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충청남도 산림 자연연구소는 1993년 9월 1일 임업시험장과 치산사업소를 통합하여 산림환경 연구소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산림박물관길 11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세종시 편입에 따른 지역적 불일치 해소 및 선도 연구기관으로 발전을 위한 충남 산림자원연구소 이전 추진이 김태흠 지사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충청남도가 기본계획 수립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충청남도는 올해에 이전 타당성 확보 및 비용추계, 이전 예정지 선정등을 위한 학술 연구용역을 추진하여 이전규모가 최소면적 90ha 이상 즉 수목원(10ha), 산림복합단지(80ha), 치유의 숲, 산림교육센터 등을 등록기분 반영 약 685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공모 절차를 통한 대상지를 선정하고자 한다.
우리군에서는 김태흠 지사 2022년 8월 17일 태안 초도 방문시 현안과제로 안면도 유치를 건의하고, 서명운동 전개 및 유치 타당성 연구용역 착수와 태안군 의회 안면도 유치 결의문 등을 채택하고 범군민 추진 위원회 구성과 2023년 3월 3일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안면도는 원래 육지와 이어져 있던 곶(串)이었으나 조선 인조(1647년경)에 이른바 ‘기적운하’의 굴착공사를 시도할 때 지협부를 자른 결과 섬이 되었다가 1970년 안면교의 건설로 다시 연륙화된 섬이다
해안지형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굴곡이 매우 심하여 간석지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데, 해안선이 100㎞에 달한다.
안면도는 만입지를 중심으로 과거 소규모 간척이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쪽 연안은 해빈, 동쪽 연안은 갯벌과 염전이 발달하였다.
특히 천수만의 서쪽연안에 해당되는 안면도 해안은 파랑에너지가 미약하여 간석지가 광범위하에 분포하고 있다.
내륙지역의 지형을 보면 해발고도 110m 내외의 국사봉을 제외하고는 해발 100m 이하의 구릉성 평탄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산지는 창기리의 국사봉이 107.2m, 남서 측의 신야리 국사봉이 108.9m, 최남단 고남리 부근의 82.8m 고지 등이 최고봉이다.
이 구릉성 평탄지는 심층 풍화되어 있고 표토는 적황~적색 계통의 색깔을 띠는데 오랜 기간 동안의 평탄화 작용과 함께 화학적 풍화를 주로 하는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이다.
승언 1리에는 장문 외에도 초망소골과 같이 장수, 군대와 관련된 마을 지명들이 있다. 초망소골은 장문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뒷산 봉우리에 초소를 설치하여 사방을 경계한 지역이라 하여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승언(承彦)’은 일찍이 통일신라시대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서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대사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장군의 이름으로 안면도에 상주하면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안면도를 수호하였고 그런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승언1리를 비롯하여 승언8리까지 넓은 지역의 이름을 승언이라 명명했다. 
승언 장군에게는 ‘미도’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장군과 부인은 서로 무척이나 사랑해 정이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상부의 명령을 받고 출정하기 위해 장군은 부인과 헤어졌다. 부인 미도는 날마다 견승포 바위에 올라가 속을 태우며 남편이 돌아오길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이렇게 수년을 기다리다 부인 미도는 바위 위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바위가 남편만 돌아오길 기다리며 서 있는 부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고, 그 옆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또 솟아올랐다. 세상 사람들은 그 두 바위를 ‘할미할아비바위’라 불렀다. 
이 전설은 봄에는 매화, 여름에는 해당화가 줄지어 피어 ‘꽃지’ 또는 ‘花地’라는 이름이 붙여진 아름다운 해변과 방포항으로 연결된 꽃다리 그리고 두 바위 뒤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낙조가 있는 명승지와 남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어울려 그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동정망터는 장문 서쪽에 있는 해안 절벽인데 몽고군의 침입시 강화도에서 진도 제주도로 이동한 삼별초가 머물렀으며 해안 산꼭대기로 감시하기 좋은 장소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1개 소대의 감시초소가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의 해안포 진지소가 있었고, 수복 후에는 우리 국군의 해안감시 초소가 있었다. 
안면도의 중앙에 위치한  승언1리는 깊숙이까지 바다가 들어오는 마을로 바다가 막히고 내륙에 위치한 마을이된 것은 일제강점기, 하야시 쇼조우가 안면도에 임업소를 건립하면서 생긴 일이다.
아소상점의 회장이었던 아소 다키치는 1920년대 후반에 조선총독부에 82만 3천 원을 주고 안면도를 매입했다. 1927년 3월에는 ‘안면도 임업소’를 개설하고, 하야시 쇼조우를 초대소장으로 임명한다. 
당시 하야시 쇼조우는 임업 및 항공유 전문가로 안면도의 소나무 채벌과 송진 채취에 앞장섰다. 이로써 안면도 자원 약탈이 본격화되었다. 하야시 쇼조우는 안면도 임업소를 발전시키기 위해 간척사업까지 진행했다. 그 결과 승언1리 근방은 태안반도에서 진행된 대규모 간척사업의 시초가 되었다.
하야시 쇼조우는 자신이 안면도에 가져온 발전을 기리기 위해 그의 한국식 이름인 임성삼(林省三)을 기리는 비가 승언1리에 세웠다. 
비석 전면에는 ‘林業所長 林省三 公施惠 記念碑’라고 적혀 있는데, 비석이 세워진 곳이라 하여 오늘날까지도 이 동네는 ‘비석거리’ 또는 ‘빗돌골’이 라고 부른다. 이 비석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땅속에 묻혔다가, 현 문화원 신청사 앞 잔디밭에 세워져 있다. 
?하야시 쇼조우의 간척사업으로 여러 저수지들이 생겼지만, 그중에서도 큰 규모의 저수지는 승언리에 있는 1호, 2호, 3호의 세 저수지이다.
승언1리는 이 중 승언2호 저수지가 위치한 마을로, 그 시절의 흔적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히 피어나 여름이면 장관을 이룬다.
물고기가 잘 잡혀 낚시꾼들도 많이 찾는 이 저수지는 연꽃 군락지로 7, 8월이 되면 저수지 가득 연꽃들이 예쁘게 핀다. 
어떤 연유로 스님들이 이곳 저수지에 연꽃을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님들이 심고 간 연꽃은 점점 불어나 승언2호 저수지를 연꽃 군락지로 만들었다.
안면도 자연 휴양림은 조선시대부터 인공적으로 순수 국내산 소나무림으로 조림, 일제시대 및 6.25를 거치며 옛 모습이 많이 훼손 돼었으나 
안면읍을 중심으로 승언리 일대의 안면송은 1992년부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수령 50 ∼ 80년생으로 우량형질의 소나무가 울창하고 하층에는 다양한 수종이 분포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충남 서부권 관광벨트의 핵심 구간으로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 쓰였던 안면송 80만 그루가 서식하는 산림과 해양이 공존하는 최적지로 치유형 휴양관광을 지향하는 산림자원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이 태안 개발 지향점과 일치하며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되는 충청남도 산림자원 연구소 안면도 유치가가 꼭 이루어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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