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지난 여름의 불덩이는 정말 가버린 것일까. 제법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가뭄과의 싸움이었을까 꽃들은 아직 화려함을 비춰주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예술가로서 글을 쓰지 않고, 그저 한 인간으로 씁니다. 외로울지언정 허무를 선동하지 않고 그냥 죽자고 쉽게 말하지 않으렵니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가 아니던가요.

사람들은 삶을 이어가면서 언제나 한 번쯤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를 꿈꾸지만, 그러나 특별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해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인데, 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혹여 특별한 순간이 찾아와도 모른 채 지나가기 십상인거죠. 누구나 원하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든 혹시 못 만나든 모든 결과에는 그에 따른 과정이 있습니다. 다만 우린 그것을 망각할 뿐이지요.

5년 전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앞으로의 여섯 번째 개인전시를 위한 작품 준비로 허덕이면서 부채 100점과 서예와 그림으로 100점을 준비하느라 입술이 부르트도록, 이제 펼쳐질 날이 그려져 옵니다. 모든 전등을 끄고 책상 위에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을 켜보는데, 창밖엔 열여드레 살짝 이그러진 보름달. 비단처럼 부드러운 여운이 제 작업실을 감싸고돌아 정말 아름답기만 합니다. 예술의 이 풍요로움.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기다림이겠지요.

이곳 바닷가 모래밭에는 바닷새들이 빽빽하게 모여 앉아 있습니다. 그 앉아 있는 일렬횡대의 무게 때문에 팽팽하던 푸른 수평선이 아래로 처져 있고, 바닷새는 사방으로 허공에 흩어져 날아갑니다. 마치 파도의 흰 포말처럼 어느새 바다는 인간을 만나러 재빠르게 움직여 오고, 바다는 인간의 세계 가까이에서, 해안에서 퍼지르고 앉아있다 다시 일어나 먼 수평선 쪽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인간의 세계는 “벌떼 같은 사람”이 사는, 소란하고 더렵혀진 세계인데, 인간을 만난 바다는 난파선처럼 떠밀려 가지만, 인간의 세계가 “물 밑 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처럼 눈부시고 깨끗할 순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건너 뛰는 이야기 같지만, 전남 담양과 충남 태안의 밤 풍경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낮보다 더 분주하게 바람에 댓잎 소곤거리는 그곳의 밤이라면, 이곳은 해가 떨어지면서 잠잠해지죠. 아마 바닷가의 지형적인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 곳에서 살다보니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며칠 못 견딜 것 같다는 식이죠. 그런 이유일까요. 큰 맘 먹고 전원생활을 택했다가도 외로움 때문에 도시로 귀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제겐 그런 것과는 관계없지만 아쉬운 한 가지는 이곳에 분위기 있는 심야 찻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늦은 시각 모든 일을 마친 사람들이 차 한 잔과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을 텐데, 그냥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태안읍내에 들려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에서 새벽녘 뽀얗게 감기는 안개를 헤치고 좁은 들길을 걷는 것은 저만의 덤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알뜰하게 키워낸 풋것들이 싱그럽기만 하고 일찍 잠에서 깨어난 촌로의 얼굴도 환하기만 합니다. 마을길을 천천히 음미하듯 돌아보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닌데, 아침밥 먹고 차 우려내어 음악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데, 마당 곁 돌담 위에 피어난 능소화 꽃대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줍니다.

저 새는 인간이 무섭지도 않고 친구처럼 생각하는지. 그럼에도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은 욕심으로만 살아왔으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거죠.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지금 이 고요가 감사하기만 합니다. 그것도 인생의 무게를 조금 버리니.

마을에 새벽까지 문을 여는 작은 찻집을 만들어 바다가 가까운 논두렁을 옆에 낀 2차선 도로 옆에 나무와 종이로 만든 입간판으로 불을 밝혀 보는데, 자그마한 백열전구 빛이지만 사방이 온통 캄캄하니 유난히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누런 한지에 ‘차(茶)와 주(酒)’라고 써 붙여놓으니 운치있게 보일 것이고, 테이블은 달랑 2개. 여덟 명쯤 앉을 수 있게 준비하고, 문 밖에 나무 테이블 2개를 더 준비해봅니다. 한쪽 벽에는 제가 소장했던 LP레코드를 가지런하게, 다른 한쪽에는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거죠. 텃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를 키워내고.

메뉴도 일정하지 않고 정체 모를 차와 음식만 아니라면 준비도 완벽(?)한 그런 공간인데, 한쪽 귀퉁이에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비어있는 벽에는 작은 대나무 그림과 난초 그림을 함께 넣어서 배치하고, 서예 작품도 걸어놓는, 작품 제목은 세심(洗心). ‘마음을 씻다’로 설명되는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밤이 깊어지니 근처 사람들과 지나가던 여행객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조그만 찻집에 마을 잔치가 벌어질 태세인데, 풀 냄새 벌레 소리와 뒤섞여 막걸리를 담은 뚝배기 잔을 부딪치다 보니 시끌벅적한 도시가 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참, 안주로는 숙성된 간재미를 약간 매콤하게 무쳐내고, 애호박 전을 곁들이면 어떨까요,

며칠 전 담양에 살고 있는 마음속의 여인과 전화 통화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 바닷가에 찻집은 어떠세요. 그런 공간이 있으면 가끔 태안에 올라가서 앞치마 두르고 도와 줄게요”라고 말했는데, 그 여인 태안에서 정착한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진정성은 모르겠지만, 슬적 웃음으로 넘길 말이죠. 그 말이 생각나서 오늘 글 꾸며 봤습니다만, 저는 흰 와이셔츠 소매를 몇단 걷어 올리고, 살짝 빛바랜 청바지에 흰 운동화 차림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겠죠. 그 여인은 아마도 흰색 라운드 티셔츠와 옆에 검은 줄이 내려진 회색 바지에 챙 둘러진 모자를 쓰고 도와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이면 준비는 끝났는데, 그야말로 희망사항인거죠.

앞으로 제가 예쁘지도 않고 마음이 맑고 고운 그 여인과 꿈꾸는 ‘음악이 흐르는 찻집’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상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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