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태안소방서 개서식이 있던 역사적인 날 안면읍남여의용소방대 이종용(54ㆍ안면읍 승언2리ㆍ농업ㆍ사진)ㆍ강옥자(55ㆍ태안읍 승언3리ㆍ농업ㆍ사진) 대장을 만났다.

첫눈에도 꺄르르 웃음보가 터진 두 대장 모두 안면도 토박이로 안면도가 낳고 기른 지역 파수꾼이다.

이 대장은 3년 임기 중 올해 1년의 대장 임기를 채우는 중이다. 얼마 전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더 멋진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을 텐데 이마의 상처가 유난히 도드라진다.

이종용(54ㆍ안면읍 승언2리ㆍ농업) 안면읍남성의용소방대장
이종용(54ㆍ안면읍 승언2리ㆍ농업) 안면읍남성의용소방대장

늘 성실하고 진실 되게 일을 하다보면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게 뭐 대수랴.

새마을지도자부터 각종 사회단체 활동을 거치면서 뭐니 뭐니 해도 의소대만 한 봉사가 없었단다.
직업에도 천직이 있듯이 이 대장에게 의소대복은 꼭 맞는 입기 편한 옷이다.

안면도 사람이라면 모두 입을 모아 극찬하는 안면송의 아름다움을 산불감시 활동으로 지킬 수 있는 특권도 이 대장에게는 큰 자부심이자 지역 봉사의 밑거름.

1988년도 의소대에 입대해 햇수로 26년째 의소대 활동에 빠져 지내다보니 일회성 봉사에 대한 그간 회의적이었던 생각들이 이 대장을 그토록 오랜 시간 이곳에 몸담게 만들었다.

안면도는 몇 해 전 119센터가 생기면서 그간 소방서 직원들과 함께 보던 일을 전담반으로 재구성해 운영 중인데, 안면읍이 고향이고 이곳에 50년 이상 살고 있다 보니 이 대장에게 지역을 살피는 일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안면읍남여의용소방대는 남성 60명, 여성 50명 등 총 110명의 대원들이 지역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봄이면 싹이 움트고 여름이면 기분 좋은 갯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가을이면 안면도 특유의 낭만과 저녁놀이 겨울의 흰 눈에 견주지 못할 아쉬움을 남긴다.

인생, 많은 일들을 거쳐 왔고 더없이 힘겨움들과 싸우고 버텨 여기까지 왔지만 간간히 보람을 선물하는 건 의소대 일들이었다.

두 대장 모두 올해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꼽은 건 백사장 다섯 학생들의 해병대 참사였다.

고향 땅에서 주검으로 사라진 다섯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시간이 훌쩍 지나간 지금까지도 귓전을 맴돈다. 그만큼 가슴으로 울고 기억 한편 쓰라림으로 파묻은 현장의 절규였다.

화재현장이나 사건현장, 봉사현장 등 현장을 다니다보면 어떤 날은 말도보고 또 어떤 날은 소도 본다. 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맞닥트린 사건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긴다.

“현장의 참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 대장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진실로 바랐다.
올해 안면읍의소대는 해수욕장 인명구조활동으로 더없이 바쁜 여름을 보내고 요즘은 한창 산불감시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내년 완공될 차고지 건립도 안면읍의소대만의 현안사업 중 하나.
안면중학교 장학금 지원사업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활발했는데 요즘은 지원이 끊겨 지대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부활시키고픈 꿈이 있다.

무능한 대장이지만 무한 능력을 실현시키고 싶은 소망과 소신만은 변치않고 싶다고 말하는 이 대장은 부인 박영례(52) 여사 슬하 형제를 뒀다.

강옥자(55ㆍ태안읍 승언3리ㆍ농업) 안면읍여성의용소방대장
강옥자(55ㆍ태안읍 승언3리ㆍ농업) 안면읍여성의용소방대장

“제가 좀 덜렁거리긴 해도 성격은 늘 밝고 긍정적이에요. 호호호”

여성대원들의 목욕봉사가 올해도 계절별로 행해져 안면읍 어르신들에게 효도선물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10남매 중 맏아들한테 시집와 묵묵히 집안일 하는데 젊음을 쓰고 보니 이젠 웬만한 일은 일도 아닐 만큼 익숙해졌다.
강 대장에게 가족은 우애고 든든한 버팀목이며 늘 웃음을 주는 곳이다. 의소대 또한 그렇다.

화재현장 속 화마와 마주할 때의 아찔함은 대원간 정과 사랑으로 극복되길 수차례. 단체 활동 중 단합면에서는 최고라고 자신하는 강 대장에게 의소대는 나이를 먹는 것과 같은 익숙함과 진솔함이다.

아픈 사람들에게는 힘을 주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는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위치는 그야말로 가장 좋은 상석. 강 대장은 무한긍정의 힘으로 대원 모두를 다독거리는 친정엄마 같은 사람이다.

“목욕언제 시켜줄 거야?”

읍내에 나가면 강 대장을 알아본 어르신들이 안부를 대신해 묻는 인사다. 안면읍 28개리를 순회하며 남성대원들과 함께하는 목욕봉사는 의소대의 화합과 단합을 묶는 원동력이 된다.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건 배추 잎사귀가 아닐런지.

센터에 모여 옹기종기 담는 김장김치는 여성대원들 스스로가 생각해도 연중 가장 큰 행사다.

올해는 커피와 쌀, 라면 등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함께 김장김치를 전달하는 행사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의소대 활동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화재 진화활동.

남성대원들이 불길과 싸우는 동안 여성대원들은 물을 끌어오거나 가재도구 등을 정리하고 인명보호 활동을 펴는 일로 업무를 분담한다.

이때의 심장소리는 대원 모두의 땀방울 수와 맞먹는다니 현장에서의 피 끓는 사투는 의소대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의소대만의 매력이다.

강 대장은 마을 부녀회장 일도 15년간 맡아봤던 경력도 자랑하고 있는데 그래선지 대원들의 속내를 누구보다 먼저 꿰뚫고 있다.

이건 아래로 9명의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거느린 경험으로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죠. 그저 무탈하고 소신껏 사는 게 제일 아니겠어요?”

식구 많은 집을 골라 시집온 건 아니지만 어릴 적 부모님 아래 단출하게 가정생활을 해온 강 대장은 누구보다 사람이 그립고 정에 메마른 이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헤아리고 있었다.

“살다보니까 재밌는 일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더라고요. 의소대 활동도 배울 수 있는 게 많고 제가 베풀고 아껴야 할 것이 많아 자꾸 정이 가나 봐요”

살신성인까지는 아니어도 폭넓게 지역을 아우르며 인생 마지막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는 강 대장.
있는 사람은 몰라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말없이 손 한번 잡아 주는 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대장.

이 두 대장들이 있고 108명의 대원들이 있어 오늘도 내일도 안면송의 건강함은 안면읍 주민들의 안위처럼 평화롭고 굳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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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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