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1844년 7~8월. 당대의 대학자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뜨거운 한여름, 시리디시린 한겨울 그림을 그렸다. 바람 타는 섬 제주 남서쪽 대정현 바닷가 근처 초막에서 집 사방에 탱자나무 가시를 치고 유배살이를 하면서 후대에 길이 남을 명작을 완성한 것이다. 바람 휭휭 몰아치는 한겨울 언덕에 시들어가는 노송과 이를 받치는 어린 소나무, 그리고 잣나무에 둘러싸인 초가집을 물기 부족한 갈필로 깔깔하게 그리고 「서로 잊지말자(장무상망·長毋相忘)는 붉은 인주로 낙관을 꾹 찍었다. 그해 청나라행 사신단의 통역관으로 떠나려던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명작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의 탄생이다.(현재는 국가에 기증)
2020년 11월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길이 14m의 『세한도歲寒圖』가 우리 앞에 1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한도歲寒圖』는 내년 1월 31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기증 기념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통해 우리와 만난다. 세한도 전시는 2005년 용산에 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네 번째지만, 그 전모가 나온 건 2006년 ‘추사 김정희-학예일치의 경지’ 전 이후 처음이다. 자식보다 아끼는 그림을 기증하기로 한 소장자 손창근씨의 결단을 기려 박물관 쪽은 역대 최대의 특제 진열장까지 마련했다. 두루마리 앞쪽 바깥 비단 장식에 있는 청나라 문인 장목(1805~1849)의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 표제부터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추사가 말년에 기약 없는 제주 귀양생활을 할 때, 자신에게 중국의 귀한 서적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린 이 그림은 실제론 70cm 정도에 불과하다. 10cm 이상의 화폭 대부분은 그림에 대한 절절한 찬사를 담은 당대 청나라 문인 16명과 20세기 국내 전문가 4명의 감상글로 채워져 있다.
학문과 예술이 일치된 조선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지만,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그림에 얽힌 한·중·일 삼국의 아름다운 인연 때문이다. 조선 말기 그림을 선물 받은 역관 이상적이 중국으로 가 청나라 문인의 글을 받고 자식에게 물려줬으나, 경술국치 뒤엔 친일파 민영휘 일가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다시 추사학을 정립한 일본학자 후지쓰카 치카시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뒤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일본의 후지쓰카 거처까지 찾아가서 그림을 돌려달라고 간청해 찾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마침내 1945년 해방 직전 우리 땅으로 돌아왔다. 손재형은 정치에 뜻을 두고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자금으로 쓰기 위해 그림을 팔았고, 이를 입수한 개성상인 손세기·손창근 부자가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40여 년을 소장해 오다가 손창근씨가 2020년 1월 그림을 위탁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세한도歲寒圖』는 마침내 국민의 공공 문화유산이 됐다.
추사는 논어의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구절에서 세한도의 모티브를 얻었다.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고 피할 때도 해마다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죽고 싶을 만큼 외롭고 힘든 고난의 삶을 『세한도歲寒圖』 속 노송과 집을 통해 자화상처럼 풀어냈다. 이를 받아들고 감격한 이상적은 이듬해인 1845년 중국 사행 때 들고 가 청나라 문인들의 세한도 감상 글귀를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조선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맥락의 감상편을 덧붙이면서 그림은 단순한 문인화에서 한·중·일 삼국 석학들의 인문적 역량과 예술혼이 깃든 거대한 문예사적 기록이 됐다. 
『세한도歲寒圖』 말미에 실린 한학자 위당 정인보(1893~1950)의 글이 뭉클하다. “시절은 도탄에 빠지고 핍박은 갈수록 심해져 후미진 산골짜기로 도피할 것을 꾀하느라 바빠서 시를 지을 겨를이 없었다. 나라가 광복을 찾게 되어 손군과 서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다시 이 그림을 내놓고 서로 마주보면서 감개에 젖었다...”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은 이렇게 썼다. “이 그림을 보니 문득 수십 년 동안의 고심에 찬 삶을 겪은 선열들이 떠올라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말았다. 추사에게 지각이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내려두고 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후대의 그림평을 담은 화폭은 곳곳에 큰 여백이 남아 있는데, 소전 손재형이 후대 더 많은 감식안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비워둔 공간일 것이다. 21세기 혼란한 감염병 시절, 세한도 화폭의 여백에 새로운 눈길로 그림평을 써넣을 이는 누구일까. 세한도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한도에 대한 감상을 갈무리해 자신만의 평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애 다시 『세한도歲寒圖』를 다시 볼 기회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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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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