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청 문화예술과장 장경희
태안군청 문화예술과장 장경희

이 땅에 사람이 살면서부터 사람에게는 이름이 지어지고, 땅에도 그에 맞는 지명이 생겼다. 사람의 이름은 사람과 사람을, 땅의 지명은 지역과 지역을 식별하고, 그 이름과 지명을 통하여 각각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지명은 그 땅을 터전으로 살아 온 사람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어 지역의 역사, 풍속, 종교 등의 사회적 소산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일제는 1914년도 식민 통치와 수탈 목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지명을 강제로 바꿔 우리의 정체성과 혼을 빼앗아 버렸다.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성과 이름도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다. 소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다.

사람의 이름은 광복과 함께 되찾았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지명은 지금까지 100년 넘게 무심코 사용하고 있다.

태안군의 경우 8개 읍·면 중 안면읍과 남면을 제외한 6개 읍·면 지명이 1914년 변경되었다. 태안읍은 군내면(郡內面),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東二面), 근서면(近西面) 등의 일부를 병합하고 군(郡)의 이름을 따서 태안면(泰安面)이 되었다. 근흥면은 근서면(近西面)과 안흥면(安興面)을 병합하고, 소원면은 소근면(所斤面)과 원일면(遠一面)을, 원북면은 원이면(遠二面)과 북이면(北二面)이 합치고 각각 한 글자씩 조합하여 명명했다.

이원면은 북이면(北二面)과 원이면(遠二面)을 합하여 이북면(梨北面)으로 개명하였고, 그 이후 다시 이원면(梨園面)으로 개칭되었는데, 지명 변경과정에서 북이면의 이(二)가 이(梨)로 바뀌고, 원(遠)이 원(園)으로 바뀌는 바람에 ‘배나무 동산’이라는 엉뚱한 지명이 생겼다.

또한, 고남면과 남면은 단순히 방위개념의 지명에 불과하다. 특히 고남(古南)은 삼한시대의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여 연유되었다. 하지만 고랍국은 전라북도 남원 일원에 위치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고, 고남지역이 고랍국이라는 근거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남(南)면도 태안읍성의 남쪽에 위치하는 데서 지명이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가 만든 무의미한 지명은 하루라도 빨리 바르게 되돌려야 마땅하고, 단순히 방향을 의미하는 지명도 현대적 감각에 어울리게 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경제적 효과를 도모하는 이유라면 행정구역의 명칭 개정 명분은 충분하다고 본다.

태안군의 경우 아름다운 경치만큼 예쁜 지명이 많다. 바람아래, 샛별, 꽃지, 해낮이, 두에기 등 어감이 시처럼 고운 지명이나 만리포, 연포, 학암포 등 이미 널리 알려진 해수욕장 지명을 행정지명으로 개정하여 차별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역사의 고장인 근흥면은 ‘안흥(安興)’이라는 옛 지명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태안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관광지명은 알지만 어떤 면에 위치하는지는 모른다. 손님이 음식을 먹고 어느 식당에서 먹었는지 상호를 모른다는 것은 음식 업체의 마케팅 전략의 실패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일제가 왜곡한 지명을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역의 역사적 전통성이나 향토성을 살려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과감히 개명하면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원도 영월군의 개명 사례가 눈에 띈다. 영월군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거주지와 묘, 문학관 등이 있는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꾸고, 평창강이 곡류하면서 만들어진 한반도를 닮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면을 아예 ‘한반도면’으로 개명했다.

또한, 영월군 수주면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정체성을 살린다는 취지로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명칭을 따와 ‘무릉도원면’으로 바꾸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송현(松峴)이라 불린 중동면은 ‘산솔면’으로 개명하였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은 대관령이 위치한다는 지리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대관령면’으로 개명하고, 경북 경주시 양북면은 문무대왕릉이 위치한다는 점을 착안하여 ‘문무대왕면’으로 바꾸고, 청송군 부동면은 ‘주왕산면’으로, 금강송 군락지로 소문난 울진군 서면은 ‘금강송면’으로 변경했다.

포항시는 일제가 왜곡한 ‘장기갑’을 ‘호미곶’으로 바꾸고, 호미곶이 위치한 대보면은 ‘호미곶면’으로 개명했다. 군위군 고로면은 우리나라 설화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고대사의 중요한 사료인 삼국유사가 이 지역에 위치한 인각사에서 집필됐기 때문에 ‘삼국유사면’으로, 인천시 남구는 백제 때 이름인 ‘미추홀구’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과 충주시 가금면은 남한산성과 국토중앙탑이 위치한 특징을 살려 각각 ‘남한산성면’과 ‘중앙탑면’으로 변경하고, 전남 담양군 남면은 18편의 가사 문학 작품이 전해지는 곳임을 기리기 위하여 ‘가사문학면’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세종대왕릉의 서쪽에 위치했다고 명명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은 최근 ‘세종대왕면’으로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이 지역 특색을 살린 개명으로 관광지나 특산품, 역사적 자랑거리를 내세우며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관광 자원을 알리는 등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 읍면들은 개명에 만족하며, 개명 이후에 지역의 지명도가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 효과로 관광객이 전보다 증가하는 등 개명으로 인해 적잖은 경제 효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창지개명을 바꾸는 작업은 명분도 있다. 특히 독특하고 돋보이는 지명의 발굴은 도시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지명은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를 상징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고 경제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라 하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지명은 호적, 주민등록, 등기부 등 모든 공부에 등재되어 있고, 이미 백 년 넘게 사용하면서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고착되어 지명개정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또한 지명을 개정하게 되면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다소 주민들의 불편이나 혼란도 예상된다. 그렇지만 행정구역의 읍면 지명개정은 역사성과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그 지명에 대한 근원, 정체성 등 논리를 찾아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지자체와 해당 읍면의 자율적인 개명추진위원회 등과 함께 선무활동을 벌이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왕이면 창지개명 110년이 되는 2024년 이내에 실시하여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홍보 효과를 누리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지방자치 바탕은 자치 곧 독자성이다. 그리고 이 독자성은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역사성 강화에서 나온다. 성숙한 지방자치에 맞춰 그동안 함몰되었던 행정구역의 지명개정 노력이 절실하다.

정명순행(正名順行), 즉 이름이 바르면 만사가 순조롭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과거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아 지역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고 고유 브랜드 개발을 통해 주민소득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더 자세한 내용은 태안문화 제33호(향토문화연구소. 2021.)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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