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56) 택시기사.
김선경(56) 택시기사.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시인이 기다리던 찬란한 슬픔의 봄은 시적 해석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모란. 시인이 그토록 기다리던 모란은 희망과 사랑의 상징이자 인생일대 시인이 생각한 가장 귀한 그 무엇은 아니었을까?

고향도 아닌 타향에서 벌써 17년째 택시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선경(56ㆍ태안읍 동문리ㆍ사진) 기사에게 모란은 바로 그의 어머니다.

뛰뛰빵빵. 그저 태안이 좋아서 마냥 태안에서 살고 싶었단다.  자그맣게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머리를 식히러 내려온 태안 앞바다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 채 사로잡았다.

푸른 바다가 하늘을 삼킬 것 같았던 그날 1997년.

그는 서울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태안에서의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러길 17년. 철부지로만 알았던 두 딸은 출가해 이제 아줌마 대열해 합류했고, 하던 일을 쉽사리 놓기 어려웠던 그의 아내는 서울과 태안을 오가며 그의 뒷바라지에 열중이다.

부인 윤(56)씨가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씩 내려와 밑반찬을 해놓고 가면 어머니 진옥추(85)씨와 김씨의 일주일은 조금 편해진다.

어머니 진씨는 암을 뺀 각종 잔병치레로 김씨의 눈엔 늘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지금도 거동이 불편해 혼자 밥을 차려 드시기 버거워 김씨가 아침과 저녁을 손수 챙기고 있다.

그나마도 점심에는 요양보호사가 집에 와 어머니의 점심식사와 기본적인 집안 살림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  하지만 김씨는 무엇보다도 느지막이 하는 어머니와의 동거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바로 위 형님이 돌아가셔서 제가 외동아들입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건 당연한데 요즘 세태가 이렇게 평범한 저를 신문지상에까지 올려놓네요.”

씁쓸한 듯 말을 잇던 그는 “어머니가 요즘 통 진지를 못 잡수셔서 걱정입니다. 그저 건강하게만 제 곁에만 있어주시면 더 바랄게 없는데 말이죠.”

아들 걱정 안 시키려고 불편한 몸에도 손수 음식만큼은 꼬박 꼬박 만들어 먹인다는 어머니. 아침 9시부터 시작된 김씨의 운행은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마친다.

회사택시를 운행하는 까닭에 하루 벌이 일부분을 공납금으로 충당하고 나면 수중에 쥐여지는 돈은 많지 않다.

“마음은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더 좋은 것도 보여드리고 싶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싶은데...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몇 해 전 그는 회사택시를 접고 개인택시 영업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때가 있었다. 높은 행정의 벽에 아직까지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그에겐 남들이 모르는 꼭 해야만 하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택시가 생기면 어머니 모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볼 생각이었습니다.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저렇게 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계실까란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었죠. 하지만 개인택시 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요? 요즘엔 돌아다니는 개인택시도 축소한다고 해서 우리 같은 회사택시 기사들이 개인택시 따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죠.”

하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자신이 운전하는 개인택시에 어머님을 모시고 씽씽 전국을 누빌 수 있게 되길 김씨는 고대하고 있다.

김씨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모범운전자 마크가 그 순간 눈에 쏙 들어왔다. 그저 평범하다며 자신의 운전인생을 얘기하던 그에게 모범운전자란 타이틀이 정말 마음에 와 닿던 순간이었다.

“몇 년 전에 저도 뇌수막염이라는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뇌사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땐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내가 죽으면 우리 어머니는 누가 모실까란 불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정말 제가 없어졌으면 오늘날의 평범함도 없었겠죠?”

평범함.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키기 어려운 평범함을 그는 무던히도 어렵사리 지키며 살고 있었다.

“지금은 제 몸 하나 건사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며칠 전에 읍내 한 가정의원에 콜을 받고 찾았더니 여든두살의 쇠약한 여성 어르신이 앉아 계시더라고요. 집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분을 의원에서 집안까지 안아 모셔다 드리면서 참 가볍고 슬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도 저희 어머니처럼 고관절로 고생을 하고 계시더군요. 그때 생각했어요. 택시기사는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돼 묵묵히 해야만 한다는 걸요. 우리 태안군에는 저 말고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159대의 택시와 46명의 모범운전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제 인터뷰는 택시기사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기사가 될 것 같네요.(웃음)”

요즘같은 여름이면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몽산포항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진팁을 전해주며 김씨는 묵묵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고 술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본인은 입에 대지도 못하는 술상 앞을 꿋꿋이 지켜 앉아주시던 어머니. 

정든 서울보다 이제는 아들이 일하는 태안이 더 좋다며 한사코 짐을 싸 내려오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에 오늘도 못난 아들은 마냥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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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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