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경자 태안소식지 편집위원

태안의 진산이며 태안 8경 중 제1경인 백화산 아래로 샘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언제나 물이 많이 흐르던 곳이어서 “샘골”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삼한 시대 마한 54개 소 도국 중 신소도국에 속했고 하늘에 제사하며 평안을 빌었던 신성한 마을이다.
사내아이들은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아낙들은 빨래터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배고프던 시절 서리의 추억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어 정겹고 포근한 마을이었는데 1980년대 이후 산에서 떠 내려와 쌓인 모래와 복개 공사등으로 방치되기 시작하였고 이 동네는 터(基)가 세어 사람이 죽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아 사람들이 살지도 찾지도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런 마을이 최근에 생태 문화 도시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군민의 품으로 돌아와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작지만 아담하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어서 자연 친화적이며 늘 물이 흐르고 공기가 맑아 산책하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산책로 가운데로 내가 흐르고 사계절 꽃이 피어 자태를 뽐내며 향연을 펼친다. 
진달래 영산홍이 분홍빛으로 봄을 장식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는 새하얀 이팝나무꽃과 마가렛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장식하고 벌 나비와 새들이 초대되어 노래하고 춤추고 물속의 잉어들은 지느러미 짓을 하며 흥을 북돋운다.
백색의 꽃들이 가는 인사를 하면 금 계 국이 피어 공원은 어느새 샛노란 색으로 물들고 뙤약볕에 검붉게 익어가는 고추 내음은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서면 파란 하늘과 배롱나무꽃이 조화를 이루며 핑크뮬리와 스큐령이 손짓을 하고 눈 덮인 겨울날 햇빛에 반짝이는 남천 나무 열매와 벌거벗은 말채 가지는 보는 사람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이렇게 사시사철 변화무쌍하게 연출하는 공원에는 온갖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군데군데 설치된 정자에서는 고단한 삶을 잠시 잊고 편안하게 쉼표를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백화산 등산로와 이어지는 입구에 자그마한 저류지가 있는데 늘 물이 차 있고 물속에서 뛰노는 잉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물 위엔 데크로 된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를 건너면 청조루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은 기쁨과 슬픔의 그림을 그려놓고 축복과 위안으로 색칠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서 언제나 편안하고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랑방의 이름이 청조루(靑鳥樓)다.
파랑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숨겨진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춰본다.
신라 문 무 왕 때 의상대사가 해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 파랑새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굴 앞에서 칠일간 기도를 하다가 붉은 연꽃 속에서 나타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가 바로 홍련암이다.
홍련암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해수 관음 도량이다.
해수 관음보살이 바닷가에 많은 이유는 인도 남동쪽 해안가에 있는 포탈라카산의 굴속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관음보살이 머무시면서 그곳 사람들의 중요한 예배 대상이고 그분이 모든 것을 다 관장해 주신다고 믿고 살았던 곳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보타락가(補陀落痂)라는 한자음으로 바뀌고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바닷가 곳곳에 해수 관음 도량이 많이 있다.
이곳 청 조루를 통과하면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인데 20분 정도 올라가면 바로 태안마애삼존불을 친견하게 된다.
이 마애삼존불에도 관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는데 보살님보다 격이 높은 불상이 곁에 계시지만 중앙에 배치되어있는 관음보살님은 적어도 천 사백 오십년 이상 그 자리에서 태안을 보살펴 주고 사람들의 서원을 들어주고 계시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 태안주민들은 농사도 짓지만 바다가 유일한 생활 터전이기 때문에 해수 관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풍어와 무사 항해의 소망은 가장 절실한 기도 제목이었을 테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관세음보살님이 함께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태안지역의 마애삼존불을 비롯하여 오래된 고찰에 관음보살님이 주불로 모셔진 관음전 또는 원통전이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대웅전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안흥의 태국사에는 아직도 관음보살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어쩌면 우리 태안은 낙산사의 홍련암보다 더 일찍 관음보살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의 조성연대가 낙산사보다 훨씬 앞서있기 때문이다. 
석 굴 안으로 들어간 파랑새의 발자취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태안지역의 모든 사람에게도 관음보살의 가피가 전달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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