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사람의 노동력 하나만으로 자박자박 아래에서 위로 물 올리는 소리를 내며 수차는 돌아가면서 드넓은 서쪽 바닷물을 조금씩 육지로 들여옵니다. 그 물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희디흰 빛으로 정제되어 결정체인 소금으로 태어나는데 한여름의 태양과 일렁이는 바람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미료인 소금을 만드는데 더없이 귀중하기만 하기에 일렁이는 바람이 없으면 꽃은 피지 않듯이 바람이 없으면 소금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수차가 정겹게 돌아가던 모습을 어느 염전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차 대신 그 자리엔 양수기가 그 몫을 대신하고 있어 이젠 수차는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으니 문명의 발달로 보기엔 아쉽기만 한데, 그러나 양수기와 사람의 노동력을 비교해 보면 당연히 기계가 능률적인 면에서 훨씬 앞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과연 저는 이 사회에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서 태양과 바다 그리고 바람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풍요로운 태안 땅, 천일염전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장명소(수)’ 길을 걸어가면서 오늘의 환경을 생각해 봅니다. 장명소는 태안읍에서 불과 남쪽으로 3㎞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행정구역 상 태안읍 남산 2리입니다. 이곳엔 갯벌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 낙지는 물론 갯지렁이가 많아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소득원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가려면 승용차로도 갈 수 있지만 제 맛을 느끼려면 뭐니 뭐니 해도 발품으로 가는 것이 마을의 때묻지 않은 옛길과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염전을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려는 사람들은 꼭 걸어가면서 자연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읍내에서 환동마을을 지나 귀실마을을 거쳐 걷다 보면 천일염전이 나오는데, 중간중간에 확 트인 농토와 갈대도 일품입니다.

아마 생물이 모두 모여 지옥의 극기 훈련을 한다면 미생물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펄펄 끓는 뜨거운 물, 남극의 얼음 속, 식초처럼 강한 산, 산소가 전혀 없는 곳에서도 적응해 사는 미생물이 있기 때문인데, 그렇습니다. 요즈음엔 염전이 해양 미생물의 보고(寶庫)로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전은 바닷물을 저장하는 저수지, 햇볕에 물을 증발시키는 증발지, 소금이 만들어지는 결정지로 구성되며, 결정지까지 오면 바닷물의 소금 농도는 포화 상태인 3.5퍼센트에 달해 결정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결정체의 소금 농도는 이스라엘의 사해(死海)와 비슷한데, 이 호수에서는 물고기는 물론 하등생물인 무척추동물도 몇 종을 제외하고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서 사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80여 년간 연구 결과 사해에서도 높은 소금 농도를 좋아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되었으며, 1㏄당 박테리아가 2억7천만 마리라고 하니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염전에 사는 박테리아는 흔히 바닷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아니라 할로박테리아나 아키박테리아 등 아주 짠물에 적응한 종입니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박테리아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유기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유기물은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 산물에서 비롯된 것인데, 염전의 식물 플랑크톤은 마치 여름철에 적조가 발생했을 때처럼 많습니다. 결정지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플랑크톤이 듀날리엘라인데, 듀날리엘라는 바닷물과 염전의 짠물에서도 잘 번식합니다.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가 염전의 높은 염분 조건에서 적응해 사는 비결은 삼투압을 조절하는 물질을 체내에서 합성하는 것인데, 듀날리엘라는 글리세롤이란 물질을 높은 농도로 합성해 삼투압을 조정합니다. 또 염전에 사는 어떤 박테리아는 엑토인이라는 삼투압 조절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요즈음엔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이런 특이한 물질을 추출해 의약품을 생산하는 생물공학회사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염전은 해양미생물의 보고라고 말하지만 최근 염전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이곳만 해도 새우양식장으로 전환되는 등 사양길을 걷고 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노동력의 부족이 원인이겠습니다만, 이런 현실을 감안해 염전을 해양생태공원이나 나아가 염전연구공원으로 설치해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하겠지만 현재로써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지금 상태로 계속 이어지면 언제 염전이 없어질지 그것도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빛은 안타깝게도 자꾸만 줄어들고 오염으로 뒤덮여 가고 있으며, 소금도 국산보다는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세상살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요즈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겉으로만 부자이며, 속은 텅 빈 강정처럼 보입니다. 명예, 그것을 싫어할 사람 있겠습니까. 하지만 벼슬 같은 겉치장이 없어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생활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시장엘 가보면 ‘의식주’와 관계없는 것이 더 많아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인간에게 윤리의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하나도 자랑이 아닙니다. 동물은 생존할 만큼만 먹는데, 사람은 과하게 축적을 하므로 어떤 면에서는 윤리 의식이 없는 동물이 훨씬 월등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환경을 알면 멀리 내다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아등바등하며 소비하는 것들은, 거의 다 낭비가 아닐까요. 그게 다 인생과 관계가 있는데도 그것을 위해 살고 있으니 생명은 생명을 먹여야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점에서 우리에겐 ‘원죄’가 있습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환경’을 중심에 둬야 합니다. 자연도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것, 그것을 눈으로 보는 즐거움’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인간은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칠까요? 조금만 비우면 될 텐데요. 비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 해도 ‘텅 비어 오히려 가득 찬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태는, 아름다운 환경은 자꾸 멀어지기만 합니다. “빛은 스러져 가면서 아름다움을 꿈꾼다”는 말을 가슴 속 깊게 생각하면서 이 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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