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읍장 유연환
태안읍장 유연환

필자는 지난 1월 2일 태안읍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고향에서 마지막 봉사를 한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오랫동안 본청에서 근무를 하다가 읍으로 내려가게 돼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가세로 군수께서는 사령장을 주면서“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고, 그 뜻을 받아 취임사에서“사람냄새 나는 복지행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읍 소재지나 시골 마을 어디에 살든 균등한 삶의 질,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는 태안읍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태안읍은 전임 조한각 읍장께서 복지행정에 신경을 많이 써줘서 지난해 현금 7천여만 원, 물품 4천500여 만 원을 기탁받았다. 
필자는 이 목표를 상향하여 올해 현금 1억 원, 물품은 5천만 원으로 높였다. 다행히 연초에 많은 분들이 기부를 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기부금을 내주신 분 중에는 가슴을 울리는 훈훈한 사례가 여럿 있다.
기간제로 일했다는 한 근로자께서는“예정에 없던 일을 한 달 더 할 수 있게 됐다”고 하면서 한 달치 월급 220만 원을 기탁해 주셨다. 이 분은 이름도 사는 곳도 밝히지 않은 채“추운 겨울을 보내기에 힘든 어려운 이웃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고령의 할머니 한 분은“그동안 태안군에서 받은 혜택이 너무 많았다”며 현금 15만 원을 기탁해 주셨다. 이 분 역시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으셨다. 
자신을 동문5리에서 산다고만 밝힌 노인 어르신께서도 50만 원을 기탁해 주셨다. 어르신께서는“정말 적은 돈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행복한 명절을 보내는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주셨다.
동문4리에 사시는 고령의 어르신은 운전면허증을 자진반납하고 인센티브로 받은 10만원을 기탁해 주시기도 했다. 
이렇게 도움을 주신 분들은 넉넉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부를 해주셨다.
비록 큰 금액의 기부금은 아니지만, 그 높은 뜻은 단순한 액면가로 판단하기 어렵다.
연초이지만 현재 기부금액이 1천만 원을 넘어섰다. 물품 기부도 8백여만 원에 이른다. 착한 냉장고 후원사업도 지난해 7개월 동안 1만 3486명이 이용했다. 하루평균 50~60명이 꾸준히 이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착한 냉장고에 후원해 주시는 단체와 업체도 11곳에 이른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후원업체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 연휴 전날까지 하루에 어려운 가정 5~6가구를 방문하여 격려와 상담을 하면서 생필품을 전달하였다. 이분들이 한결같이 힘들게 사시는 모습이 마치 벼랑 끝에 서신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노부부 가정은 보일러가 고장나 추운 겨울을 전기장판에 의지해 살고 계셨다. 거실과 방바닥이 말그대로 냉골이었다. 세대주는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배우자도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셨다. 최근 보일러를 수리하였으나 작동이 되지 않는 딱한 상황이었다. 이 말을 듣고 보일러를 살펴봤다. 10년이 넘은 보일러가 워낙 낡아서 통째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에 군청 생활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군청 실무자는 설명을 듣고 다음날 즉시 보일러를 교체해 주었다. 만약에 이런 판단이 없었다면 이 분들이 설연휴 최강 한파에 어떻게 지내셨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장애인 아들이 돌보며 사는 집도 있었다.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마음이 짠했다. 장애인 자녀는 구김살 없이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 주었다.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면서 무엇인가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득 어느 농부시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나만 잘살면 뭐해, 다같이 잘 살아야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원룸에 사시는 한 어르신은 외로움에 눈물을 글썽이셨다.“이렇게 방문해줘서 고맙다”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 하셨다. 
필자가 자리에서 일어날까봐 계속 붙드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대략 보름 동안 50여 가구를 방문하였다. 대부분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나고 계셨다. 이분들은 대개가 지병을 안고 있어 방안에는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성인병인 고혈압, 고지혈증은 기본이다. 당뇨에 심장질환, 심지어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도 계셨다. 
우리 주위에 왜 이렇게 힘드신 분들이 많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알리지 않고 체념하고 사시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연령대가 높고 대부분 혼자 사신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취약계층의 고통과 절망이 한계 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꼈다. 이분들 대부분이 빈곤의 쳇바퀴에 갇혀 살고 계신다. 나이들고 병들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만약 우리 사회가 보듬지 않는다면 이들은 갈데가 없을 것이다. 주거형태도 대부분 저렴한 임대주택이다. 주거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아무리 복지예산이 늘고 돌봄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회적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며 두터운 복지, 촘촘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필자는 언젠가부터 출근길에 잘 닦인 큰길 대신 어려운 분들이 사시는 좁은 골목길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이분들의 힘겨운 겨울나기를 생각하고 또 다짐한다. 앞으로 읍장으로서 어려운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생각이다. 주변에 온기를 전해야 할 곳이 아직 많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길,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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