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마을회관이 유일한 문화공간

과거 70년대 이전에 마을 입구나 중심에 자리하던 ‘마을회관’이 있었다. 현재 마을마다 운영되고 있는 마을회관의 기능과는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곳은 주민들이 유일하게 문화적 혜택을 받거나 정보를 교환하던 곳이었다. 문명의 혜택도 그곳에서 가장 먼저 느꼈다. 마을회관에 가장 먼저 전기나 전화가 들어왔다. 마을사람들이 회의를 하거나 잔치를 할 수 있는 곳도 마을회관이 유일한 장소였다.

70년대 산업화 시대와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문화변동도 함께 했다. 군 단위 시골까지 대형 군민회관이 들어섰고, 도심에는 시민회관이 들어섰다.

당시 군민(또는 시민)회관은 문화복지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연설을 하거나 반공의식화 교육을 위해 웅변대회 같은 것을 하고 싶은 강당이 필요했다. 군민회관이라는 곳은 1년에 몇 번 정치인들의 연설에 필요한 강당운영이 전부였고 그곳에서 주민들의 문화활동이 존재할 여건은 충분하지 않았다.

80년대, 문화공간은 정치연설을 위한 공간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군민회관은 문화예술 활동을 옵션으로 끼워 ‘문화예술회관’이라는 명칭으로 변천되었다. 그 전까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보면, 미술전시회는 아가씨가 커피를 배달하는 다방의 벽면을 이용하거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대도시의 사설화랑을 이용했고, 음악회는 교회나 학교 강당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찾아간 곳이 정치인들이 연설이나 하던 군민회관의 앞마당, 벽, 강당을 활용하면서 전국적으로 모든 군민회관을 문화예술회관으로 변모시키는 일익을 담당했다.

90대~ 현재, 문화예술의 브랜드 가치 유입

90년대 이후에는 문화예술의 브랜드 가치를 추구하며 ‘예술의 전당'과 같이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한 기관명칭들이 탄생했고, 이후 지역에서는 지역특징을 살린 문화예술 기관명칭들이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특색 있고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생성되었다.
즉, 시대적 문화변동에 따라 70년대 전후에는 ‘마을회관’, 80년대는 '군민(시민)회관', 90년대는 ‘예술의 전당’, 현재는 ‘(지역특징을 내세운 기관)’ 등의 문화예술 기관명칭 변천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태안문화예술회관 시대적 후진성 내포

태안군의 문화예술회관이 개관 10년이 넘었다. 국내 문화예술 기관명칭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때, 태안은 개관초기부터 80년대 회관의 개념으로 기관명칭이 지어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이미 시대적 후진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화예술회관은 문화예술인들의 공연과 전시, 또는 주민편의시설 제공 등이 주요기능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히 따라붙는 부수적 기능에 불과하여 별다른 문화관광 상품이 되지 못한다.

지역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 운영도 문화광관산업으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대관위주, 일부 찾아가는 문화사업이나 충남도 및 기관 등의 지원사업 또는 순회공연 등은 타 지역에서도 열리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태안군민들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목적에 충실한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넓은 범위의 문화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이는 비단 문화예술사업을 추진하는 태안군에 전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다. 문화변동을 가장 빠르게 느끼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최소한의 조언이라도 있었다면 변화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지역에서 전문가라고 하는 문화예술단체 구성원들이 일부를 제외하면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사회적인 물의까지 일으켰던 사례가 있어 관공서에서는 기대할 만한 기획과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힘들다.

태안문화예술회관은 시대의 문화변동에 맞게 군민들의 문화의식 수준에 맞는 전문화된 운영을 위해서라도 후진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관명칭의 변경부터 고려해야 할 시기다./이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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