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저쪽 산등성이에서 도시로 흐르는 시간은 조용하다. 한정된 공간에 물리량이 유한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어떤 총량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간 사회에서 토지, 노동, 지식, 부(富), 계급 등과 같은 것이 삶의 여러 측면을 조직하듯, 슬픔이나 애증, 연민이나 분노와 같은 것 역시 삶의 어느 부분에 달라붙어 세상에서의 삶을 조성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총량과 함께 달라붙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것들이 모여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의식이 피부 염증처럼 진득하다. 내면이 서늘해지는 감정으로 바라본다.

젊은 시절에는 부당한 것, 부조리한 것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러더니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또 할 말도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손에 쥐고 있고자 했던 아름다움이나 올바름, 또는 순수, 진실 따위는 청춘 노트에 그려진 크로키만큼 불성실한 것이 되었다.

어느 시대나 젊음은 고뇌하고 방황했다. 젊음이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다 지나고 난 다음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니고 있는 비가역의 힘은 그렇게 작동한다.

아름다움이나 행복은 지상에서 불공정하게 거래되고 불공정하게 소비된다. 그런 불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고난을 감수한 수많은 노력들은 시간의 좌표 위에 희미한 별빛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은 창공의 별빛이었고 질서는 지평 아래 변함없는 계절처럼 순환할 뿐이다.

본질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뀌지 않는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이름과 양상만이 달라질 뿐 어떠한 경우에도 도식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다. 본래 선악이나 진위는 인간적 기준이 제거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쥴리앙 프룅(J. Freund)은 인간은 강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논제를 제기한 것은 좌파적 지식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와 다른 측면에서 그 논제에 동의한다.

인간은 사회라는 시스템의 강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천형과 같은 이 사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이 강제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없다.

노력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논제를 이해하고 수긍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인간이 내놓는 노력은 이 땅의 모든 지평과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원리이다. 세상과 삶은 그렇게 작동한다.

진리는 선악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신념을 지녀야 한다. 세상과 삶은 좋든 싫든 우리에게 주어졌고, 좋든 싫든 살아야 하고, 좋든 싫든 노력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은 돌아가고 신문은 배달되고 바람은 불고 계절은 바뀐다.

/칼럼니스트 방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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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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