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수남 칼럼
▲ 류수남 칼럼

우리사회는 한풍(寒風)에 흩날리는 눈발(白雪)처럼 혼란(混亂)하고 정치권은 육칠월 장마철의 맹꽁이 소리만큼이나 시끄럽다. 그렇다보니 민심(民心)은 흉흉(匈兇)하고 지역은 혼란하다. 
속고 사는데 익숙한 민초들은 왜 이리 소리가 나고 왜 이리 흉흉한지를 알 수가 없다. 고학력(高學歷)과 화려(華麗)한 경력(經歷)으로 도배한 정치인들은 민초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왜 낼까? 충고(忠告)는 받고 잘못은 고친다는 요고순목(堯鼓舜木)을 몰라서 일까? 
아니면 자신의 어리석음은 정중히 사과하고 깨닫는 경사불민(敬謝不敏)을 몰라서 일까? 정치를 부정(不正)과 비리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신과 양심, 학력과 경력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을 보는 가감승제(加減乘除)의 계산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정치가 아닌 패거리정치를 하다 보니 더럽고 치사(癡事)한 모습을 보이는지 모른다.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지금 정치권은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억지,고 누구의 말이 거짓말인가. 또 누가 양심적(良心的)인 정치인이고, 누가 자신의 영달(榮達)과 가문의 영광(榮光)만 챙기는 생계형 정치꾼이고, 누가 눈치 백단의 기회주의자인지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또 어떤 정치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이고, 어떤 정치인이 양심(良心)있고, 어떤 정치인이 지역을 생각하는지를 우리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작금의 정치는 마치 막말과 억지, 고함(高喊)과 몽리의 경연(競演)같다. 이런 모습은 경향(京鄕)각처가 다를 바다. 남한산성 밑의 큰 동네 성남시와 백화산 밑의 작은 마을 태안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우리 다 같이 생각해보자. 지역을 걱정하는 어른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인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정론직필(正論直筆)하는 언론(言論)이 없어서 일까? 지금 태안군청 정문 앞에는 많은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이유가 뭔지 우리다(多)같이 생각해보자. 
태안군의회는 악성민원근절 및 공무원 등의 보호 지원에 관한 조례도 중요하다. 이보다는 군의원들과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바로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시책민원은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군의원들도 책임을 느끼고 무한 책임을 져라. 꼬부리진 오이도 속은 있고, 바다의 무법자인 상어와 덩치가 백화산만한 고래나 또 모래알처럼 작은 곤쟁이도 입이 있어서 누구나 할 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민의 대표로 선출된 군(郡)의원들은 서로 마주앉아 할 말은 하며 소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한마당 토론회 자리를 만들어 끝을 맺는 조례도 제정해보라.  
그리고 피아가 정치꾼들처럼 억지나 막말, 욕설과 폭력 변명과 고성(高聲)이 없는 서로를 알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라. 또 길이 없다면 개설(開設)하고, 옛날 길이 패였으면 폐도(廢道)할 각오로 만나라. 또 도라지는 천년을 묵어도 산삼(山蔘)이 될 수 없음도 알자.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송대관의 노랫말처럼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 
장기전은 피아(彼我)모두가 손해임을 알자. 특히 지역대표인 군(郡)의원들은 자신의 선거구만 보지 말고, 군민과 지역 전체를 봐라. 특히 여야의 편 가름과 또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군민이 행복한 의회라는 의정구호에 맞게 모두를 봐라. 그리고 시책(施策)사업에서 발생한 민원은 집행부에만 밀지 말고, 의원들도 본회의장에서 예산을 통과시킨 책임을 져야한다. 지금 태안에서 일고 있는 민원들은 의원들이 성의와 열의만 있었다면 흑백(黑白)과는 관계없이 해결됐을 것이다.
집행부와 의회와 민원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동행(同行)길을 찾아라. 뜻이 있는 사람은 큰일을 한다는 유지자(有志者) 사경성(事竟成)이라 했다. 무슨 뜻인지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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