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빈곤하다는 것은 내게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0.3%의 염분이 있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기에...

 

나의 대외 직명은 십수 년 전 까지 ‘동포 서예학원장’이었고 현재는 ‘동포 문화연구실장’인데, 다만 경제적인 것과 또 다른 이유로 간판을 밖에 걸어놓지 못한 연구실은 연구원이나 보조없이 오롯이 나 홀로 실장일 뿐이다. 따라서 월급 줄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최근 나름대로 준비한 원고를 5년 만에 탈고하고 우여곡절 끝에 출판사에 넘겼는데 이로써 나의 17번째 책이 지금 한참 교정중인데 가을에 나올 예정이다.

변변한 직업이랄 수 없는 이 생활(시간강사)을 한지 벌써 15년, 몽유병 환자처럼 새벽 5시 반에 깨어나 조간신문을 꼼꼼하게 다 읽고서 다시 잠들어 8시쯤 깨어나는데, 오전에는 미친 듯이 공부하는 습성이 있지만, 강의가 있는 날이면 9시에 집을 나선다. 그런 뒤 저녁 8시까지 또 문헌을 참고하고 읽은 책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원고를 쓰는데, 옷을 제대로 안 갖춰 입을 뿐이지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일상이다. 다만 더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나에 대해 “반(反) 문명적이고 멋있는 사람”으로 소개한 지면도 있었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 흔한 자동차도 없다면 여러 가지 불편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문명적 혜택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옛것에만 몰두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조금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다 싶어 그런 건데, 정보가 넘치는 세상, 그 정보를 다 어떻게 소화하는지 그것도 궁금한데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기 보다는 뇌를 굴려 사유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가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긍정의 에너지가 생긴다면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정말 무한하다. 기계의 힘만 믿고 살아간다면 생각은 무엇에 쓰려는가. ‘골똘’이란 단어를 음미해보면 대단한 가치가 살아 숨쉬는데, 우린 그것을 잊은 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기억해 볼 일이다. 나는 약속을 정하면 20분쯤 꼭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편인데, 혹시 늦어져서 상대방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그런 거다. 다만 약속 시간이 지나 15분정도까지 상대가 안 나타나면 나는 그냥 나와버린다. 그것은 신의가 앞서지 못하고 배려가 없는 신뢰의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래전엔 2백자 원고지를 사용했으나 요즘엔 4백자와 6백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다. 종이에 펜이 접촉하는 사각사각 소리가 좋아서인데, 원고를 다 써놓으면 예전엔 아들놈이 컴퓨터에 입력해 주었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다. 아직도 하던 습관을 어찌 탓하랴. 내 서재에는 오래된 나무 책상이 있는데, 할아버지의 손때를 거쳐 아버지까지 족히 100년은 넘었을 이 책상 앞에 정중하게 앉으면 경건하기까지 하며 묘한 애착이 간다. 3년 전 동생이 큰맘 먹고 목공 명인이 만든 멋진 책상을 하나 구입해 선물 해줬는데, 아직도 몸이 다가가지 못하고 거실 중앙에 놓여 있지만 몸이 건강해지면 다가갈 참이다.

내게 연간 수입은 인세·원고료·강연료가 있지만, 책상 앞에 앉아 글 쓰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그 댓가인 수입(?)은 정말 보잘 것 없다. 내 밥벌이가 무엇인지 보여지는 대목인데, 가끔 예외로 서예작품이나 그림, 현판글씨를 부탁해와 얼마의 돈을 받게 되지만, 그게 가뭄에 콩 나듯이 있으니 수입으로 잡을 수는 없는 사정이다.

가까스로 근사한 스마트폰을 구하고, 사용하는데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도 없다보니 어떤 이는 진부한, 뒤쳐진 사람쯤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어쩌다 면허증을 취득할 시기를 놓쳐 여기까지 왔고, 신용카드는 수입이 부정확해 만들지 못한 것이다. 내 몸은 ‘기계치(癡)’이나 정신적인 역마살이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나마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여자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체크카드를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익숙하지 못한 채 지갑에 현금이 없으면 불안한건 왜일까.

내겐 박사 학위도 없고, 그러기에 교수 출신도 아니다. 박사 학위도 없이 역사에 근거한 글을 써서 책을 여러 권 펴냈을 때, 여러 교수들이 ‘이걸 어디서 베꼈지’하면서 샅샅이 내 뒷조사를 했다고 들었지만 지금도 내겐 ‘안티 세력’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나는 교수도 아니니 학회에 가입도 안 된다. 그런 내가 기성 교수들보다 먼저 이론을 앞세우거나 역사의 뒷장에 있지 않고 먼저 새로운 문화 흐름에 대해 쓰고 잘난(?) 척한다는 거다. 또한 그들과 비타협적으로 살았으니까 골방에 있을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이제 역사에 대한 초청강의가 들어오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문화계 내부 문제나 정치적인 문화 교수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이랄까? 학문적 연구에 정진하기도 벅찬데, 교수 이름을 내걸고 정치적 평론에 치우치는 것에 아쉬움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였으면 지금껏 이렇게 살아갈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다 해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친구 중에는 대기업에서 연봉 수억을 받는 경우도 있고, 잘나가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도, 대학총장을 지낸 친구도 있다. 노래가 좋아 가수로 활동하는 친구도, 묵묵히 땅을 일구는 농사가 천직인 친구도 있다. 그에 비해 내 수입은 1년에 수백만 원 정도다. 그래도 부끄러울 것도 없으며, 그들과 결코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수백만 원’이라 부르고 공부하면서 느리지만 여유(?)롭게 아니 빈곤하게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 아니던가.

평소 인간관계로는 “사람을 잘 알아두면 일이 오고 일이 오면 돈이 따라온다”는 말을 한 여자 친구가 생각나는데, 혼자서 이렇게 살아가는 노하우는 사람관계 라고 말하면서 사람에 대해 정성을 들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좋은 짓을 해도 싫어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데, 이들은 아예 나를 피하기도 하지만,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그런 시간 낭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거 아시는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추면 쓰러지는 것을.

이제 어쩔 수 없이 싫으나 좋으나 이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주어진 일이고, 때론 나를 ‘괴짜’로 보는 시선도 있으나 거짓없이 문자예술로 노동하고 작은 댓가를 받으니 정상적 아니던가. 그것을 이해하신다면 내 삶에 너무 딴지를 걸지 말고 그냥 놔두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살아가는데, 빈곤하다는 것은 내게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그만 흔들어도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공감하시는지.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0.3%의 염분이 있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기에...

유년시절 공부할 때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하다 죽어라. 그런 각오 아니면 공부 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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