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몽산1리 동산경로당 회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남면 몽산1리 동산경로당 회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들은 수세미와 목도리, 남성들은 복조리. 태안군 남면 몽산1리 동산노인회(회장 이현복)의 행복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을회관 내 켜켜이 쌓이는 복조리와 수세미, 목도리가 겨울 내 어르신들의 가장 큰 놀잇감이 됐다. 어름거리는 눈으로도 어찌 그리 볼품 나게 만들었는지 2개 5000원이라는 수세미 가격이 싸다고 느껴질 정도.
판매 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마을 통장에 적립해뒀다.

복조리는 김종권 이장이, 수세미는 이은남 부녀회장이 판로를 개척해주기로 어르신들과 단단히 약조해두었단다.

봄철 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 어르신들의 심금을 울리는 또 하나의 소리는 관광객의 아우성과 탄성이다. 몽산1리는 바다에서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싱싱한 석화가 나고, 들녘에서는 사계절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어디 그 뿐인가? 독살, 바지락, 해삼, 돌게 체험장에는 연간 1000여명이 넘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이렇게 풍요로운 마을을 더욱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야 말로 마을의 보배요, 후손들의 자랑되시겠다. 몽산1리 동산경로당 이현복(73) 노인회장과 60명의 회원들이다.

어르신들은 반짝 추위도 아랑곳 않고 올해 첫 자원봉사활동으로 굴혈포 해변 환경정화활동에 나섰다. 한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다른 한손에는 기다란 집게를 들고 겨우내 묵었던 생활쓰레기와 바닷 속 폐어구, 어장표시대 등을 직접 치우기로 한 것이다. 다만 매달은 어려워 분기별로 이러한 환경정화활동을 나눠 하기로 했다.

동산경로당은 41명의 여성회원과 20명의 남성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여 생활하고 있다. 꽃피는 4월이면 마을 봄나들이도 가고 농사철을 지나면 인근 교회 목사내외가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마을은 풍부한 해산물 외에도 화훼, 논농사, 밭농사를 두루 지을 수 있어 120여호에 달하는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

추운 겨울철이면 석화가 풍족해 늘 바빴지만 지난 기름유출사고 이후로는 이마저도 생산량이 줄어 어르신들의 소일거리가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르신들의 심심한 하루를 사로잡은 것이 이 수세미와 복조리다. 여성어르신들은 처녀시절 뜨개질하던 기억을 더듬고 남성어르신들은 소싯적 실력을 맘껏 뽐냈다.

농한기, 어르신들은 위기를 기회삼아 그간 노인회비로 모아둔 돈을 수세미와 목도리, 복조리를 만드는 재료비용으로 썼다.

예상외로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해 첫 회 수확은 건졌다고들 말한다. “내가 만든 건 이이가 샀어. 나는 목도리를 여섯 개나 샀는데, 며느리 주고, 손자주고, 딸들 줬어” 박병옥(74) 어르신이 신이 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으로 취재진과 마주했다.

“뜨개질을 하기 전까진 고스톱에 쓰려고 만날 동전들이 가득한 돈가방(주머니)을 가지고 여기(경로당)로 출근했다”며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병옥 할머니 동갑내기 문화석(74) 어르신도 한수 거든다.

어르신들의 뜨개질 선생님은 이 마을 여성노인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종례(71) 어르신이다. 뜨개질을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30여년간 바느질과 뜨개질을 겸하다 보니 자연히 뜨개질 달인이 됐단다.

이렇게 해서 이번 겨울동안 할머니들이 만든 목도리와 수세미는 70여개. 색깔도 모양도 가지각색. 텔레비전에서 본 특이한 모양을 본떠 목을 단단히 맬 수 있는 꽃잎 디자인도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할 만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은 다 팔리고 남은 것들이라 별루여. 이히히히” 익살스럽게 웃으며 취재진의 목에도 목도리 하나를 매준다.

박 할머니와 문 할머니는 매일 아침 10시에 경로당에 나와 청소를 한다는 이야기와, 오후 6시면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데, 가끔 고스톱이 재밌을 때면 저녁 7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며 솔직한 경로당 일상을 털어놨다.

곧 농사철이 되면 바빠져 이젠 수세미 만들기도 다음 겨울을 기약해야 한다며 아쉬운 얼굴을 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수세미사업(?)에 들인 정성과 공이 가늠된다.

이제 여름철이면 조개를 다 먹어치워 버려 골치라는 불가사리 박멸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귀띔해줬다.

이현복 노인회장은 인터뷰를 끝으로 마을 자랑을 늘어놨다. “우리 마을은 장구잡이가 있는 국악마을이고, 화합과 단결이 일등으로 잘되는 마을이에요. 해마다 청년회(회장 문득호)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주고 있고요.

어촌계(계장 문명기)에서는 소일거리를 제공해 주민들의 생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김종권 이장, 이은남 부녀회장, 김종완 지도자의 노고도 가히 높이 살만 하고요. 이렇게 노인회, 부녀회, 어촌계, 청년회, 지도자, 이장 등이 한데 뭉쳐 마을을 생각하는데 어찌 화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긴 겨울을 짧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남면 몽산1리의 미스터리는 마을 어르신들의 끊임없는 자원봉사활동과 뜨거운 이웃돕기 정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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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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