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기자는 태안 남면에 위치한 청산수목원(대표 신형철)을 찾았다. 이곳은 태안의 숨은 명소로 3500여 종의 식물과 다양한 테마정원을 조성해 각각의 아름다운 정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특히 4월 15일부터 5월 29일까지 ‘홍가시 나무천국’이라는 테마로 축제가 열리고 있다.
태안을 찾는 관광객에게 꼭 한번 소개하고 싶은 청산수목원은 4월의 봄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붉은 빛을 띠는 홍가시나무가 유명하다. 
홍가시나무는 그리스어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속명 포티니아(Photinia)로 나뉘며, 새로 나온 잎이 빨간 광택을 띄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홍가시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 각각의 테마를 지닌 정원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고, 그 가운데 밀레(Millet, 1814~1875)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밀레 정원’이 있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교회의 종소리에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만종(The Angelus, 晩鐘)〉으로 유명한 밀레는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Barbi zon)파의 대표적 화가로 〈씨뿌리는 사람〉, 〈이삭줍는 여인들〉, 〈낮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밀레의 대표작이 조각상과 함께 펼쳐져 있는 정원 옆에는 단정한 청산수목원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와 바로 옆 다른 정원에 들어서니 기자가 젊은 시절 읽은 ‘달과 6펜스’의 주인공 고갱의 정원이 나타났다.
문명의 모든 것을 버리고 원시적 인간상을 꿈꾸었던 고갱은 타이티 섬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질문을 작품에 남겼다. 
이 작품을 완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뜬 고갱은 마흔의 나이에 가정과 직장을 다 버리고 그림을 시작해 반문명을 지향하며 고흐와 함께 인상파의 화려한 신화를 이끌었다.  
고갱 정원에는 그리스 로마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이 세워져 있어, 초록덩굴식물과 함께 환타지한 풍경을 자아내 웨딩 포토존 역할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갱 정원을 나와 바로 왼편으로 걷다보면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삼족오 미로공원〉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처럼 만들어진 이 미로공원은 고구려 ‘해뚫음무늬 금동장식(日光透彫金銅裝飾)’을 그대로 본떠 조성했다고 한다. 
〈삼족오 미로공원〉에 들어서면 미지의 느낌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당혹감이 순간 엄습한다. 미로 중간 고구려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현무도(玄武圖)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를 찾는 각별한 흥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고분벽화도 가운데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삼족오 미로공원〉을 겨우 빠져나와 팜파스와 핑크뮬리 가득한 ‘인생샷’ 명소로 알려진 벌판에 이르렀으나, 이들 팜파스와 핑크뮬리는 여름이나 가을에 찾아야 그 압도적 스케일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4월이라 이제 새순이 나와 자라는 중이다.
클로드 모네가 말년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그린 ‘수련’의 연못을 연상케 하는 모네 정원으로 향하는 길에 농장에서 귀여운 토끼 십여 쌍과 10여 마리 알파카들을 마주했다. 이 놈들은 세상 순둥이 얼굴로 관람객들을 멀뚱거리고 쳐다보고 있다. 
남미의 양으로 불리는 알파카는 지난 해 들여왔다고 한다. 알파카 실물을 생전 처음 봤는데 순진한 눈에 덮수룩한 털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선량한 집시들의 말 없는 얼굴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 3500여 종의 수목을 갖춘 태안 남면의 청산수목원은 20 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 넓은 땅, 거룩한 정성이 모이고 모여 가꿔지는 셈이다. 
메타세콰이어 숲 속에서 마주친 젊은 청춘남녀들이 인생샷을 남기는 장면을 바라보며, 인생의 아름다움은 청춘이라는 순간 어느 지점에 남겨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청산수목원을 찾아 태안의 숨은 보석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기대하며, 이날 느낀 정취와 기억을 가슴 안쪽 추억에 슬며시 접어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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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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