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류수남

태안향토문화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다시 태어나고, 문화원은 일태분식(一太分食)하는 이웃이 되라. 길을 걷다가 차인 돌은 걸림돌이라 치워져야 하지만 개울을 건널 때 밟는 돌은 디딤돌로 고마운 돌이다. 그래서 똑같은 돌이라도 역할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

혈세를 지원받는 문화원과 연구소회원들은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있다면 버리고, 뒤를 돌아보라. 송충이는 갈잎은 먹지 않는다. 문화원과 연구소는 우리의 고유문화는 계승하고 보존하되, 횟수만 늘리는 다식판 행사는 지양(止揚)하고 선택과 집중에 치중(置重)하라.

그리고 회원들은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회생정신을 길러라. 또 남을 흉보기 전에 자신이 조직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반성부터하고, 주민은 누구나 행정기관에 건의를 할 수 있음도 알라.

문화원과 연구소는 향우(鄕友)나 동창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동창회나 향우회 같은 임의 조직이 아니다. 또 명함(名銜)으로 자신을 과시 하며 텃세를 하는 조직도 아니다. 지역에 묻힌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찾아 후세에 알리는 노력과 희생(犧牲)정신이 필요한 조직이다.

그래서 전, 현직들의 노고(勞苦)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누구라도 조직을 앞세워 사욕(私慾)을 채우려거나 또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이 있다면 버려라.

특히 원로들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있다면 버리자. 며느리도 늙으면 백발(白髮)시어머니가 되고, 십남매(男妹)막둥이도 늙으면 백발 할아버지가 된다.

옛부터 이웃을 잘 만나면 먼 곳에 사는 친인척 보다 좋고, 잘못 만나면 웬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잘 만난 이웃을 이웃사촌(四寸)이라 했는지 모른다. 전국의 향토문화연구소는 서산시 같이 문화원부설로 운영하는 지역이 많다. 그래서 문화원과는 한 식구다. 그러나 30여년 전에 태어난 연구소는 외톨이다.

그런데도 연구소는 최근까지 문화원부설로 알았다고 한다. 창피하기 그지없는 조직이다. 이는 매년 실시하는 태안군과 태안군의회의 행정감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문화원과 연구소는 지역이라는 뿌리가 같다보니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도 형제처럼 지낸다.

연구소는 어떤가? 조직의 나이 이립(而立=30세)을 사람나이에 비유하면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은 될 것 같다. 그런데도 자리를 못 잡고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돈다.

이유를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부평초신세는 적당히 세월만 낚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태분식(一太分食)하는 이웃을 못 만났거나 아니면 주민들로부터 버림받은 조직같다.

그게 아니면 개인 조직처럼 운영한 의심이 든다. 30년 동안 여러 군수들과 많은 실무자들이 봤을 것인데 개선이 안됐다. 이게 감독권이 있는 태안군정의 수준이다. 그래서 모두가 반성해야한다.

문화원에 묻는다. 연구소회원들이 향토사 발굴에 전념할 공간을 양보할 용의는 없는가? 문화원이 자염(煮鹽)에 신경 쓰고, 문화상품으로 선정하듯 연구소가 향토사 발굴에 신경 쓰게 도울 용의는 없는가? 그리고 태안군은 연구소를 서자(庶子)취급을 말고 홀로 설 수 있는 간판과 사무실을 마련해줄 용의는 없는가?

사무실 제공에 토를 달수도 있지만 이는 선택과 집중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리~독곶을 잇는 해상교건설은 군민들의 반백년 숙원이라면 연구소는 사무실 마련이 30년 숙원이다. 문화원이 입주한 건물은 군민의 혈세로 건축한 법적건물이다.

문화원자체 건물이나 특정인의 건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군민들과 회원들은 태안군에 기대를 한다. 연구소는 자염에 신경 쓰는 문화원같이 육쪽마늘의 고향을 찾고 태안을 홍보할 수 있는 향토상품을 찾아라. 그리고 구정(舊正)초의 황도붕기 풍어 축제를 전국행사로 키워라.

그래서 감태같은 계절 농수산물과 연계해 관광 태안을 홍보해보라. 바다는 감태와 자염 그리고 풍어축제를 낳은 어머니다. 또 연구소는 홀로서기위해 조궁즉탁(鳥窮則啄=새는 쫓기면 부리로 쫀다는..)할 자신이 없으면 존폐(存廢)에 고민하라. 그리고 태안군은 연구소가 지역에 족적을 남길 수 있게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라.

연구소에 묻는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속담을 아는가? 누구를 비판하고 성토하기 전에 자신들이 조직과 지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반성부터 하라. 사실과 무관한 비판은 텃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문(顧問)은 조직이 어려울 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知慧)를 줘야한다.

봉산개도(逢山開道)라 했다. 향토문화연구소는 30년이 넘도록 부평초신세라면 할 말이 있는가?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곁방도 없다면 존폐를 고민 하는 게 맞다. 오호애재(嗚呼哀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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