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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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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돋아 신선 되는 백화산 구름다리 
태안미래  |  t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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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04  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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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진 태안소방서장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鎭山)이자 영산(靈山)으로 태안군의 기상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觀音聖地로서 태안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풍요와 융성의 기운이 샘솟는 명산이다. 
정상아래 두 개의 큰바위 봉우리인 봉봉대를 이어 마치 구름위를 걷는 듯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새가 나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 천성계로 올라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멋을 느끼게 하며 태안의 수려한 경관과 가로림만을 바라보며 백화산의 상서(祥瑞)로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백화산 구름다리를 ‘2020년 10월 15일에 시작하여 2023년 3월 9일 준공까지 2년 5개월에 걸처 총 사업비 24억 7천만원 길이 74m, 너비1.5m 지상 높이 19m에 설치한 보도 현수교는 주탑의 높이 7m에 무게 7톤으로 교량이 버틸 수 있는 하중은 40톤, 동시 수용 가능 인원은 570명이다.
태안(泰安)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한다”는 의미이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뜻과 대한 사람 태안으로라는 말로 꽃과 바다로 연결된 관광도시로 바다에 접한 태안군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탁트인 가로림만과 백화산 자락을 모두 조망 할 수 있는 위치에 지어져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만나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다.
태안은 서산의 서쪽에 자리한 태안 반도를 두고 서해를 향해 삿대질 하려 내닫는 형국이라고 한다. 조선 세종때 신숙주는 태안군을 두고 “비옥한 지대로 통칭한다”라고 하였고 남수문은 記文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태안군은 옛날 신라의 소태현(蘇泰縣)이었다.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을 재배하기에 알맞고, 또 어물과 소금을 생산하는 이익이 있어 백성들이 모두 즐겨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 고을의 읍내가 멀리 바닷가에 있으니, 이는 곧 해상의 구적들이 왕래 출몰하는 요충이다.
신숙주가 기문에서 “태안군이 충청도에 있어 해변의 요충지가 되어 국가에서 순성진을 설치하고 지군사로 하여금 이를 지휘, 관할하게 하고 있다. 
군내의 토지가 비옥하여 화마가 풍부하며, 어염의 이익이 있어 옥구로 일컬어왔다”라고 기록하였던 것처럼 오래전부터 태안 일대는 수산업이 발달하였다.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의 금광산(金光山)의 줄기와 태안의 도내리와 어은리로 뻗어 내려 오소산(烏巢山)을 이루며 동쪽의 상옥리와 인평리 사이로 뻗어내려 서우산을 이루고, 한 갈래는 남쪽의 상옥리로 뻗어내려 옥녀봉이 된다.
여기서 곧게 서쪽으로 뻗어내려 흥주산과 연결되며, 다시 태안 읍내 뒤에서 백화산이 이루어 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태안읍 북쪽 3리 지점에 있는데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 군 북쪽 13리 지점에 또 백화산이 있는데, 역시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두 산이 유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지명은 산의 모양이 마치 흰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명명 되었다고 한다. 태안군의 진산인 백화산에는 봉수대·영사대·어풍대·태을암(太乙庵)등의 고적에 대한 기록이 있다.
주요 유적지를 나열하면,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백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안은 5세기 말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해상 교통로였다. 따라서 당시에는 그러한 길목마다 먼 바닷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무사 귀향과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마애불이 조성되었으며 태안마애삼존불은 자연암벽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좌우의 여래입상(如來立像)과 중앙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을 배치하고 있다. 
가운데에 불상을 두고 양쪽으로 보살상을 배치하는 일반적 형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과거의 다보여래와 현재의 석가여래, 그리고 미래의 미륵보살로 조성된 삼세불의 양식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어우러져 영원한 부처님의 세계로 나아가는 신앙적 흐름은 백제 전성기 때 신앙을 현실세계에 구현하고자 하는 적극적 신앙심의 발로로 소박해 보이는 옷자락과 장식이지만 이를 표현한 세련된 솜씨는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이고, 큼직한 귀와 흘러내린 가사장삼, 손짓과 표정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수준높은 불교미술인 것이다. 
강건한 얼굴과 당당한 신체, 묵중한 법의(法衣) 등 6세기 백제의 불상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태안마애삼존불 앞에서 옛 백제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부처님의 얼굴이 숱한 비바람과 잘못된 민간 신앙으로 인해 코, 입 등 윤곽이 희미해져 안타깝지만, 오랜 세월 백성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바다 건너 떠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었을 자비심만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태을암이라는 사찰 이름은 동북쪽 400m 지점에 단군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태일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태일은 태을과 같은 뜻으로 천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매년 상원에 임금께서 향을 내리시어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어 왕조 차원에서 단군을 모셨음을 알 수 있다.
흥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修德寺)의 말사(末寺)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전설에 따르면 222년(구수왕 9)에 흥인조사(興仁祖師)가 창건하였다 하나 역시 신뢰성은 떨어지며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유형문화재)은 구조나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 때 조성되었으며 만세루는 1990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만세루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22m, 둘레 8.5m에 달하는 나무로 수령 900살로 나무의 상태는 양호하며 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老巨樹)로서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곁가지에 남근모양의 가지가 발견되면서 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다. 
특히 불임부부가 이 나무에 기도를 하면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널리 알려졌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임신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나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만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빚어낸 일종의 플라시보효과라 할수 있겠다.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푸른 여명과 붉은 노을이 번갈아 마음 한켠을 두드리는 풍경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그 외에도 태안에는 알려지지 않은 묘한 ‘포인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를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니, 태안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방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안 하면 바다만 생각하지, 산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적다. 당연한 일이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특성상 산을 보려면 동쪽으로 가야한다. 조령과 죽령쪽의 산세는 정말 숨이 턱 막힐것만 같은 웅장함을 자랑한다. 여길 넘어 삼국통일의 대장정을 나선 신라사람들의 용기에 절로 숙연해지는 바이다. 그에 비해 백화산은 그저 야트막한 동네 야산으로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백화산에는 백제인의 숨결이 담겨있는 곳이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지만, 아름다운 2등과 3등도 있는 법이다. 이번 주말에는 백화산을 방문하여 백제의 미소와 문화, 그리고 태안군의 노력을 한번 느껴보는건 어떨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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