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태안읍 장산2리 이장.
이종범 태안읍 장산2리 이장.
고단했지만 풋풋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 고향을 떠나 사는 법을 잊고 산 세월.

낳고 길러준 부모의 품을 잊지 않듯 고향의 향내 속에서 달콤한 꿈을 꾸는 이종범(48ㆍ태안군쌀영농조합법인 갯바람아래 노을에 물든 쌀ㆍ사진) 이장.

그가 장산2리를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겠다며 새해 소망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군내 유일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 장산2리. 마을이 읍내와 가장 가까운 터라 편리하기도한 반면 불편함도 감내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이 마을의 숙명이다.

“우리 마을은 태안읍내 43개리 중 유일하게 시내버스 승강장이 없는 곳이죠. 하지만 고개를 넘어야만 읍내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른 아침 병ㆍ의원에 가거나 시장이라도 갈라치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군에서는 마을에 버스를 이용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 노선증편에는 난색을 표하더군요. 조금 불편해도 주민들이 이해해야할 몫이라 아쉬울 따름이죠”

장산2리는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거나 특별한 소일거리가 존재하진 않는다. 다만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태안해양경찰서가 위치하고 있으며 올 연말 태안소방서가 이 마을에 준공하게 된다.

“작긴 해도 행정의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곳이죠. 이제 엠게임 본사까지 이전하게 되면 마을 경제도 좀 웃을 수 있을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 이장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매년 4번 연례행사를 치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구정 맞이 주민 전체 온천목욕여행이다. 설을 전해 마을의 화합과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리고자 어김없이 목욕재계가 이뤄진다.

두 번째는 5월 8일 어버이날 경로잔친데, 주말을 기해 고향에 다녀간 자녀들이 정작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곁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이 이장은 카네이션 달아드리기를 통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흡족케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초복날 이뤄지는 영양탕파티다. 마을에서 더운 여름을 건강히 보내라는 의미로 개 6마리를 잡아 몸보신을 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가을맞이 1일 관광이다. 아주 먼 곳은 아니더라도 이 이장은 어르신들과 함께 한해의 정리를 이 관광으로 대신한다.

몇 해 전 이 이장이 농업경영인 군 회장 당시 유럽에 행사 일정이 잡혔는데, 이 초복행사를 치르기 위해 유럽순방 길도 고사한 일화가 있다.
이 이장은 평생에 어렵게 얻은 기회였지만 매년 시행하는 마을행사는 비울 수 없다며 주민들과 함께 행사의 처음과 끝을 지켰다.

이 이장은 “주민들과의 약속이 선행돼야지만 진정한 주민의 대표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경영마인드가 통했던 것일까? 그는 태안읍 이장단을 대표하는 협의회장직을 지키며 주민과 행정간 소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또 올해로 꼭 10년째 마을 이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2남 5녀 중 차남으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큰 형님 밑에서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지만 언제나 고향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만큼은 남다르다. 30여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올해 여든의 어머니를 모시며 부인 윤완영(46)씨와 오붓한 시골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그.

“고향 태안을 떠나본 게 아마 조치원으로 방위훈련을 갔던 3주가 고작일 겁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이곳은 제 인생의 전부가 스며든 곳이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장산2리가 고작 생강, 고추, 마늘, 벼농사가 전부인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이 이장에게는 첫 이장직 3년간 19명의 어르신들을 노환으로 보낸 가슴 아픈 공간이자, 홀어머니와 함께 온전히 지킨 보람의 땅이기도 하다.

눈가가 시큼한 듯 멀리 천장을 주시한 이 이장은 불현듯 말을 잇는다.

“이장만 잘해선 되나요? 다행히 우리 마을은 개발위원들과 7개 반장들이 마을 일에 잘 협조해 평화롭고 건강한 마을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가장 큰 자랑입니다”

“또 얼마 전 귀촌한 한 주민이 그러는데, 우리 마을이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라는 푯말에 끌려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더군요. 정말 인정이 넘쳐 보이나요?(웃음)”

102가구. 최근 귀농인만 15명 전입, 순수 원주민들의 터로 굳건히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곳 장산2리. 또 이 이장이 있어 행복한 그곳에 오늘은 싱그런 봄바람이 분다.

SNS 기사보내기
이미선 기자
저작권자 © 태안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