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화려했던 그 봄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젠 봄이 없습니다. 잠깐이지만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실핏줄처럼 남아 있던 그 봄조차 서서히 물러가려고 하네요. 태안은 봄인가 싶으면 여름입니다. 왜냐면 지형적인 영향 때문인데, 봄에 입으려 했던 옷가지도 제대로 챙겨 입어 보지도 못한 채 벌써 여름의 문턱인 입하(立夏)입니다. 가까이 있는 푸른 바다가 생각나는군요. 기온이 이십 삼 사도를 오르내리니 활짝 피었던 꽃들도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처져 있는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위대한 자연의 순리, 그 오묘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의 길은 굽어 있다’는 강렬한 감정이 맥동하는데, 자연의 길은 어디 한 군데 잘라 내거나 가로막지 않고 또 빼먹고 가지도 않습니다. 마치 산과 들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굽어서 이 곳 저곳, 이 마을 저 마을 둘러 살펴 가는 거죠.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그렇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았던 바다도 그랬습니다. 급한 경사에서는 반드시 몸을 한 번 비틀어 길을 내고, 편안한 길에서는 몸을 넓혀 순해지는, 아니 스스로 마음이 급해지는 곳에는 꼭 한 굽이를 만듭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느리고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골고루 다 함께 갈 수 없노라 가르치는 듯합니다.

 

자연의 길 ‘그 굽은 곡선’은 생명의 모습인데, 제가 가야할 길도 그 굽은 곡선이라 생각합니다. 효율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함부로 뻥 뚫는 길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아이 저 아이 모두를 데리고 가는 길에 대해 늘 염려했을 것이지만, 바닷가 ‘곰섬’(태안군 남면 신온 3리) 어촌 마을에 들어가는 길이 말해 줍니다. ‘생명의 길은 굽은 길’이라고. 내려놓은 생각으로 버스편으로 나서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목적지가 이곳은 아니었는데, 처음 가보는 농로길을 가다가 다다른 곳이었습니다. 점심으로 김밥 두 줄과 사이다 한 병이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몸은 조금 고달팠지만, 제 느낌으로 이런 생각을 남들에게 들려줄 힘이 생겼으니 하는 말입니다. 더 장관이었던 것은 논길-산길-해안길을 따라 도착한 ‘곰섬’의 하늘 풍경인데, 땅의 껍질이 일제히 하늘로 솟아오르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순간 사방으로 흩어지며 갈매기 떼의 군무가 시작되고, 누군지 어디서부턴지 알 수 없지만 그 많은 무리가 순식간에 한 쪽 방향으로 유선형의 거대한 편대를 이룹니다. 다시 방향을 바꾸며 흩어지고, 치솟으며 서너 개의 편대로 나누어지더니 다시 하강하면서 합쳐지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서 있는 땅이 기우뚱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갈매기의 생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제 눈에는 그 모습이 그저 장엄한 군무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술, 어떤 지휘체계로 저런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 낼까? 궁금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분명 제 몸 속에 기록되어 있는 운명을 느끼고, 공진하고 동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춤일 것이라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쳤습니다. 순간 서 있던 모래땅이 다시 한 번 기우뚱하며,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하나의 편대를 이루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연이어 그 다음으로 이어지며 어딘가로 날아갑니다.

 

갈매기한테 느낀 건 군살을 올리지 않고 날아갈 만큼의 에너지만 얻고 날다 힘이 모자라면 다시 갯벌에서 먹이를 찾으며 욕심 부리지 않는 지혜를 배웠고, 곧 다가올 산란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갈매기를 보면서 부부와 모성애를 생각하게 하는 건 당연함인지도 모르구요. 갈매기들은 선회하고 흐르기 때문에 아마도 나그네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잠시 ‘곰섬’에 간 것처럼 그들도 잠시 그곳에 왔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선회하고 흐르기 위한 삶의 형태는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밖으로 나서면 바다요. 꽃의 향연입니다. 실바람에 갯내음과 꽃향기가 진동하는, 지형이 포도송이 닮은 태안 땅. 온갖 생명이 태동하는 이 계절. 바다 생명의 보고 남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곰섬’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닻을 내린 녹슨 통통배, 해안에 늘어선 펜션 몇 채 등이 언뜻 보기엔 ‘한적’한 어촌(?)입니다.

 

그러나 썰물이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곳인데, 고개 너머 서쪽으로 끝간 데 없는 진흙 갯벌이 남아 있어 반갑기만 했습니다.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갈 줄을 모르는데, 풍부한 갯벌에 먹이가 많기 때문이지요. 갈매기나 사람이나 양식은 대단히 중요한데, 갈매기에겐 갯벌이 꼭 필요하고 사람에게도 갯벌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바다가 메워지고 갯벌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갈매기나 사람이나 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텐데 그 영역이 좁혀지고 삶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아름다운 세상일텐데...

 

아직까지 ‘곰섬’은 원석같이 때묻지 않은 곳입니다. 원석 같은 이곳을 다듬어(개발) 놓는다면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될텐데, 자연 그대로인 ‘곰섬’은 그 자체가 매력이건만, 그러나 이 외진 곳에도 여지없이 개발의 바람은 불어왔습니다. 지금 원석을 깎아 보석을 만든다고 허둥대지만 보석이 되기 위해 깎아 내는 부산물은 어찌할 건지. 우선 보기에는 가공된 보석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래 두고 보기엔 원석이 더 좋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즈넉이 보이는 바다 끝이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곳, 따사로운 햇살은 해당화 잎이 파릇이 돋아나는 이곳에 아무 생각 없이 파묻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곳, 이곳은 ‘곰섬’입니다.

 

푸른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있고, 아름다운 꽃이 있고, 꿈결 같은 사랑이 있고, 아스라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내일의 추억이 되겠지만. 지금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를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낭만으로, 때론 그 비가 귀찮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 비 내리는 풍경조차 낭만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질곡으로 얼룩진 삶의 언저리에서 보면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파종을 생각한 농부에겐 꿀 같은 비가 되겠지요. 오늘 ‘곰섬’ 언저리 바닷가에서 생각한 것을 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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