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소방서 오경진 서장
▲ 태안소방서 오경진 서장

2007년 12월 7일 태안의 바다에 죽음이 찾아왔다. 
오전 7시경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쪽 8km 해상에서 예인중이던 크레인선과 지나가던 유조선의 충돌로 인한 1만톤이 넘는 원유가 유출된 사고는 태안에 내려진 견디기 힘든 재앙이었고, 누명으로 뒤집어 쓴 사형선고였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하면 태안 군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젖는다. 언급하기조차 싫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날은 태안 반도 역사 이래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파괴되었음을 방방 곡곡에 알리는 날 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완전 절망의 날로 시꺼멓게 덮인 바다처럼 암울한 암흑에 휩싸인 미래만이 남아 있었다.
기름 유출로 인해 태안반도 부터 전남 해안지역에 이르기까지 거진 300km의 해안에 기름이 확산되었고, 101개 섬과 15개의 해수욕장이 오염되었다.  3만 5천ha에 달하는 양식장이 파괴 되었으며, 4만여 가구의 일상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방재작업이 아무리 빨라도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보도가 절망을 한층 더 짙게 만들었으며, 태안의 주력 산업 어업은 기름때 가득한 절망 그 자체였다. 그때 한국인의 희한한 특성이 또 다시 작동했다.
요샛말로 이것을 종특(종족 특성)이라고 부르며, 박시백 작가는 만화로 그려낸 조선왕조실록에서 의병활동을 “나라로 부터 받은 은혜(혜택)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으로 발현되었다.
그 독하고 독특한 유전자, 종특이 다시한번 전국 방방 곡곡에서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대중교통도 미비(未備)한 대한민국 서쪽 끝의 작은 반도로 몰려왔다. 겨울 방학을 맞은 대학생, 대학수학 능력시험이 끝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수험생, 소중한 휴가를 반납 하다시피 찾아온 군인,  전국 부녀회원 및 동호회원 등 각양각색의 인파가 몰려 들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의 혈관에 흐르는 의병의 얼이 그들을 태안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태안 군민들도 모두 다 솔선수범하였고, 충청도 사람들은 우리 고향은 우리가 지킨다는 일념하나 만으로 모두 모였다. 
어민, 농민, 회사원 할 것 없이 모두 바다로 나섰으며 전 공무원 과 인근 군부대 군인들은 말할 것은 없으며 우리 소방 공무원 들도 비번을 반납하고 바다로 나갔으며, 학생들은 수학여행 반납  졸업생들의 헌교복을 가져다가 흡착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의병의 혼은 한국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방글라데시 출신의 불법 체류자였던 샘, 코빌, 나즈물 세 명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 자원 봉사자도 잊어서는 안 되며, 만리 타향의 재난을 돕기위해 삼삼오오 스스로 모이는 사람들을 보며 국민 모두는 전율하며 감동했다.
방호복이 부족해서 입던 것을 돌려입고, 태안군 관내 현수막이란 현수막은 모조리 걷어다 기름때를 닦는데 사용하였다.
특별한 기계도 없이 하나 하나 손으로 깨끗이 씻었으며 끝없는 기름때에 절로  오금이 저리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건만 묵묵히 앉아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런 손길이 123만 2,322명의 천사들로 언젠가 광야에 찾아올 초인을 목놓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123만 희망의 띠(Band of Hope of the 1.23Million)었다.
그렇게 태안반도는 2014년 겨울을 지나며 7년 만에 어장이 복구되는 등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오직 인간만이 재앙에 맞서 이겨 낼 자격과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분명히 증명해 냈다.
123만명과 함께 재난을 극복한 22만 2129건의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이 지난해 11월 고려시대 일연 선사가 지은 삼국유사와 조선시대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 지역 목록으로 최종 등재되었다.
삼국유사와 내방가사는 역사적 기록물이지만 유류피해 극복 기록문이 삼국유사와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한 순간 이었고, 세계가 인정한 것으로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는 커다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바다 생태계를 살려내고 위기를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태안의 기적’ 주역들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을 지나 천리포 해수욕장에 위치한 유류 극복 피해 기념관은 그간 군민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재앙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생생히 담고 있는 곳으로 대원들과 함께 관람하다 보면 대원들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저 여기 있습 니다”, “이거 저입니다”하며 사진들을 가리키곤 한다.
그 순간 나는 역사책의 인물들과 서 있는 것만 같다. 살아있는 기록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그들의 멋쩍은 미소에는 기적을 만들어 낸 사람들만 보여 줄 수 있는 긍지가 담겨 있다.
태안에 부임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필자는 아직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해수욕장을 걸어 본다. 
파도리 몽돌 해변가 및 의항 해수욕장도 물론이며 모래 사구로 유명한 신두리도 빠질 수 없다.
그 어디에도 검은 죽음의 자취는 찾아보기 힘들며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 낸 ‘태안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부르곤 하는데, 그런 면에서 태안군민과 123만명의 자원 봉사자들을 성인(聖人)이라 칭하는 데 한 점 부끄럼이 없을 것이다.
태안 유류 피해와 관련하여 지식채널 e에는 ‘그들의 맨손’이라는 편에서 마지막에 한 할머니가 기름을 닦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이(게)’처럼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 총각은 어리 잖여, 여기 깨끗해지는 것 볼 수 있잖여. 그게 10년이 걸리던 20년이 걸리던 바다는 다시 깨끗해질 것이여, 그때 애들 손잡고 꼭 한번 다시 여기를 찾으라고..”   -  태안 주민 박점례 할머니, 지식채널 e -
나와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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