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부소장 맹주완

'긴 검을 삼키는 일’은 서커스 예술가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인간의 식도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의 직관적 상식을 뛰어넘는 엄연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포와 운명의 본능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모하게 시도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유한한 인간의 삶이 빛나는 것은 죽음 때문이고 어떻게 죽을 것이며, 죽어서도 타인에게 기억되는 존재로서 향기를 낸다면 더없이 멋진 일이겠다.

인간 변연계의 뇌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행동을 통제한다고 하는데, 과연 스스로 필멸의 세계로 들어갈 자가 몇이나 있을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임금도 도망치는 마당에 회피본능을 억제하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은 범인(凡人)들로선 감내하기 힘든 결정이다. 하지만 430여 년 전 이순신은 분연히 싸움에 임했고 7년간의 전장(戰場)에서 그의 삶은 장렬하고 숭고했다.

회한(悔恨) 없는 삶은 가능할까. 공자는 “아침에 도(道)를 만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설파하였고,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자 “죽음은 영원한 잠”이라고 의연해 했고, 난세의 간웅(奸雄) 조조는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북치는 소리가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머리를 돌이키니 해가 넘어가려 하는구나.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하던데,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꼬.” 사육신 성삼문의 유언이다.

“세자는 몸이 허약하니 상중이라도 꼭 고기를 먹도록 해라.” 이방원이 세종에게 남긴 유언이다.

“전쟁이 급하니, 내 죽음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노량해전 전사 직전 이순신의 유언이다.

개인의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장례식이 아니라 유언일 듯싶다. 이순신은 죽는 순간까지도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한다)의 의미를 부하들에게 되새겨 주고자 하였다.

신화적 서사에서 불멸의 명성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영원한 시간으로 건져 올리는 가장 유력한 방법 중에 하나였다. 찬란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생의 절정에 죽는다면, 그는 영원히 서사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다.

타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음이 영웅들에게 요구된 삶의 원리였다. 승리의 세계를 상상의 힘으로 창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직면한 현실은 신화적 환상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한 메시아적 사명을 요구했다. 마음을 내려놓은 백의종군 길과 그 길에서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 명량대첩 후에 상명(喪明)과 단장(斷腸)의 고통보다 더한 고향 아산에서 들려온 아들 면의 전사소식은 역시 범인이라면 분기탱천할 일이었으나, 개인적 복수심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위해 항상심(恒常心)을 유지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는 끔찍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또 다른 관문이 있음을 암시한다.

종교적인 내세관에 입각한 것이지만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나는 세상의 소임을 다하고 돌아가겠다는 굳센 의지와 결행의 마음을 갖게 한다.

어느 시인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과업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아산에서 4월은 현충사 옛집의 홍매화처럼 이순신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는 달로써 의미 깊다.

우리의 삶이 지루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은 자연의 마지막 질서, 내 스토리의 마지막 종결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순신처럼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기억되는 존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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