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희(64) 남면 달산2리 이장.
한병희(64) 남면 달산2리 이장.
“머리카락 자르는데 한 사람당 1만2천원입니다. 하루에 두 명만 머리를 잘라도 2만4천원이죠. 그거면 끼니 굶을 걱정은 없어요. 그 돈으로 쌀과 반찬은 살 수 있으니까요. 돈 그거, 죽어서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버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사는 게 제일이죠”

보는 이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 것도 모자라 한병희(64ㆍ남면 달산2리ㆍ고등이용원ㆍ사진) 이장의 너스레에 입도 마음도 즐거워진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성인들의 명언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지만 한 번도 그 단어들의 깊이를 애써 이해하려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식들 모두 외지로 나가 부인 이순자(64) 여사와 둘만이 여생의 남은 페이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게 있다면 한 이장 특유의 넉넉한 웃음이 아닐까?

“에이 고거 뭐하러 찍어요” 사진기를 들이대자 자연스레 늘어놓던 말문이 닫혔다.  특별히 자랑할 것도 거칠 것도 없지만 그런 그가 자부하는 건 오래된 가위질 하나다. 또 탁월한 활동력이 가져다준 남면 달산2리 마을대표 이장이라는 타이틀.

한 이장은 1968년부터 이발사를 시작했다. 이후 1972년 지금의 이 고등이용원(남면초ㆍ중학교 맞은편)자리로 이사했다.

어느새 한 이장의 머리엔 검디검던 머리카락 대신 흰 서릿발이 소복이 내려앉았고,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고향인 남면을 떠나지 않았단 사실이다.

취재진이 한 이장을 만나기 위해 이용원을 찾은 건 지난 14일 아침이다.

언제고 주민 민원이 생길 때면 열일을 제쳐두고 나가는 까닭에 그 날도 주인 없는 이용원을 지킨 건 낡은 텔레비전과 늙은 손님 이 둘뿐이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흰색 남방이 휘날리며 나타난 한 이장. 여느 때와 같이 그의 왼쪽 가슴엔 연필과 펜 한 자루가 꽂혀있다.  “주민들 민원은 연필로 적고 확실한 거나 중요한 건 볼펜으로 적어 둡니다” 이발사가 웬 볼펜이냐는 취재진의 눈짓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한 이장이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한 이장의 이장 임기는 이제 꼭 반년이 남았다. 처음 이장이 되려 한 건 나를 키워준 마을에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서였다. 봉사라는 두 낱말로 찾기엔 어딘지 생소한 것도 같고, 얼굴이 붉어질 만큼 간지러워 시작했던 이장.

생각처럼 쉽지 않은 임기였다고 회고하는 한 이장은 마을주민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장 큰 힘이 된다고도 했다.

남면 달산2리는 130여세대가 살고 있다. 면소재지에 있어 남면의 가장 중심이 된다는 한 이장의 말대로 남면을 찾을 때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면사무소가 바로 달산2리 소재지다.

아침과 저녁 130가구를 일일이 방문하며 독거노인들의 문안을 살핀다는 그의 노력에 어느샌가 동네방송이 사라졌다.

“찾아 뵙고 말씀드리는데 굳이 방송할 일이 없더라고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내뱉는 한 이장의 말이 얼마나 많은 자기희생을 불러왔는가를 가늠케 한다.

“저녁때는 어르신들이 식사를 일찍 자시고 불을 끈단 말입니다. 근데 혹여 텔레비전 불빛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문틈으로라도 어르신들의 안녕을 살피곤 집으로 돌아가죠”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터질 때면 혹여 라도 나쁜 마음으로 음독자살을 하거나 아닌 밤중 아무도 모르게 숨이 멎는 사건이 생길지 몰라 한 이장은 늘 노심초사다.

“다 저를 키워준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으신 분들인데 어떻게 자식 된 도리로 그냥 앉아만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꾸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또 그러다보면 어르신들이 먼저 ‘어이 이장 잘 만났네’하면서 궁금한 것도 묻고 하는 게 마을 내 소통이죠.” 당연한 걸 자꾸 묻는다는 듯 한 표정으로 한 이장은 또 말을 이었다.

“저는 저희 달산2리가 조용해야 남면이 화평하고, 또 남면이 조용해야 태안군 전체가 평안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만날 민원인들이 면사무소에 찾아가다 보면 행정도 마비되고 그럼 주민 전체로 봤을때도 손해죠. 그래서 마을에 이장이 있고 부녀회장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발소 문만 열어놓고 오전에 계획했던 동네를 돌고 와선 또 다시 본업에 충실하고 퇴근 전엔 어르신 안부를 살피고 집으로 들어가는 한 이장의 하루일과가 고단함이 아닌 마을의 안위를 생각하는 너그러움이라는 생각에 눈가가 찡해진다.

“그저 팔다리 성할 때까지는 마을에 봉사해야죠. 근데 이장은 더 하고 싶지 않아요. 뭐든지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족합니다. 한번이 중요하다라는 거죠. 연임을 하게 되면 괜한 욕심만 생기고 늘 하던 일에도 짜증이 늘기 마련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임기 한번이면 저는 족합니다.”

‘차고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옛 성인들의 명언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꼭 들어맞는 옷처럼 그렇게 쉬운 듯 보이지만 값지게 쓰여 지고 있었다.

“한 이장님의 열심과 노력을 태안미래가 언제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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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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