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자로써 합각벽을 장식한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청주 남성리의 민가에서 볼 수 있는데, 합각면 위아래로 ‘성(星)’과 ‘신(晨)’ 두 글자를, 그 좌우에 ‘천(川)’과 ‘류(流)’자를 새겨놓았다. 이 글자로써 합각을 장식한 집 주인의 의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중용』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은 확실하다. 『중용』 30장에, “중니(공자)는 위로는 천시(天時)의 운행을 법 삼고 아래로는 수토(水土)의 이차를 쫓았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천시’는 성신의 운행, ‘수토’는 천류를 의미한다. 
살림집뿐만 아니라 정자의 합각에도 장식문양이 베풀어진다. 경남 합천에 있는 시도유형문화재 제198호 호연정 합각벽에서 암키와를 이용해서 난초를 표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기와 자체의 곡선을 교묘히 이용하여 난초 잎의 유연함을 잘 표현했다.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의 합각벽 장식처럼 암키와와 수키와를 이용하여 반추상 문양을 베푼 예도 있는데, 비록 간단한 문양이지만 건물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꾸미는 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 합각에 베풀어진 조형물들과 문양들을 숨은 장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있을 만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 있으면서 주거공간을 안락하고 상서롭게 유지해 주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정서적 안정을 누리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이 이들 장식들이 가진 미적 요소와 상징성 덕분이다.

「꿈이 수놓은 화폭-베갯모」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머리를 생명과 신성의 본질로 간주했기 때문에 베개를 목채 또는 돌로 만들어 무덤에서 미이라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이 나무나 돌로 된 베개는 시체의 머리를 받쳐주고, 몸의 기운을 유지하고, 피를 순환시키고, 악령을 쫒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실생활에 베개를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이용하였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 모본왕(慕本王) 4년(A.D.51)조에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 때는 사람을 베개로 베어 사람이 혹 움직이든지 하면 죽이어 용서치 아니하니…”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절단의 서긍은 「고려도경」에 고려의 수베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흰 모시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을 향초로 채우고, 양쪽 마구리는 실로 꽃을 수놓았는데 무늬가 매우 정교하고 붉은 잎으로 장식한 것이 연꽂잎과 같다.” 하였다.

「한국의 베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베개는 속에 왕겨·메밀껍질 등을 넣고 속싸개로 봉한 다음, 흰색의 무명츠오 홑청을 만들어 겉을 싼 것이다. 이때 양쪽의 끝은 둥글게 하든가 각지게 하여 각종 길상문을 수놓았다. 베갯모는 베개의 형태를 잡아주거나 베개를 장식하는 용도로 베개의 양끝에 대었고, 재질이나 문양에 따라 그 베개의 명칭이 결정되었다. 재질에 따라 수침(繡枕), 나전침(螺鈿枕), 화각침(華角枕), 상아침(象牙枕), 도침(陶枕) 등으로 불렸고, 문양에 따라 원앙침, 구봉침(九鳳枕), 수복침(壽福枕), 쌍룡침, 십장생침이라 하였다. 
특히 베갯모에 수를 놓은 자수베개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였으며 조선시대 여성이 준비하는 대표적인 혼수품이었다. 나전침이나 화각침은 재료의 희소성이나 비용으로 인해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상업의 발달로 부유한 상인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베개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하여 쓰였는데, 남자의 공간인 사랑방에는 목침과 죽침을 두었고, 여성의 공간인 안방에서는 부녀자용인 수침과 나전침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놓이는 공간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용도에 맞추어 적합한 재료와 형태를 살려 제작되었다.

「베개 옆의 화폭」
베개를 꾸며주는 베갯모 자수는 장수나 부부 금실에 관한 문양이 많다. 따라서 베갯모는 부부가 함께 쓰는 장침에 쓰였던 것이다. 이 베갯모의 양식은 원형 바탕에 중앙에는 남색 비단실로 수(壽), 복(福)자를 수놓고 네 마리의 박쥐문으로 구성시켰은며, 아자문(亞字文)을 돌려 마무리를 하였다. 주물틀에는 노루가죽을 대었는데 방습용이다. 박쥐의 한자어인 편복(??)의 복(?)과 복(福)이 같은 음으로 박쥐는 복을 상징한다. 장신구, 자수, 가구의 손잡이, 가구다리 등에서 박쥐문양이 많이 쓰였다. 자수에서 박쥐는 주로 주변을 장식하는 용도로 많이 쓰였고 수(壽), 복(福)자를 둘러싸거나 돈(錢)을 문 박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섯 마리의 박쥐는 오복(五福)을 상징하며, 또다른 베갯모는 불로초를 중심으로 금슬종고락(琴瑟鐘鼓樂), 수복다남자(壽福多男子)문이 둘러싸고 있고 사이사이 칠보문(七寶文)을 장식하였다. 금슬종고락에서 금슬(琴瑟)은 금실의 원말로 거문고와 비파를 뜻하며, 거문고와 비파 그리고 종과 북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것처럼 부부의 사이가 좋고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문양이다. 베갯모의 다른 한쪽은 수복다남자(壽福多男子)의 문자를 수놓아 장수와 복, 많은 자손 등 혼인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여러 가지 기원을 표현하였다. 
칠보(七寶)문은 자손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재앙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무늬이다. 칠보에는 복을 상징하는 전보(錢寶), 다복을 상징하는 서각보(犀角寶), 경사를 뜻하는 방승보(方勝寶), 타고난 복과 벼슬의 녹을 상징하는 화보(畵寶)와 서보(書寶), 장수를 상징하는 애엽보(艾葉寶), 다복을 의미하는 경보(鏡寶), 귀함을 상징하는 특경보(特磬寶)가 있다. 
또한 소나무 판재표면을 배가 약간 나오도록 둥글게 깎고 그 표면에 화각을 붙인 베갯모가 있는데, 화각기법은 소뿔을 펴서 편편하게 한 후 얇게 갈아내어 투명한 판을 만들고 검은색으로 무늬의 외곽선을 그린 다음 당채로 채색하고, 뒷면에 바탕색을 발라 그려진 면을 목재 면에 붙여 장식하는 기법이다. 이는 주로 여성용 함, 빗접, 실패, 자 등에 이용된다. 
이 베갯모는 봉황 한 쌍 사이에 새끼 세 마리를 배치하고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을 깃들였다. 황색 바탕에 주황, 녹색, 백색이 서로 강한 대비를 갖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소뿔이 약간 노랗게 변하여 색들이 중화되어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한 쌍의 봉황과 일곱 마리의 새끼를 그려 넣어 구봉침이라 부르며 자손번창을 기원하였는데 그 무늬의 일부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은 영조(靈鳥) 중의 으뜸으로 상징적인 서조(瑞鳥)이다. 덕(德), 체(體), 의(義), 인(仁), 신(信)을 상징하는 오색 빛의 털을 지니고, 다섯 음으로 된 울음소리를 낸다고 전해진다. 
봉황이 문양으로 사용된 것은 중국의 상(商), 주(周)시대부터이며 한대(漢代) 이후에는 서방으로부터 전해진 공작의 화려함이 가미되어 당대(唐代)에 이르러 화려함의 극에 달한 봉황의 문양이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에서 봉황은 삼국시대부터 보이고 용문과 더불어 황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즐겨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봉황은 왕실에서 민간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점차로 수호신적 이미지보다는 장식의 일부로서 성격이 강화된다. 조선시대 민화에서 봉황의 모습은 꿩이나 닭과 유사해지고 상징하는 의미도 세속적인 길상의 의미가 강하다.

「소망과 꿈이 수놓인 침구」
베갯모의 문양은 대부분 자손 번창과 부귀 장수를 누리는 것을 염원하는 것으로,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 등 식물문, 복을 나타내는 박쥐, 사악한 것을 막아주는 호랑이, 다복한 가정을 꿈꾸는 구봉문 등의 동물문, 수(壽), 복(福), 희(喜) 등의 길상문자(吉祥文子) 등이 많이 쓰였다. 베갯모에 나타난 문양은 아름답게 꾸미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고 그 주제는 주로 그것을 쓰는 사람에 대한 축복이다. 소망을 표현하며 좋은 꿈을 꾸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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