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경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고분입니다. 경주 사람들은 ‘능’과 함께 생활하며 신라 시대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경주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나누는 일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합니다. 도심에 있는 고분군, ‘대릉원’은 신라인들의 발자취가 켜켜이 쌓인 곳입니다. 신라 시대의 왕과 왕비, 귀족 등의 무덤이 무려 23기나 모여 있는 곳으로, 마치 하나의 공원처럼 평지에 조성되어 있어 고분 사이를 산책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중 서북쪽에 위치한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천마총은 유일하게 능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천마’를 그린 ‘천마도’와 ‘천마총 금관’을 볼 수 있습니다.(현재 ‘천마도’는 경주박물관에서 특별전시중) 경주시 동남쪽 남산 중턱에는 신라 27대 왕이었던 ‘선덕여왕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기반을 닦은 여왕의 묘는 아름다운 ‘도래솔’로 유명하죠.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도래솔이라 하는데, ‘도래’는 소나 염소의 고삐에 매단 둥그스름한 고리를 이르는 순우리말입니다. 기품 있으면서도 소박한 여왕의 능은 우아한 자태와 고상한 기품의 도래솔에 둘러싸여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경주에서는 경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있습니다. 토함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동해와 만난 경주의 본길해변, 이곳에 세계 유일의 해상왕릉인 문무대왕릉이 있습니다. 해안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능은 바위 가운데 십자 모양의 수로가 나 있어 수로 안쪽 공간에 능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문무대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이 견대에 올라서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라를 생각하는 문무대왕의 기개가 여전히 느껴집니다.
경주까지 가서 불국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국사는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지이자 우리나라 사찰 문화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거죠. 많은 전문가가 불국사의 건축을 가리켜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가장 빼어난 걸작이라고 평합니다. 특히 자연색의 형태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그에 맞추어 인공의 작업을 한 옛 석공의 솜씨가 놀랍도록 아름답습니다. 불국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회랑인데, 신라시대 부처가 사는 사찰은 임금님이 사는 궁궐에 준하는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궁궐에 회랑이 있듯이 불국사에도 회랑을 두었던 겁니다.
당대 절 내에서도 통행할 때는 반드시 회랑을 이용하는데, 이 길을 걷노라면 절대자에 대한 순종과 경외감이 절로 차오릅니다. 불국사가 경주의 얼굴이라면 석가탑과 다보탑은 불국사의 안주인 같은 존재인 거죠. 석가탑은 단순하면서 시원한 조형미로, 다보탑은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형상미를 품은 채 대웅전 앞 절마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불국사에서 옆으로 뻗은 산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또 하나, 신라 예술의 절정 국보 제24호 ‘석굴암’이 있습니다. 토함산 중턱 화강암에 구멍을 내 석굴을 만들고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40구의 불상을 조각해 놓았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불상은 38구인데, 신라 불교예술의 극치라 평가받는 석굴암의 석불 앞에서는 누구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이곳 또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해가 저물면 경주는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얼굴을 내밉니다. 천년 고도의 아름다운 야경을 품은 대표적인 곳은 안압지입니다. 물에 비친 전각의 밤 그림자가 달빛처럼 아름다워 기러기도 쉬어간다는 안압지의 야경은 은은한 색상의 조명과 고요한 숲, 잔잔한 못이 함께 어우러져 가히 ‘신라의 달밤’이라 표현할 만합니다. 안압지는 7세기 후반 문무왕 때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원래 이름은 ‘월지(月池)’로 달이 뜨는 연못이란 의미인 거죠. 연못가에 ‘인해전’과 여러 부속 건물을 만들어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신라의 영화를 대표하던 이곳이 역사에서는 비운의 장소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문서를 작성한 곳이 바로 여기 안압지이기 때문인데, 천 년을 지속했던 영화도 허물어지는 것은 찰라임을 안압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안압지가 곱게 치장한 화려함을 품었다면 첨성대의 야경은 우아하고 고요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한낮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첨성대를 감상해도 좋지만 해가 진 후 조명이 비친 첨성대를 보며 더욱 고풍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서 경주를 찾을 때마다 행복함을 느끼는 거죠. 낮에는 다소 밋밋해 보이는 첨성대는 어두운 밤 조명을 만나면 곡선이 부각되며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합니다. 
국보 제31호,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년) 때 세워진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 최초의 천문대로 알려졌습니다. 높이 9.17m, 바닥 지름 5.17m, 상단 지름 2.5m이며 30cm 두께의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것입니다. 전체적인 외형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 맨 위에 우물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로 구분되는데,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의 높이를 쌓아 올려 만들었고, 맨 위의 정(井)자 모양의 돌까지 합해 모두 28단으로 기본 별자리 28수를 나타냅니다. 
첨성대를 쌓은 돌의 수는 총 361개 반으로 음력으로 센 일 년의 날짜를 상징합니다. 첨성대 중간에 네모난 창 아래위 12단의 돌은 12달, 24절기를 의미하는데, 삼국시대의 나라 중 천문에 대한 기록을 가장 많이 남긴 것은 신라이며, 신라 시대에는 해, 달의 움직임과 별자리의 이동 등의 천문학이 농사를 짓는 시기와 밀접하다고 생각했고, 국가의 길흉화복에도 관련이 있다고 여겼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 현상을 관찰하는 천문대인 첨성대를 만들었고, 천문박사라는 관직을 두고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최근 첨성대는 북쪽으로 205mm 기울고, 이로 인해 서쪽 일부가 최대 131mm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 보존상태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1400여 년의 세월 동안 겪어낸 자연현상 때문이라는 것, 기반을 받치고 있는 호박돌이 남쪽보다 적어 기울어졌다는 것, 일제강점기 때 도로를 만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각기 다른 주장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첨성대 보존을 위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첨성대의 정밀하고 완벽한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천 년을 넘게 이어온 문화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안전진단은 물론 혹시 모를 훼손에 대비한 복원에도 힘써야 하겠습니다. 

※ 여행의 끝자락, 경주 시내엔 그 유명한 ‘황남빵’ 가게가 있는데, 20여 차례 경주에 올 때마다 그 가게에 들러 팥앙금이 소복한 황남빵을 구입해 좋아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기차 안에서 천년 고도 경주를 기억해 글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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