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석만
문필서예가 림석만

<영혼의 밥>- 어떤 일을 감행하거나 중단할 때마다 내 이유는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였다. 생활을 지킨다는 건 생명과 활동을 돌보는 일, 그것이 결국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선한 욕망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우리가 지속 가능한 어떤 성취에서 실패하더라도, 그래서 중간에 선로를 바꾸어 알 수 없는 경유지에 도착하더라도, 그 어느 때라도 우리는 각자 생활이라는 그릇에 영혼의 밥을 담는다.

<호숫가에 서서>- 때로 아무 생각 없이 호숫가에 서서 물결이 만드는 푸른 무늬를 바라본다. 잠시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면 햇빛을 받은 아름다운 황금빛 기둥이 갑자기 물결 위를 수놓고 온통 푸른색의 생각에서 또 다른 무엇을 얻게 되는 기쁨이 생긴다. 행운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구름이란 언젠가 걷히게 마련이고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을 테니까.

<사랑꽃>- 삼천 년 만에 핀다는 우담바라(花)를 기다리면 내게도 사랑꽃 피려는지. 물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전제하에 그것도 긍정적으로... 언젠가는 가슴 시린 사랑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꿈을 꾸지만, 어쩌면 그게 두렵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나간 일이지만 내게도 사랑이 있었을까?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지금 알고 있는 사람과 가끔 차와 술 한 잔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그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냉정한 겨울>- 나보다는 아랫사람이지만, 무척이나 커 보이는 건 왜일까. 항상 자신을 낮추고 살아가는 모습은 가히 배울 점이다. 가끔 전화 통화에서 짐작컨대, 아련하게 기억되지만 아무 때나 전화도 할 수 없는, 그럼에도 말수는 별로 없지만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배려해주는 건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그 사람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지만, 현실은 냉정한 겨울인데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시간이지만, 나로 인해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신비함과 고요>- 철없는 이야기지만 아직 그 사람을 자세히 모른다. 오히려 자세히 모르기에 더욱 신비한 건데, 그렇게 계속 신비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재치, 유머 그런 것 아직까지 그 사람에게서 못 봤기에 그저 편하다는(?) 것, 그 외 다른 것은 정말 모르는 상태다. 그럼에도 내가 소중하게 기억하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인데, 또한 전혀 다른 모습은 말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모습을 지녔기에 하는 말이다.

<찰나의 겨울>- 눈 내린 들판을 걷다가 내 몸이 얼어 집에 들어왔을 때 따뜻하게 대해줄 그런 느낌을 아시는지.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자존이 강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곱게 만나고 싶은 건 본능인데, 나 혼자서 소중하게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인데, 그것이 과분한 욕심일까. 운명은 순간 아니, 찰나에서 나온다. 어느 경우든 내게 마음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아직까지 조금은 마음 한켠 젊음으로 남았으면 한다.

<성당의 종소리>- 홀로 다니는 여행, 혼자 웃을 수 없는 현실, 거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까지,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이 기억되면 내겐 소중한 일이다. 하나하나 가슴에 꼭 챙기면서,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기에 그래서 내 삶이 가끔은 무섭기도 한 걸 어쩌나. 새벽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오면 어느 땐 맑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느 땐 가슴 아리게 들려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그 사람이 멀리서나마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광화문 연가>- 십 년쯤 뒷면 나에 대해서 이해할거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그 사람도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하는데 이게 웬걸 내가 벌써 병치레를 하고 있으니. 어쨌거나 이번 병치레를 거치면서 새삼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프지 않아야 흰 머릿결 신경 안 쓰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주말에 서울에서 합동 전시 관계로 광화문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기억해보니 꿈 많던 이십대 푸르던 시절 근처 종로구청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기에 생각해보면 가슴이 짠한 곳이다. 그래도 지금은 지나간 기억의 장소이면서 가까운 인사동은 내가 가끔 찾는 예술의 모토가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천릿길 먼 곳>- 지인들과 오랜만에 사랑과 예술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 한편은 왜 이리 허전한 건지.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환한 모습의 사진을 보고 있지만, 혹여 마음속으로 불편하지 않았음 하는데, 이해하면서 웃을 거라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정갈한 사랑빛도 인정해주면 어떨지. 머플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만 천릿길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아쉬움이다.

<인생의 한 땀>- 남이 보기에는 예쁜 조각이 많지 않아도, 지금은 슬픔의 조각을 꿰매는 순간일지라도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기쁘고, 슬프고, 예쁘고 못난 조각들이 모여서 채워지고 있다. 가끔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조각을 꿰매면서 왜 이렇게 삶이 불공평하냐며 우울해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이 가진 예쁜 조각을 시기하며 내가 가진 조각을 몰래 내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조각보가 완성되어갈 때쯤이면 그 사람도 알게 되겠지. 한 땀 한 땀 조각 꿰매던 모든 순간이 진정 소중하다는 것을...

<겨울이 숨을 곳은>- 나무는 보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다. 하얀 눈송이가 나무 등 뒤에 숨어있는 것을 나무는 모른 채 바라보고 큰 나무를 등지고 봄바람을 피한 겨울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겨우내 내린 눈도 나무도 서로 의지한 채 계절이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것처럼 인간도 자연에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머리 숙일 줄 알아야 하는데, 수백 수천 년을 살아온 신화적 존재인 나무도 흙냄새, 들풀 향기 타고 날아온 봄바람을 막아줄 순 없듯이, 겨울은 물이 흘러가듯 봄바람에 밀려난다. 이젠 큰 나무 뒤까지 봄이 바짝 다가오고, 겨울이 숨을 곳은 없다. 벌써 나무 뒤쪽엔 작은 꽃들이 돋아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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