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약간은 허탈감이 듭니다. 먼 여행길에서 돌아와 생각한건 지구는 아직 건강하다는 생각인데, 그럼에도 돌아보면 우리 인간만이 과욕을 부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탐욕과 성냄이 앞선 채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무시하면서, 물론 저도 그랬음을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남, 이 단어에서 저는 정중하게 숙연해지고 싶습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지만 말을 섞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음입니다. 하여, 그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 하는데 그것 또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에스엔에스가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모든 지식은 그 속에 있으니 저같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고 기계의 힘을 빌려 쉽게 따라가는 것에 그저 안타까움입니다.

느림의 미학,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하면서도 왜 그렇게 서두름인지. 슬로시티, 과연 우린 달팽이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지금 세상은 느림의 미학은 없어 보입니다. 느리다는 것,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선현들의 지혜인데, 우리 서두르지 맙시다. 진중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죠. 힘들고 지칠 때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인데, 「벼랑 끝에도 분명 꽃이 핍니다」를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저에게도 정말 환한 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며 지금 초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지 위로 불어오는 산듯한(?) 바람이 마음속의 변덕처럼 수시로 차가움과 따뜻함을 오가지만 자연의 법칙을 아는 나무들은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개선장군처럼 가지의 끝에서부터 색을 바꾸고 있습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것이 좋았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이 계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날들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흘러가는 게 세월이라지만 쉽게 살아갈 순 없습니다. 나름 격동적으로 살아가도 쉽지 않고 마음 내려놓고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살아가는지’ 하지만 자신을 알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대체 삶의 길목은 어디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하룻밤은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 건지. 벼르고 별러 떠난 여행길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요.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도무지 앞에만 있는 것인가? 어금니 깨물어도 아픔이 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보일는지. 인생살이 조금씩 더 다가가려 하는데 그것이 살아갈수록 어려운 걸 어찌하나요. 주어진 일에 충실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 땐 조금씩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지만 쉽지 않음입니다.

‘나는 나다 나는 남이 아니다’라고 되뇌이며 결코 더듬을 수 없는 세상살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기에 고민과 번민 속에서 보내는 겁니다. 자유로운 여행. 정말 자유로운 여행이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유로운 여행은 없습니다. 단언하면 외로운 여행이 있을 뿐이지요.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그럼에도 여행이란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우린 떠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더군다나 여행길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을 겁니다.

2013년 10월 25일이었습니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2007년)로 지정된 전남 담양 창평면 삼지내 마을을 여행하기로 하고 짐을 꾸려 그곳을 찾아 7일간의 안식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삼지내 마을은 둘러볼 것이 없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건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입니다.

운명이랄까. 창평면사무소 앞 달팽이 가게에서 우연히 뜨개질을 하던 청초한 여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기만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청년(?)은 그녀를 보고 괜히 설레이기도 했고 다시 그녀를 보고 싶기도 했으니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하지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나름 배려였지만 솔직히 용기가 없었던 거죠. 하긴 그녀의 사정도 전혀 몰랐었기에,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이었습니다. 물론 언제까지(?) 지켜질지...

이번에 가사문학 완결편 논고를 공부삼아 담양으로 떠난 건데, 내심 그녀도 만나보고 싶어 저녁약속을 권하니 쾌히 승낙해 주더군요. 나그네의 외로움을 아는 것인지 초여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조심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여성이 화장도 하지 않고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는 자신감이고, 하나는 귀찮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8년 만에 화장기 없이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 살얼음 깨치듯 옅은 미소는 아직도 소녀처럼 보였고, 그 나이(?) 자신있게 소화해낸 청바지차림, 작은 목소리였지만 한결같이 당당하고 솔직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매력까지. 자신은 이젠 늙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겸손이었습니다.

꾸준한 운동 때문인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보여지는 모습이 그대로여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녀가 있어 창평 슬로시티는 견고해 보였습니다. 「고」 고고해 보이지만. 「수」 수수한 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경」 경이로운 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부연하면 초롱하고 흔들림 없는 맑은 눈동자, 희고 고운 작은 손길, 저녁으로 소주를 곁들였는데, 소주잔에 7홉쯤 스스로 따라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은 인간적으로 귀엽게 보이더라구요. 멋있게 취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허락해 준 그녀와 헤어지고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저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가 왜 이리 짧고 아쉬운 건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붙잡을 수 없는 그녀와의 현실, 그곳에서 더 머물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세상살이는 그렇게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더군요. 진한 아쉬움, 그래 청춘은 붉은빛도, 사랑은 진줏빛도 아니듯, 헤어짐 뒤엔 또 만남이 있겠지 생각하며 편한(?) 마음으로 대해준 그녀를 저는 한참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날 ‘식영정’과 ‘소쇄원’에 들려 ‘선비와 대나무’ 논고 공부와 사진촬영을 마치고 조금은 가볍게 담양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필 이때 창평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이팝나무 꽃은 왜 그리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 가슴 심란하게 하는지...

※태안군 전체가 2019년 ‘슬로시티’로 지정되었지만, 일찍이 ‘슬로시티’ 선배인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은 배울 것이 많아 반면교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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