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따라 피어낸
장미가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습니다
장미에게선
새빨간 사과향이 나오는데
그대는 지금
그 향기를 음미할 것인지

꽃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왜 꽃을 예쁘다고 해야 하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현실에서 생각의 차이겠지만 저는 꽃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름다운 사람은 너무 많지만 솔직하지 못한, 칭찬이 부족한 거죠.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칭찬할 것은 해야겠지요.
한때는 이 세상에 꽃은 장미밖에 없고, 유월에만 피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가을에도 피어난다는 것을 알고서는 모든 것은 지레 짐작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 살아 보니 이 세상에서 제일 촌스러운 꽃이 장미 같았습니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흘러서, 세상살이도 알고 사람도 알게 될 즈음이 되니,,, 장미는 그저, 한때의 인생 같았습니다.
찬란한 시절, 장미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누군들 없었겠습니까만은 담장마다 장미가 고운 이 즈음에는 내 인생도 한번쯤 돌아봐야 하는 그런 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긴 내게도 한때는 프랑스의 전설적 가수 <에디뜨삐아프>가 불렀던 ‘장밋빛 인생’ 노래처럼 그런 인생이 있었다는 것. 그 작은 깨달음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 말입니다.
밤 알맹이처럼 촘촘하게, 담벼락을 부비면서 작은 초가들이 줄지어 있던 향교 아랫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살구꽃이 피고, 라일락 향기가 동네 어귀에서부터 손사래를 치던 봄. 가난하게 살아도 한 집 건너 한 집씩은 담장 밖으로 비죽, 장미꽃 송이가 고개를 내밀었지요. 생각해보면 그 때가 그립지만, 그러나 그 아련한 시절은 이제 없습니다. 아니,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실적으로 팍팍하게 살다 보니 꽃은 그저, 그림의  떡 보듯 그렇게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살기도 어려운데 꽃이 웬말인가, 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겨우 몇 날 피다갈 꽃이지만 또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 송이 꽃이 주는 이상한 위안이 있으니까요. 시월의 이른 햇빛 아래 심장처럼 붉은 장미꽃이 담장 따라 가지런히 피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쁜 건 사실이지만 왜 계절마다 꽃들은 생명의 리듬을 타고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하지만 나뭇가지에 가시를 품은 채 충동적으로 살아나 붉은 꽃을 피워 올렸다가 얼마 후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이것은 분명히 운명적인 꽃의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꽃이 진자리를 오랫동안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조금은 허망하더군요. 누군가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듯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을 꽃잎을 생각해 보지만, 아름다운 꽃이어도 점점 시들고 소멸하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영원한 현재성을 부여받지 못하는데, 내 몸속 기관들과 뼈의 쉼 없는 움직임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살아가며 억압된 것들이 차츰 축적된 몸의 상황은 끝내 질병의 형상으로 솟아납니다.
길게 자욱으로 남겨진 내 흉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몸에 새겨진 고통의 시간을 만지는 일입니다. 책을 읽다가 종이에 손을 베었을 때, 길을 걷다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순간의 고통은 짙은 무늬로 남는 거지요. 몸으로 체험된 고통을 내부로 가두었다 꺼낸 무늬는 커다란 상처로 그 수술로 남성성이 약화된 이미지에 새빨간 사과향이 흐르던 시절이 지금 장미꽃에 투영 됩니다.
아-이제 인간의 육체에서 나와 자연의 합치된 몸이 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그 상처가 아픈 건 깊은 속내의 상처 때문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하면 억압된 것들에서 떨어져 무극과 무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건데, 그것조차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나름 공평하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름답게 핀 꽃이 스러져 소멸될 때 까지 견뎌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장미향을 음미할 것인가 아니면 외면할 것인가 그것에서 갈등한다면 그대는 이해하실런지, 아마 조금은 혼돈이 앞서리라고 생각됩니다. 왜나면, 그건 쉽지 않은 숙제이기 때문인데 치명적 향기를 내뿜고 있는 장미꽃. 거기에 우린 울고 웃는 겁니다. 그거 아시지요. 다시 말해 ‘아름다운 꽃이어도 소멸한다’는 단어가 깊게 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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