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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오피니언특별기고
6.25전쟁과 한미동맹  
편집국 기자  |  t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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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3  11: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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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예비군태안읍대장 조병석

6.25전쟁과 한미동맹                                         

2차 세계대전의 종전 결과물로 한반도는 비극의 남북분단이 되어 현재도 대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선말 우리의 국력이 약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그 사슬을 조선의 백성이 끊으려 노력하였지만 결국 외세에 의해 광복이 된 후, 북에는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남에는 미 군정이 3년간 실시된 후 이승만이 대한민국 지도자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미국의 방해로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지 못한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은 무력점령에 의한 적화통일을 계획, 승인하고 지원하며, 6.25 남침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단 3개월 내에 부산까지 완전점령하여 소련과 국경선이 맞닿아 있는 나라를 공산화하고, 전세계를 공산화한다는 망상를 가지고 전쟁을 독려하지만, 전쟁발발 즉시 유엔에서 침략자를 북한으로 규정하고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철수하라”는 유엔의 결의를 채택하였으나 북한군은 이를 무시하고 파죽지세로 남으로 남으로 진군하여 승리를 눈앞에 둔 듯 행동합니다.
미국은 급히 일본에 있던 미 24사단의 선발대 스미스대대를 경기도 오산의 죽미령고개 파견했으나 1950년 7월 5일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며 인민군과의 불길한 전쟁을 개시하게 깨닫게 됩니다.
미 24사단의 본진이 부산을 거쳐 충남 지역에서 지연전을 펼치면서 유엔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사단장(딘 소장, 휴전 후 포로교환 복귀)이 포로가 될 정도로 고군분투하였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인민군의 전투력은 점점 한계점에 다다르고 포병대대장이 귀순(정봉욱중좌, 한군군에 편입되어 소장예편)하여 인민군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어 미군B-52폭격기 등에 의한 융단폭격으로 인민군의 기세는 꺾이고, 속속들이 한반도에 도착한 16개 나라의 유엔군은 제 역할을 다하며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마침내 서울을 동년 9월 28일 수복하고 북진을 거듭하여 한반도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 보였습니다. 
이 늦가을 압록강 너머에 중공군 100만 여명이 진을 치고 대기하다 압록강이 얼어붙자 일제히 도강을 실시하여 동년 11월 24일 청천강 상류일대에서 교전이 시작되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는 주저함 없이 “전투력이 약한 한국군 2군단지역을 측방으로 공격하고 미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라”는 공격을 지시합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2군단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미군마저 퇴각로가 차단될 처지에 터키군 여단이 중공군 38사단의 퇴로 차단에 맞서는 동안 미군은 평양으로 철수하여 재정비 동년 12월 23일 임진강, 한탄강 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전쟁 시 위와 같은 “청천강 대첩”을 이루어 100만의 중공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훌륭한 장수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필자는 중국군 국민당 군대에서 사단장까지 역임하며 국공내전에서 사단급 이상 작전경험이 있었던 “김홍일 장군이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김홍일 장군은 개전 초 패퇴한 한국군을 수습 재편성하여 한강선 방어로 지연전을 펼치며 작전을 성공시키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승만 정부에서 배척을 받고 1951년 중장으로 전역합니다. 무능하고 한국말도 못하는 친일파 군인 유재흥을 중용한 그 당시 통수권자가 미워집니다. 
유재흥은 “현리전투“인 이듬해 5월 16일 3군단장이 되어 강원도 인제 지역에서 중공군 춘계공세에 맞서 전투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리고 화가 난 미8군사령관 벤플리트 중장은 한국군은 작전지휘능력이 되지 않으니 국군 작전권을 유엔군에 넘기라고 요청해옵니다. 이 요청을 이승만이 승인하여 현재까지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유엔군사령관이 맡고 있으며, 노무현정부 시절 전시 작전권 환수 추진 시 가장 먼저 반대한 장본인이 국방장관까지 역임한 유재흥인 걸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중공군의 춘계공세 이후 피아 모두 승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유엔군과 중공군은 휴전협상을 시작합니다. 중공군은 본토에서 재래식 무기장비, 탄약, 식량 등 보급 받기가 쉽지 않아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유엔군은 침략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하여 전쟁 이전 상태로 회복된 것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중공군을 완전 물리치기에도 쉽지 않음을 깨닫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합니다.
이 시기에 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차지해 휴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치열한 고지전이 전개되어 휴전 시까지 처절한 전투가 전개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맥아더는 중공군에 원자탄 투하를 놓고 트루먼 대통령과 갈등 끝에 해임되고 미국의 군인출신 아이젠아워가 6.25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어 휴전협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었지만,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과 대다수의 국민은 휴전을 반대하며 반공포로 석방 등의 강공책을 펼쳤지만 약소국의 외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라는 물줄기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이승만은 철저한 실리외교로 미국과의 협상 끝에 1953년 10월1일 한국과 미국 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되고 이듬해 11월 18일에 발효 되었습니다.
6.25전쟁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휴전 후 북한의 재침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동맹을 요구하여 한미동맹의 결과로 관철시켰고, 이는 한국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때 미국은 원조한다는 것으로서, 한국의 북한공격을 용인하지 않으며 나아가 이를 감시 내지 견제하는 역할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휴전 후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굳건함 속에 주한미군이 주둔하여 재침을 막으며 경제건설에 매진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꽃 피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후 신생독립한 나라 중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무역 1조 달러 달성한 지구상에 일곱 번째 나라이고, 경제분야에서 10위권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며 한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자랑스럽지 않은 분야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군사동맹에 이어서 경제동맹으로 한국의 반도체기술을 인정하고 미국에 투자를 요청하는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외국군대가 들어와 있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동맹이 없는 현재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한미동맹의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잘사는 독일, 일본에도 미국의 동맹으로 미군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수가 주둔 합니다. 그들은 경제 2, 3위 강국이고 선진국입니다. 반면에 미국과 동맹을 깬 필리핀은 가난한 나라가 되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세계 각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중국과 동맹을 맺은 나라는 잘 사는 나라가 없이 저개발의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보는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부담이 너무 크기에 지구상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과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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