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읍장 유연환
태안읍장 유연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필자는 태안읍장을 끝으로 이임을 하고 정년퇴직을 맞게 된다. 6개월 간의 공로연수를 거쳐 오는 12월이면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감회가 새롭다. 고향 태안에서 무사히 공직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991년 이원면에서 공무원을 시작하였다. 막차가 일찍 끊기는 바람에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는 일이 많았다. 일이 많아(사실은 사람이 부족해서) 1년 중 반은 일숙직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밀린 세금을 받으러 이 아무개씨의 집을 찾아갔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찬 마루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앙상한 몸에 눈은 말그대로 십리나 들어가 있었다. 자신을 방어할 힘조차 없이 말이다. 그 사람에게 차마 세금을 받으러 왔다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열어봤다. 딱딱하게 굳은 밥알갱이 몇 개가 곰팡이가 핀 채 붙어 있었다.
아궁이에는 불을 지핀 흔적이 없었다. 전기도 요금을 내지 못해 한전에서 단전을 한 상태였다. 이런 곳에서 그는 아무 돌보는 사람 없이 굶주림과 추위와 병을 안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에게 다가가서 “지금 무엇이 가장 먹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작은 소리로 담배라고 대답을 했다. 쏜살같이 가게로 달려가 약간의 먹을 것과 담배 한 보루를 사가지고 와 건넸다. 그리곤 두 손을 꼭 잡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집을 뒤돌아 나올 때의 마음이 착잡했다. 도와 줄 생각을 떠올렸지만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 안 되지만 밀린 세금은 대신 내주었다.
그 일 이후 깜빡 잊고 지내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의 손에는 길에서 주웠는지 담배꽁초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먹을 것과 담배 한 보루를 사서 전해주었다. 이것이 그 분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날 아침, 그가 대문 앞에 쓰러져 죽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일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그때 복지제도만 잘 되었으면 밖에서 얼어죽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최근 사회복지 업무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따뜻한 복지, 맞춤형 복지, 촘촘한 복지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복지정책을 펼친다 해도 어려운 분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가 어렵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많이 좋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짧은 태안읍장 재직기간이지만 어려운 분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다.
돕는 손길들 중에는 극구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분들은 사진을 찍는 것 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먼저 기고글에서 밝혔듯이 한 달치 월급 전부를 기탁해 주신 기간제 근로자분, 꼬깃꼬깃한 현금 15만 원을 기탁해주신 할머니, 10만 원의 상품권을 내 주신 할아버지, 지난 4월 교내 “봄꽃축제” 행사에서 팝콘과 플리마켓 등 판매수익금 427,800원을 기탁해 준 태안여고 학생들.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기부를 해주신 분도 계시고, 삭선리 농공단지입주 4개 업체에서는 1천만 원을 기탁해 주셨으며, 어느 마을 부녀회장님은 숨은자원행사 찾기 판매수익금 전부를 기탁해 주시기도 했다.
또한 극구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신 모 교회 필리핀 선교사님은 국내에 들어왔다가 필자가 쓴 기고문을 읽고 5백만 원의 성금을 기탁해 주셨다.
이 선교사님은 자비량(선교비 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해결)으로 선교를 하시는 분이시다. 필리핀 현지에서 선교비가 더 필요할텐데 이처럼 큰 금액을 기탁해 주셔서 성금을 받는 손이 떨리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많은 후원자분들께서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착한 냉장고 식품후원사업도 감사가 넘친다. 마트를 운영하는 한 업체는 100만 원 이상의 식품을 한해에만 몇 차례씩 기부해 주고 있다. 매주 김치를 후원해주는 업체 사장님, 1,200여만 원 상당의 건강식품를 후원해 주신 대표님, 그리고 빵을 후원해 주시는 제과점 대표님께도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특히 건강식품은 매주 어려운 가정을 방문할 때 그분들께 긴요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구마 한박스와 귤 한상자를 오토바이에 싣고 오셨던 아저씨, 김치를 가지고 오신 교인, 자신도 착한 냉장고를 이용한다며 캔커피를 가지고 오신 수급자분, 과자며 초고추장, 컵라면 등을 슬그머니 놓고 가신 익명인 등 이런 아름다운 미담은 글로 쓰기에 부족할 만큼 차고도 넘쳐난다.
필자는 앞선 기고에서 취약계층의 고통과 절망이 한계 수위에 이르렀다고 표현 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질병과의 싸움인 것 같다.
보통은 한 사람이 서너가지 이상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허리통증, 관절염 등으로 고생을 하는 분들이 많고 외로움과 우울증도 심각하다.
또 상당수 어르신들은 자식들과 단절된 삶을 살고 계시다.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분들을 보듬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혼자 생활하는 1인가구가 이미 30%를 넘어섰다. 태안읍은 우리나라 평균보다 훨씬 높은 43%에 이른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가파르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혼자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고령노인과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을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 본다. 국고보조사업 위주의 사업구조를 뛰어넘어 복지분권을 추진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지자체와 지역단체가 연계하여 다양한 복지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태안읍에서 추진 중인 연합모금릴레이 사업이 모범적인 모델사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주민들의 관심과 더불어 태안의 기업체들도 후원에 동참을 해주시면 좋겠다. 지자체에서도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만 의지하지 말고 복지수요에 맞는 자체예산을 더욱 많이 편성하였으면 좋겠다.
끝으로 태안읍 연합모금릴레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 주신 정기후원자, 일시후원자, 그리고 정기후원협약기관 여러분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면서 4회에 걸친 기고의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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