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석만
문필서예가 림석만

초아 선생님, 일상적인 바쁜 일은 어떻게 대처하셨는지요. 복잡한 삶 한가운데서 생활의 연속이면서 그냥 쓸쓸하고 지루해질 때 그것도 안온한 서쪽 바다로 떠나볼 일입니다. 그것은 바닷바람이 맥 빠진 얼굴을 냅다 후려갈겨 줄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한 뼘쯤은 더 쓸쓸하게 모래밭에 몸 비비던 파도가, 침묵하며 굳어져가던 갯벌이 햇볕에 반짝거리며 깨어나 철썩철썩 말을 걸어오기 시작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두리 모래언덕, 그곳엔 언제나 삶은 하잘 것 없는 작은 티끌이 됩니다. 중국에 갔을 때, ‘항주’가 기억 저편으로 떠올랐는데, 항주를 일컬어 ‘하늘엔 천당 땅엔 항주’라 했던가요. 천하의 풍광을 자랑하는 그곳은, 당(唐)시대 저 유명한 시인이었던 소동파가 건설했다는 서호(西湖) 옆에 고풍스런 ‘샹그리라’ 호텔이 있어 며칠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 몇 아름 되는 나무와 호수가 어우러져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마음을 무척이나 설레이게 했던 곳입니다.

‘샹그리라’ 직역해보면 ‘언덕 저쪽’이라는 말인데 오늘 아직도 불편한 다리지만 신두리 모래언덕을 다시 보면서 여기가 바로 ‘샹그리라’가 아닌가 생각해보는데, 지금 신두리 해변엔 가녀린 햇살이 마지막 줄기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흐린 적 한 번 없이 맑기만 하며, 이 봄 햇살은 조용하고 성실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부 열심히 하는 가난한 학생과도 비견되는데, 학인(學人)처럼 그런 자세로 살려고 노력합니다만 가끔 제가 하는 일에 ‘나는 이 일을 왜 하려 하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는가“ 혹시 목표를 상실한 채 너무 지친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초아 선생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내몰린 채 많은 설움을 겪으면서, 참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초아 선생님을 기억했고, 신두리 바닷가에서 ‘훗날을 기약하는 인생 설계에 따라 살다보면 욕심과 방황과 허기가 끊이지 않는다.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에서 마음 속으로 굵게 밑줄을 긋고 자꾸만 반복해서 되뇌였습니다.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기쁨을 희생하지 말라고 스스로 말했고, 드디어 설득 당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끈질긴 집착이 괴롭히고 있지만 조금은 순화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의 모난(?) 성격은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감옥 독방살이 때보다 현실적으로 대중살이 때인 지금이 더 확연하게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보일 것도 더 드러날 것도 없는, 갈수록 마음은 어린 아이를 스승으로 삼게 되지만 용과 뱀이 혼거하기에는 선방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기에 하는 말인데, 잠자는 듯 고요한 자연의 모습은 안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토굴 속의 수도승과 같습니다. 자연이 주는 ‘겸허와 ’인내‘라는 화두를 안고 바다를 들러보면 다른 계절의 화려함이 주지 못하는 마음의 양식을 저는 그나마 이 바다에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초아 선생님, 이곳은 거짓말처럼 환한 햇살입니다. 자연의 오묘함에 저는 또 한 번 놀라고 있는 중인데, 아무도 가지 않은 순백의 이곳에 발자국을 내며 걷다보면 육신을 드러낸 자연 속에서 저를 되돌려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아름다움과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적 도리를 생각해봅니다.

바다 옆 들길은 서정이 남아 있고, 자연이 움트려는 기색이 살아있으며, 길손을 맞아주는 갯마을의 따뜻함과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인정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는 신두리 마을은 그런 곳입니다. 이 바다는 결코 격정적이지 않습니다. 멀리 나갔던 바닷물이 돌아오는 해거름, 사나운 기세로 쳐들어오는 동해의 성난 파도와 달리 이 바다는 가만히 밀물을 데리고 올 뿐입니다. 갈매기도 이 조용한 풍경을 깨지 않으려는 듯 낮게 날며 하나의 정물이 되는데, 이 풍광을 잊지 않으려고 저는 지금 빼곡이 노트에 적어가고 있습니다. 산머리에 걸려 있던 해가 어느덧 수면 바로 위까지 내려앉아 점점 붉은색으로 선명해지는데, 하지만 그 색은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처럼 투명한 단색이 아닙니다.

초아 선생님, 기억해보니 긴 뒤안길을 걸어온 인생처럼 신산(辛酸)의 흔적이 묻어있으며, 해금 선율의 중모리처럼 휘감고 있습니다. 해가 저무는 신두리의 바다, 낮은 산과 들에 에워싸인 해변의 모습은 노년(?)의 제 모습과 흡사한데, 이 봄날에 이제 막 어려운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이곳 신두리 바닷가에서 그나마 안온함을 느끼는 건 그런 풍경과의 일체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살아간다는 건 곧 나이가 든다는 것인데, 그러나 늘 달리기만 할 수는 없기에 지금 신두리 모래 언덕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마음보다 몸으로 먼저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년식이 아닌 ‘노년식’을 치르는 저로서는 아직도 철이 없는지 익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문자 노동자인 제게 나이는 죄없이 받아야 하는 벌처럼 억울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소한 나이인데, 세월은 화살처럼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바뀌는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 방법도 그렇고 과연 지금처럼 사는 것이 확정된 삶의 방식인지 이렇게 삶을 계속 영위해야 옳은 것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초아 선생님, 바람은 때론 무서운 폭풍우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사람의 앞일을 예견하기 어려운데, 예견하기 어려운 시대를 공유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이 험난한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사람인거죠.

지표면이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의 해안 모래 언덕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대단위 해안 모래언덕은 극히 드물다고 봐야 합니다. 그 모래 언덕이 이 땅 태안 원북면 신두리에 있다는 자부심에 경탄해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누차 말하는 것 중에 자손만대를 부르짖는 것도 다 혼자 욕심이 아니란 걸 아실 겁니다.

아침 이슬과 눈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영롱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눈물이 더 영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맑은 결정체, 그건 함부로 내놓을 수 없는 신성함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다시 신두리 모래 언덕에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초아 선생님, 지난 해 10월 23일 저와 함께 신두리 모래언덕 길을 함께 걷던 일이 기억납니다. 언제 신두리 모래 언덕에 다시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생명의 불꽃처럼 일어나는 그곳을, 그곳엔 때 묻지 않은 바람이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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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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