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보수의 토양에서 피어난 진보의 꽃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진보의 토양에서 피어난 보수의 꽃은 불가능한 걸까.

 

요즘 세대는, 386세대가 온갖 진보적인 말을 하면서도 강남에 거주하고 자녀를 외고에 진학시키거나 미국에 유학 보내는 걸 보면서 치를 떤다. 그렇다면 그 적개심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예전엔 서울대 법대만 나오면 학점이 엉망이어도 취직이 잘됐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386이 뒤 세대를 위한 사다리를 걷어찬 측면이 있었으며, 그때는 경제가 팽창하던 시기라 대학만 졸업하면 어디든 취직할 수 있었다.

 

내 주위를 보면 386은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도 대부분 취직 잘하고 결혼해서 집 사고 애 낳았다. 386세대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 했다는 피해 의식과, 결국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승리자 의식 두 가지에 빠져 후배 세대를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적개심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면 끝낼 문제도 아니며, 답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지금 386은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중진이다. 회사에서는 이사급 임원이고 학계에서도 중견 교수다. 법원·검찰에선 최소한 부장급 이상인데, 요즘 세대와 대화하며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 화두는 저성장·불경기·고령화에 저출산까지 겹쳐 ‘국운이 기울었다’는 말까지 서슴없다. 과연 누구 책임인가. 물론 나를 포함한 386, 386을 포함한 모든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한다. 혼자 아무리 잘 살아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와해될 상황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2017년에 정권이 보수에서 진보진영으로 교체됐는데, 진보가 집권하면 국운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물론 진보가 집권했지만 ‘천국’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 정권이 경제와 안보에서 잘 한 것이 있는가? 10년 전을 기억해보자.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보수는 밑천이 다 드러났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진보적인 세상은 돈과 힘이 지배하는 사회, 1%만을 위한 사회가 아닌, 차별이 없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를 바라는 거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1469만표, 48%를 얻었다. 역대 대선 득표 2위다. 그런데도 졌다. 왜 그랬을까. 경제 민주화 깃발은 민주당이 세웠지만 내부 동력을 소모할 때 박근혜 후보가 경제 민주화 이슈를 가져간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 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으로 문재인이 아닌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 후보의 카리스마가 약해서였을까. 단언하면 아니다. 박 후보가 가진 이미지 자본, 상징 자본의 힘이 더 컸다. 정치적으로도 문 후보보다 더 능수능란해 보였으며, 문 후보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는 보여도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정치적으로 박 후보가 더 안정돼 보였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

 

펴내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진보는 왜 그걸 못했을까? 정치는 오로지 능력이다. 학문이나 종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데,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능력과 결과로만 치열한 승부가 나는 영역이 정치인데, ‘저는 이만큼 착한 사람입니다’ 이런 도덕과 윤리가 작용하는 곳이 아니다. 지금 사면 복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으면서도 지지율이 여전한 이슈는 수권(受權)능력,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는 공보다 과가 있었음을 기억하지만, 능수능란이란 결국 기술이다. 갈등의 이면에선 타협도 하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눙치기도 하고, 세(勢)를 형성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가 미국의 링컨이라고 하면 성스러운 대통령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도 대의를 위해 반대파에게 각종 자리를 제의하면서까지 설득하고 협상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정치 지형이 다르다해도, 독일을 16년 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야당과 여러 번 연합해 나라를 이끌었으며, 지난해 12월 9일 박수를 받으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왜 우린 그렇게 못하는가. 진보에는 이런 능수능란이 부족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하고 에고이스트적으로만 나가는 것은 나로서는 불편한 심기다. 그렇다면 지리멸렬의 대명사가 된 야당이 집권할 수 있을까. 현재 야당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민생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실천, 합리적인 공천 시스템, 결과에 대한 냉정한 승복, 목표를 향한 단결이 없으며,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다해도 야당의 성공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꿔서 말해보자. 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중 동원 능력이 아주 강한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촛불 혁명으로 집권했는데, 선거에서 어떻게 발언하고 행동해야 표가 나오는지 잘 아는 유능한 인물이다. 게다가 가족비리가 없는 커다란 자본도 있다. 이런 문 대통령이 ‘내가 해보겠다’며 김정은 만나 정상회담도 했고, 노동 문제도 혁신하면 대체 누가 반대하겠는가. 보수보다 훨씬 강력한 개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5년이 다되어가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무엇을 이뤘는지 모호하다.

 

‘경제 살리기’도 불투명하며, 부동산 폭등의 문제도 그렇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합리적이라 말하는 진보 정권에서 모두 떠나 보수로 옷을 갈아입는 현실은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이 둘은 모두 대선주자급이다. 그뿐인가. 청와대 비서실은 돌려막기 비서로 운영 중이고, 장관은 여력이 부족해도 내편이면 임명을 강행하니 하는 말이다.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면서도 우리나라 정치는 후진적이다. 왜 그럴까. 정책으로 대결하지 않고 상대 당에 대한 가짜뉴스로 대응하다보니 전혀 발전이 없는 거다. 이건 여·야 모두 똑같다. 페어플레이 정신은 아예 없고 그냥 물어뜯기다. 이럴 때 우리 국민은 눈 부릅뜨고 단죄해야 한다.

 

흰 눈이 무지막지할 정도로 내리지 않아도 겨울이다. 이제 3월 9일이면 대통령 선거일이지만 음지에 내렸던 눈도 녹지 않는데, 요즘 복잡한 정치, 진보와 보수의 지긋지긋한 싸움은 그만 흰 눈에 덮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 글 마무리 하련다. 합리적 진보, 수구 꼴통 보수, 다 접어두고 상생하기 바란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걸까.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말하면, 어울림으로 상대방 정책이라도 좋은 것이라면 칭찬과 격려해 주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건지 그것이 못내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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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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