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안면도

너와 연결되듯
거친 숨 쉬는 육지의 손과
파도에 잠길 듯
가냘픈 섬의 옷자락 잡으러
길을 내는 긴 쌍연육교 건너
섬의 깊숙한 자궁으로 파고들어
육지에서 지친 사내는 제 속 못 이겨
서쪽바다 갯벌에 검은 오물을 토한다
이내 흰 포말의 거품을 문 파도는
게눈 감추듯 쓸어
커다란 치맛자락에 감추고
나는 흰 이빨 드러내며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 하고
살가죽에 소금기 묻은 채
사람들 숨쉬는 마실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수평선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외롭게 깨어 몸에 울혈을 쌓고
근시의 사랑으로 먼 수평선의
울혈을 긁어모은다
목젖 깊숙이 낚시줄 드리울 때
누가 오목한 심장을 담아내고 있는가
손바닥 같은 심장을 꺼내
하늘 높이 들어올려
젖은 손으로 일몰을 보듬은 적 있었나
판목처럼 하루에 두 번 우는
심장의 젖은 무게
섬인 듯 만지고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날 벼린 퍼런 서슬에
한참동안 숨고르기가 어려웠다
바닷물에 투영된 뼛속의 그리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어도
이 길을 나는 가야지
해변의 가로등빛 하나 둘 실눈 뜨고
어둠의 빛 작게 사그라져
보이는 건 이즈러진 달빛 아래
그리움의 처절함이어라
아무래도 숙명이다 저 푸른 소나무
지금 소나무 아래 그녀의 그림자 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섬에서 기억해낼 수 있는 건
그녀는 지나간 그 무엇으로 사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속내 타들어가고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이지만
습기 찬 솔밭 너머 그림자 되어
하루치 서러움 함께 흘러내린다

보이는 것은 끝없는 수평선
파도는 온몸으로 부딪혀 부서지는
소멸의 아름다움이지만
갈라진 바다 속 상처 찰랑이며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웃는다
아무것도 삭여내지 못한
보이지 않는 숱한 결정들
바다 앞에서 애잔한 시절 그리워
섬에 도착했을 때
말없이 지켜보던 늙은 청솔 길을 막는다
그대 사랑을, 그대 바람을 아는가
하지만 그곳은 화려한 농염도 없었으며
해어지고 찢겨진 어망 깁듯
반복되는 애증의 실상 뿐이지만
이젠 모두 지나가버린 뒤의 허전함
갯바람 불어와 솔들이 노래하지만
저 멀리 한구석 보이지 않는 어눌한
그리움 왈칵 솟아오르는 건
아직 가슴 언저리 뜨거움이 남은 걸까

열리면 육지 되고 잠기면 외로운 섬
썰물 빠진 펄밭 길 돌아
무겁게 등짐 진 농게 어디론가 떠나고
명상에 반쯤 잠긴 할미바위 정수리
날개 접은 바닷새 한 마리
온종일 햇살에 미끄러져 내린
수평선을 응시한다
열리면 기쁨 잠기면 한없이 설움되는
빈 그물 걷어 올리듯 반복되는
갈라진 바다 속 어부의 일상
상처 찰랑이며 사는 섬 안면도

그녀는 걷기만 할 뿐
아무 말하지 않았다
얇은 바람도 불지 않아 고운 파도
할미 할아비바위 그녀와 함께 내려앉고
포말 그리워 가슴 철썩일 때
여기쯤에서 쉼표를 찍어
그녀를 기억하고 싶다
아무려면 바다에 배 떠있지 않고
조가비 노래하지 않으리
그녀도 나도 그래 그런 것이지
머물지 못하고 떠나지만
그녀를 예쁘게 보내야하는 것
순리인 것 알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아직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바닷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풀잎 바람에 춤출 때
문명의 이기는 그들을 밟았고
흔적은 깊게 패인 상처로 남아
보이는 건 무지요 배타뿐이다
생명, 그들에게도 목숨은 소중하건만
통보리사초 모래를 힘껏 껴안아
밧개 해안을 든든하게 지켜주는데
인간의 편리함으로 여유는 사라진 채
공존 속 현실을 살아가야 하거늘
이 땅엔 숨소리가 허무하게 들린다
평화, 소리내어 부르기는 쉽지만
마음속에 소유하긴 쉽지 않은 것
인간의 무자비한 잣대와 욕심으로
통보리사초는 그저 풀로만 보일 뿐...

※ 천천히 나무들은 늙어가지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처절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켜냈어라. 타는 목마름 아픔 속에서도 꼿꼿하게 자리 지켜낸 저 푸르른 솔숲을 보라. 짜디짠 울음, 거친 비바람 여린 살갗 찢겨나가면서도 청솔가지 불꽃 일으키며 견뎠고, 오직 밝아올 새벽 생각으로 찬란하게 태양이 솟아오르는 푸른 숲과 바다를 거느린, 섬을 꼬옥 품어 안은 희망의 저 푸르른 안면도 솔숲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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