남은여생 실낱같은 희망처럼 몸서리치고 있었다.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멈추지 않은 도전과 눈물로 보낸 공기 없는 밤들. 하지만 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상냥함으로 손 내밀어 준 소망교회 목사님과 동갑내기 친구 이남숙(58ㆍ대전 분식업), 이명자(58ㆍ태안읍 비비안)씨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 또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을지 끔찍하기만 하다.

“정말 어쩔 땐 그냥 한없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신앙으로 도와준 목사님과 두 친구에게 정말 감사해요. 때론 남편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렇게 다정다감한 두 친구는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울타리 같은 존재죠.”

2007년 유류오염사고의 검은 악몽은 남편 고 지창환(이용ㆍ용달업)씨를 잃게 하는 사건으로까지 몰고 가 최명화(58ㆍ명화수산 대표ㆍ사진)씨에게는 그 누구보다 아찔한 기억이자 아물지 않은 상처로 자리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아직도 자신에게 조차 말 못한 응어리를 짊어진 채 세월의 깊이와 시간의 무던함 속 그렇게 켜켜이 진한 그리움을 내뱉고 있다.

고이, 오롯이, 아껴온 그릇에 첫 분홍의 이파리를 던지고는 또르르 물결에 몇 번을 움직이더니 이내 자신의 자리에서 소리 없는 눈꽃 속에 파묻혀 버리는 어린 잎새. 그 잎새의 수줍음이 꼭 카메라 앞에선 명화씨와 닮았다.

태안읍해당화(여성)로타리클럽 창립 이후 지난해부터 지금껏 회장이란 이름으로 남은 봉사인생을 실천하고 있는 그녀를 지난 10일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 한켠 낮은 방석 위에서 마주했다.

“목사님 말씀이 여자가 태어나 이름 한번쯤은 날려야 한다면서 식당이름을 명화라고 지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명화수산이 됐죠.”

13년 전 흑색필름처럼 떠오른 기억 하나. 식당 간판이 걸리게 된 배경에도 명화씨는 그녀를 응원하는 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명화씨는 9남매 중 5남매(3남 2녀)만이 시절에 파묻혀 살고 있는 최씨 집안 셋째로 태어났다.

남면 당암리가 친정으로 어릴 땐 시내에 사는 게 꿈이던 소박한 소녀였고, 현재는 음식 하나로 착하디착한 딸과 아들을 곱게 길러낸 예순을 눈앞에 둔 평범한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또 지금은 부족한 부분을 일일이 챙겨주고 있는 바로 위 언니 최영옥(60)씨의 도움으로 영원한 응석받이 여동생 역할도 쉬지 않고 있다며 톡 터진 웃음보를 선사한다.

“지금은 태안읍에 살고 있고 내 힘으로 장사도 해 봉사활동 하는 꿈도 이루고 있으니 어쩌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죠. 호호호”

21년간 태안읍여성의용소방대에 몸담아 활동하며 대장직 수행이후 전역한 명화씨는 유일한 취미와 맞닿은 의용소방대 활동에 대한 얘기로 잠시 흥분돼 있었다.

“제가 의용소방대를 너무 좋아해서 주소도 119인가 봐요.”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새주소가 독샘로 119라며 아이처럼 자지러진 웃음을 보인 그녀는 곧 “소방대 활동에만큼은 남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열정을 바쳤을 만큼 열심이었다”며 다부진 어조도 선보였다.

장사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녀 유일한 안식처인 종교 활동에, 또 종교가 채워주지 못한 ‘사람에 대한 정성’은 봉사로 풀며 그렇게 한 해 한해 나이 들어 가고 있는 명화씨.

올해는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함께 살자는 아들 현규씨 내외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가끔은 여느 주부들이 누리는 노래교실과 스포츠댄스교실에도 참석하고 싶지만 밤 10시가 넘어야 끝이 나는 식당일에 사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애들 아빠 죽고 다리수술로 한동안 몸 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어려웠는데 그래도 건강할 때 돈 벌어 봉사하고 싶어요.”

지난해 여름은 게국지 열풍과 캠핑족들의 바닷가 방문으로 시장경제가 잠시 주춤세를 보여 아쉬웠다는 그녀의 새해소망이 그녀의 아호 소망처럼 아름답게 이뤄질 수 있길, 또 그녀의 봉사로 많은 이들이 희망을 전달받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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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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