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필서예가 림성만
▲ 문필서예가 림성만

「은하의 동서쪽 별이 만난다는 칠석」 

여름철의 또 다른 명절로는 칠석이 있다. 우리에게는 칠석에 행하는 풍습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설화를 포함한 칠석의 유래는 여름철 별의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이때에 별자리는 북두칠성이 한쪽에 몰려 있고 동쪽과 서쪽에 큰 별이 서로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는데, 여름철 별자리가 만들어낸 명절인 셈이다.
그 때문에 선조들은 칠석이 되면 칠석맞이 굿을 하거나 칠석차례를 지냈고, 여자들은 직녀처럼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으며, 처녀들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솜씨를 좋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다음날 재 위에 뭔가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믿었다. 또 민가에서는 장마 뒤 습기를 머금은 것들을 ‘쇄의상(?衣裳)’을 행했는데, 여름 햇볕에 곡식과 의복, 책을 말리면서 습기를 제거하는 풍습으로, 이 역시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방법이었다. 

「무더위를 잊으려 여름 정취를 노래하네」

선조들의 여름나기는 피서(避暑)가 아닌 락서(樂暑)에 가까웠다. 지금에 비하면 피서법이 전무했던 그때에 무더위에 대한 고통이 적을 리 없는데도 선조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고통보다는 여유를 노래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름이면 문인들은 책을 통해 더위를 잊고 깊이 사색하면서 수많은 예술작품을 쏟아냈다. 숲속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선비의 모습을 많은 그림을 통해 볼 수 있고, 사소한 것까지 즐겁게 노래한 시들을 즐길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소개한 ‘여름을 보내는 여덟가지 방법’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데, 정약용은 63세이던 1824년에 시를 통해 여름을 나는 자신만의 방법, 즉 ‘소서팔사(消暑八事)’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나무 아래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대자리 위에서 바둑두기, 연못에 있는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오는 날 시 짓기, 강변에서 투호 놀이하기, 달밤에 발 씻기, 이것들이 어떻게 더위를 잊게 할 수 있을까. 이 8가지 중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는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수양버들 비 뒤의 바람이 푸른 못에 불어라
부용의 자태가 사람을 머뭇거리게 하는구나
묘고의 빙설에다 생각은 세속을 뛰어나고
월녀의 치마저고리에 자태도 얌전하구료
술 마시기에 알맞은 술잔도 겸하였다네
온갖 꽃이 어찌 미인을 시샘할 수 있으랴
하늘이 이 아름다운 물건을 머무르게 하여
더위로 고통받는 속인들을 조용히 기다렸다네

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더위나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다산의 시를 거듭 읽어보면 정서가 곧 몸의 고통을 치유하게 됨을 알게 된다. 물속에서 피어나는 꽃 하나를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 것, 그 이치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선조의 지혜인데, 다산이 말하는 방법 8가지는 모두 사소하고 여유롭다. 문득 우리의 소비적인 여름이 조금은 생산적으로 바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여름휴가 때마다 민족 대이동을 하는 우리가 일상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은 것은 몸의 더위가 아니라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더위를 노래하는 또 다른 시를 보자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

조선 중기 학자 윤증이 쓴 ‘더위’라는 작품인데, 관직의 부름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일절 사양하고 학문에 매진한 인물이 쓴 시답다. 윤증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소로 피력할 뿐 직접 뛰어들지 않았지만, 당시 정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높았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여름이란 책 속에 파묻혀 은거함이 제일인 때였으며, 반대로 숨어살지 않는 선비의 시에는 보다 밝은 감상이 실렸다. 
시간을 거슬러 고려 중기로 가면 당대 최고의 시인 이규보를 만난다. 그의 대표작 ‘하일즉사(夏日卽事)’에는 한결 여유롭게 그리고 긍정적인 초여름풍경이 담겨 있는데, ‘홑적삼에 삿자리 깔고 바람드는 마루에 누웠다가 꾀꼬리 울어대서 잠을 깨었네. 빽빽한 잎에 가려진 꽃 봄 뒤에도 남았고, 엷은 구름에 햇살이 새어나와 빗속에도 밝아라.’
비가 내리고 나면 더위가 한풀 꺾여 견딜만해졌다. 그래서 옛 문인이 쓴 시 중에는 유독 초여름 비온 뒤의 숲속 정취를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추사 김정희가 쓴 ‘취우(醉雨)’라는 시다. ‘나무마다 훈풍 불어 잎사귀들 하늘하늘, 먹장구름 봉우리 지나며 소나기 내리려하네, 조그만 청개구리 한 놈이 파랗게 질려 파초 가지에 뛰어올라 요란히 울어내네.’

「여름의 풍속과 선비의 사색이 담긴 그림들」

선비들은 정자에 올라 홀로 시를 읊기도 하지만 모임을 만들어 여럿이 모여 함께 짓기도 했다. 김홍도가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가 당시의 모습을 설명해주는데, 송석원이라는 집에서 한밤에 시 연회를 하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울창한 숲 너머로 고적한 달이 떠 있고, 초라한 집 뒤편에서 선비 예닐곱 명이 시를 짓고 작은 술상 하나 앞에 두고 있는데, 먹고 마시는 것보다 시 짓기에 더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밤이 깊도록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저 멀리 폭포수 소리를 배경 삼아 마음껏 시상을 펼쳤으리라. 무더위의 고통을 잠시 거두면 여름은 창작하기 좋은 계절임을 여러 시화가 말해준다. 
여름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 중에는 부채 위에 그린 그림도 빼놓을 수 없는데, 부채에 그린 그림은 그 자체가 미술의 한 양식을 이룰 정도로 형식이나 양식에서 풍성하다. 조선시대 이인문의 ‘송계한담도’ 같은 것은 부채 그림의 한 예가 되는데, 김홍도와 동갑내기 화원이었던 이인문은 소나무를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울창한 소나무로 송림의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키는 ‘송계한담도’에는 그의 특기가 잘 드러나 부채 위에 얹어놓으니 시원함이 배가되는 듯 하다. 
그 밖에 산수화로는 정선과 김두량이 각각 그린 동명의 작품 ‘하경산수도’가 알려져 있다. 당시 여름을 담은 산수화의 제목은 비슷한데, 산·구름·강이 주된 구도를 이루고 여기에 노승이나 행인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밖에 파초를 그려 여름을 시원하게 표현한 이수민의 ‘하일주연도’라든지 메뚜기나 베짱이 등의 곤충을 그림 이방운의 ‘하경산수도’도 여름철 생명이 뛰노는 풍경을 잘 담고 있다. 
한편 민화에는 여름을 상징하는 창포나 모란이 주로 등장하며 선명한 빛과 모양새를 뽐내고, 낚시하는 모습이나 농사일을 하는 광경을 그린 민화도 상당수에 이른다. 글 초입에 정조의 ‘일득록’을 소개했다. 선조들의 피서법을 짧게 정리하자면 다시 ‘일득록’으로 돌아가 정조가 쓴 한 문장으로 대신하고 싶다. 더위로 일상을 그르칠 때면 한번쯤 되새겨야 할 말이다. ‘내가 깊이 경계하는 것은 쾌(快) 한 글자에 있나니 매사에 만약 쾌락을 쫓으려 후회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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