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무더위가 이렇게 심한 건 지구촌 온난화 때문인데, 예년에 비해 시내를 걸어 다니다 보면 시원한 계곡이 절로 떠오른다. 셔츠 단추를 한두 개쯤 풀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발을 담그면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씻어주는 그런 계곡 말이다. 사람들은 더우면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갈 생각부터 하는데, 몇백 년 전 조선시대 선비의 피서법 역시 지금과 별다를 게 없었다. 
탁족(濯足)에 관해서는 여러 문헌이 전해지는데, 조선 중기 학자 김성원의 <서하당유고>에는 ‘성산계류탁열도’라는 그림이 나온다. 16세기 혼돈한 정치 상황 속에서 이재(利財)를 쫓는 대신 자기 수양에 힘쓴 선비들이 계곡에 모여 더위를 씻으며 시화(詩畵)를 즐기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한글로 편지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언간독(諺簡牘) 예문에도 탁족이 실려 있으니 탁족은 꽤 성행하던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위에 괴롭습니다. 마침 술과 안주가 있기에 소식을 전하니 산수 좋은 곳에 가서 탁족이나 하면 어떠하오리까. 옛글에 관을 벗어 돌 벽에 걸고 이마를 드러내 솔바람을 쐬인다 하였사오니 이 아니 상쾌하겠습니까.” 결국 술과 안주가 있으니 좋은 계곡에 가서 탁족을 즐기자는 내용이다. 

마음마저 얼게 하는 차가운 계곡

한 여름 탁족을 즐길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고민 끝에 경남 울주군 내원암 계곡을 향해 짐을 꾸렸다. 영남 제일의 탁족처로 손꼽히는 곳인데, 울산 울주군과 경남 양산시 경계에 있는 대운산(大雲山, 742.7m)자락에 자리한 계곡이다. 대운산은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절륜한 비경을 자랑했다.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산세가 우락부락해 산줄기마다 박치골이며, 시명골, 도통골, 내원암 계곡 등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계곡을 숨겨두고 있었다. 이들 계곡은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아 계곡 트래킹을 즐기기 좋은데, 그래서인지 부산과 울산 경남 사람들의 산행 1번지로 손꼽힌다고 한다. 
사람들이 여름철에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상대 마을 초입에 자리한 계곡이다. 주위에는 펜션과 음식점이 몇 곳 들어서 있고, 마을을 지나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내원암 계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곧 계곡이 접어드는데,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깔려 있고 수정처럼 맑게 물이 흐른다. 계곡 끝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에 젖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내원암 계곡은 생각보다 수심이 얕았다. 대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이 크고 작은 바위를 거쳐 돌면서 많은 애기소들을 만드는데, 물이 얕아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좋아 아이를 둔 가족이 이 계곡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8월 조금은 한적한 계곡, 울창한 참나무 가지를 뚫고 한여름 햇살이 어깨 위에 떨어지는데,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건 덤일까. 손바닥에 물을 가득 담아 얼굴에 갖다 대니 이마가 서늘해진다. 계곡을 따라 계속 거슬러 10분 정도 더 올라가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폭포와 함께 소(沼)와 담(潭)이 펼쳐졌다. 소는 푸르고 담은 검다. 한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니 세상 시름이 저만치 달아나는 기분이다. 
예부터 탁족은 피서법일 뿐 아니라 정신 수양의 한 방법이기도 했으며, 선비들은 산간 계곡에서 탁족하며 마음을 씻고 가다듬었다. <맹자>에는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의 흐림이여 나의 발을 씻으리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탁족’은 여기서 따온 말이다.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의 처신법과 인격 수양에 달렸다”는 뜻인데, 자연과 벗삼아 유유자적한다는 도가적인 속성도 깃들어 있다. 물에 발을 담그고 10여 분 앉아 있었을까. 어느덧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소름이 오슬오슬 돋아 좀 더 있자니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20여 분을 그대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영남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은 절집

발을 말리고 계곡에서 나와 내원암으로 향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조금 아쉽지만,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한 호흡 깊은 숨을 들이마시니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숲 분위기는 첩첩산중이고, 울산광역시에 자리한 산과 골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강원도 오지를 걷는 듯한, 한여름 피서철, 계곡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도 이 길은 한적했다. 
길이 제법 비탈지기 때문일까. 숲길은 깊다. 굽이치며 돌아가는 길이 꼬리를 치며 달아나는데,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으며, 숨이 제법 가팔라지고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땀을 흠뻑 흘리며 1시간 정도 올랐을까.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수령이 450~500년, 둘레가 6.5m, 높이가 18m에 달한다. 드디어 팽나무 뒤로 내원암의 기와 지붕이 수줍게 나타나는데, 내원암은 소박했다. 대웅전을 비롯한 당우만 5채가 고즈넉한 산자락에 들어서 있는 내원암은, 신라 중기 고봉 선사가 창건했다는데,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었다. 고봉 선사는 창건 당시 내원암이 들어선 자리를 ‘영남 최고의 명당’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내원암은 대운산 꽃봉오리 모양을 이룬 다섯 봉우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내원암에 서 있는 팽나무는 원래 내원암 본사였던 내원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모습이 코끼리를 닮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아 보인다. 
내원암 계곡 못지않은 계곡이 또 있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계곡인데, 자연휴양림 초입부터 정상을 향해 장대한 계곡이 이어졌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은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9m) 자락에 걸쳐 있는 휴양림으로 서어나무와 박달나무, 노각나무, 들메나무가 가득한 숲이다. 계곡은 탐방로 오른쪽을 따라 길게 흐르고, 커다란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위로 넓은 잎사귀를 가득 매단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잠시 쉴 겸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니, 그 차가움에 이 사이로 짧은 비명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다시 20여 분을 갔을까. 갑자기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파래소폭포다.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인데, 높이 15m 수직으로 우뚝 선 병풍바위 아래로 힘차게 낙하했다. 물이 떨어져 만든 소의 빛깔은 짙푸르고, 주변 원시림과 어우러진 그 색이 하도 신비로워 이무기라도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소에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깃들고, 파래소폭포의 원래 이름은 ‘바래소’였다는데,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설에선 요즘도 기도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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