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비군 태안읍대장 조병석
전)예비군 태안읍대장 조병석

조선이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식민지가 된 후 우리 선조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비폭력, 비무장으로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등으로 독립군이 청산리 대첩과 같은 무장 독립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중국 상해 등 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운동하며, 광복군의 국내진공 작전 준비 중에 실행이 되지도 못하고 1945년 8월 외세에 의한 광복을 맞이하였다. 일본제국주의가 1941년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데도 독일과 같은 분단이라는 천벌을 받지 않고 약소국 조선이 광복과 동시에 전 세계 공산화에 혈안이 된 소련과 미국에 의해 남북분단이라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소련은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기 위해 본명이 김성주인 가짜 김일성을 내세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곧바로 남침준비를 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 하였다.

6.25전쟁 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적화 통일을 하기 위한 적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군대 15만 명, 육·해·공군 무기, 탄약, 장비 등 지원하고 남침계획을 승인한 스탈린의 소련,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의 중국인민해방군 100만 명이 피비린내 나는 3년간의 공산주의 국가의 주인공이 되었다. 공산권 의료지원국은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6개국이고 몽골과 동독이 물자 원조를 하였다.

아군인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은 6.25개전 초기 10만 명에서 1953년 7월 종전 시에서는 65만 명의 국군이 전쟁의 주인공이 되었고, 유엔군으로 전투부대가 참전한 16개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남아프카공화국, 프랑스, 터키, 그리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며, 의료지원국가는 5개 나라로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가 파견되어 부상병을 치료해 주었다. 물자 및 재정지원국은 서독, 자유중국 등 39개 나라이고, 지원의사 표명국은 브라질 등 3개 나라이다.

한반도의 작은 공간에서 전 국민과 25개국의 200만 명 가까운 군인이 치열하게 치른 전쟁도 흔치 않았다. 당시 세계의 독립국가 93개국 중에서 60여개국이 대한민국에 병력이나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전쟁이고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이념에 의한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구분하지 않고 참여한 비참하고 소모적인 승부가 없는 무승부의 전쟁이 1953년7월 27일 1129일간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북분단으로 우리민족이 큰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군은 연인원 200여만 명이 참전하여 전사(부상으로 사망포함) 137,899명, 부상450,742명, 실종 24,495명, 포로 8,343명이며, 미국은 연인원 1,789,000명이 참전하여 전사36,940명, 부상92,134명, 실종3,737명, 포로4,439명이며, 영국은 연인원 56,000명 참전하여 전사1,078명, 부상2,674명, 실종179명, 포로4,977명이며, 호주는 연인원 8,407명이 참전하여 전사339명, 부상1,216명, 실종3명, 포로26명이며, 네덜란드는 연인원 5,322명이 참전하여 전사 120명, 부상645명, 포로3명이며, 캐나다는 연인원 25,687명이 참전하여 전사312명, 1,212명이 부상, 실종1명, 포로32명이며, 뉴질랜드는 연인원 3,794명 참전하여 전사23명, 부상79명, 실종1명이며, 프랑스는 연인원 3,421명이 참전하여 전사262명, 부상1,008명, 실종 7명, 포로12명이며, 필리핀은 연인원 7,420명이 참전하여 전사112명, 부상229명, 실종16명, 포로41명이며, 터키는 연인원14,936명이 참전하여 전사741명, 부상741명, 부상2,068명, 실종163명, 포로244명이며, 태국은 연인원 6,326명이 참전하여 전사129명, 부상1,139명, 실종5명이며, 그리스는 연인원4,992명이 참전하여 전사192명, 부상543명, 포로가 3명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연인원 공군만으로 826명이 참전하여 전사34명, 포로8명이며, 벨기에는 연인원 3,498명 참전하여 99명이 전사, 336명이 부상, 4명 실종, 포로 1명이며, 룩셈부르크는 연인원 83명이 참전하여 2명이 전사, 13명이 부상하였으며, 콜롬비아는 연인원 5,100명이 참전하여 163명이 전사, 448명이 부상, 포로28명이며, 에티오피아는 연인원 3,518명이 참전하여 121명이 전사, 536명이 부상하였고, 노르웨이는 연인원 623명이 참전하여 3명이 전사하였다.

참전국별 특이사항으로 미국은 6.25전쟁 발발일 당일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참전이 결정되었고 유엔을 소집하여 침략자를 규탄하고 유엔군을 결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은 물론이고 한국군의 무기, 탄약, 장비 등 일체를 지원하고 전후 복구와 한국군 현대화에도 많은 부분기여를 하였고, 다수의 장군의 아들들이 참전하여 전사하고 24사단장 딘 소장은 장군으로 포로가 되어 휴전 후 송환되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트루먼 대통령과 갈등으로 해임되었던 부분과 중공군 참전을 예측하지 못하고 격퇴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낙동강전선에서와 같은 대규모 공습으로 청천강이북에서 중공군을 무찌르는 대첩을 세웠으면 통일이 되었을 수 있었으며, 자신은 6.25전쟁 승리의 영웅으로 아이젠하워가 아닌 맥아더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프랑스는 6.25전쟁에 보병대대급이 참전하기 위해 58세의 몽클라르 중장의 장군이 스스로 계급을 낮추어 중령의 대대장으로 활약하여 돋보이는 인물이다.

베네룩스 3국인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유럽의 작은 나라들로 수없이 외침을 받은 역사로 인해서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 기꺼이 전투병을 파병하여 자유수호를 하여 주었던 나라이고, 룩셈부르크는 당시 인구가 20만 명인데 1개 소대 43명을 편성하여 인구비례로 보면 가장 많은 전투병력을 파견한 나라이다.

아시아에서 필리핀과 태국이 참전이 당시 외국 전쟁에 보병대대급 이상을 파견하여 도운 점은 그 당시의 국력이 얼마나 좋았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프리카에서 지상군을 파견한 에티오피아는 왕실근위 부대인 대대급을 파견하여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함이 전사에서 돋보이고 포로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춘천에 있는 참전비 준공 시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직접 참석하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의료지원국 중 스웨덴은 전장의 부상병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치료해 주었으며 전후까지 적십자 병원을 설립해 주고 한국을 떠났다.

휴전 후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민주화 된 사회, 경제분야 세계 10위권 내 드는 잘 사는 대한민국을 이룩한 공은 6.25전쟁 시 공산화 적화통일을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킨 고귀한 분들을 추모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6.25전쟁 71돌을 맞이하여 보자.

6.25전쟁에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전사하고 부상하고 실종, 포로가 되는 호국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리고,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하여 희생되신 분들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고마움을 후대에 까지 전해야 함의 우리의 사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념에 의해 분단으로 인해 6.25 전쟁 시 좌, 우익으로 갈라져 아무 죄없이 인민군, 국군, 경찰, 유엔군에 희생되신 민간인 희생자 분들도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해야 함은 후손된 우리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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