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바람을 벨 듯 서슬 푸르던 초장 각오가 저마다 어떻게 익어가고 있는지. 여린 겨울 햇빛은 궁금한 모양으로 비추입니다. 이즈음 겨울산의 주인은 바람인데, 산길에 내려 앉았던 나뭇잎들, 잔바람에도 놀라 몸 뒤집으며 푸르던 숲의 기억을 서걱서걱 펼쳐 보입니다.

맨살 드러낸 나무들이 찬바람에 마음을 정갈하게 헹구는 곳. 화려한 눈꽃 잔치를 위한 새 단장의 무대입니다. 초겨울 산행은 그래서 무엇을 보러 가기보다는 들으러 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인적 뜸한 산길에서 나뭇잎들과 바람이 주고받는 고즈넉한 대화를 듣는 일. 산길에 밟히는 낙엽이 푸짐하고, 천 년 고찰의 그윽한 풍경소리가 있으며, 눈 쌓여 그 소리들이 법당의 종소리보다 더 눈부시게 울려옵니다.

퇴락한 흥주사 만세루(興住寺 萬歲樓: 태안읍 상옥리)에 걸터앉아 눈을 감으니 천 년 세월의 노두(露頭)를 밟고 한 영혼이 다가와 가만히 입숨을 불어옵니다. 이 숨결을 받아 이제 모든 것은 짙푸르고 화사하게 다시 살아나는데, 저 답답한 다박솔은 백학 노니는 낙락장송이 되고. 말라붙은 계곡엔 옥계수 넘쳐흐르며, 시름 들녘엔 낭자한 풍년가 소리, 그리고 잡초 덮인 초당(태안읍 상옥리: 가영현 가옥) 길목엔 새 세상 꿈꾸며 찾아 드는 젊은 선비들의 행렬이 보이는 듯 합니다.

오늘은 차(茶)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차를 마시는 일은 우리 전통 생활의 중요한 한 자락이었습니다. 그러나 “차 한잔 하자” 는 말이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자는 뜻으로 굳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녹차를 마시며 우리 전통차를 접한다고 여길 겁니다. 이른바 ‘다도’ 운운하며 ‘예의’를 갖추어 차를 들지만, 녹차가 일본의 전통차요, 그 다도가 일본의 예법임을 알고 마시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차는, 우리 차의 다도는 무엇이고, 우리 차에 깃든 정신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녹차는 단언하면 일본의 차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전통차인 양 착각하며 마시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녹차가 사무라이 문화의 하나인 ‘다도’ 라는 허울을 쓰고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는 우려 할 만합니다. 우리 전통차는 차나무와 제조방법 등에서부터 일본·중국의 차와는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로 녹차는 찐 차, 중국차는 발효차이며, 중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홍차가 대표적인 발효차입니다.

우리 차는 찻잎을 덖어서 만드는 덕음차이며, 맛과 향에서도 분명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녹차는 풋내·비린내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에서 형성된 차입니다. 반면에 기름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향이 강한 차를 선호합니다. 우리의 전통차는 강한 맛이나 향과는 거리가 멀며, 은근하고 깊은 향과 구수한 맛이 특징입니다. 이런 차이점은 문화의 뿌리가 다르듯이 차나무의 뿌리부터가 서로 다른 데서 비롯됩니다.

주요 차나무로 인도 등지에 분포하는 아삼종과 중국에 퍼져 있는 중국종이 있는데, 우리 차나무는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들여왔습니다. 그것이 중부 이남에 퍼져 토착화 된 것인데, 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찻잎이 아니라 뿌리입니다. 뿌리가 찻잎의 질을 좌우하는데, 우리 야생차나무의 뿌리 길이는 놀랍게도 땅 위에 솟은 나무 키의 3~4배에 이릅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향과 맛은 그 깊은 뿌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일본의 차나무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뿌리를 거세시킨 ‘야부기다 라는 차나무 종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뿌리로 갈 양분을 잎으로 돌려 차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여기에서도 일본인들의 간교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생차 나무는 7~8년을 자라야 찻잎을 따지만, 야부기다는 3년이면 족합니다. 최근 일본에서 녹차 수요가 줄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인데, 일본에서조차 “아부기다가 일본차를 망쳤다” 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일부 강습소나 다도 모임 등에서 행해지는 다도라는 것을 보면 순 일본식으로, 우리 전통과는 관계없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화장 짙게하고, 한복 차려 입고, 허리 굽혀 절하며 마시는 다도는 국적 없는 몰지각한 행태입니다. 일본의 다도란 것이 메이지유신 때 차 마시는 일을 만들어 낸 것인데, 일본 차는 찻물 색깔도 녹색이고 풋내가 나는 반면, 다갈색에 구수한 맛이 나는 우리 차와는 다릅니다. 초의 선사는 차 마시는 일에 대해 말하기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맑고 깨끗한 생각으로 마셔라. 그러면 다도는 다 했느니라” 했습니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유연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나누며 하는 대화는 한층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찻물을 끓이고 차를 따라 나눠주는 이를 팽주(烹主)라고 하는데, 차를 아는 이들은 팽주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차를 따를 때 번져 오는 첫 향기를 팽주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죠. 물론 차를 나눠 주는 기쁨도 놓치기 어렵구요.

조선 중기까지 궁중에선 다방(茶房)을 설치하고 차를 다뤘습니다. 가정에선 차례상에 차를 올려 왔으나 조선 중기가 지나면서 차 대신 술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풍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도 절집(山寺)에서는 차를 밥 먹는 일처럼 일상적으로 마신다는 것입니다. “다반사(茶飯事: 국어사전에는 ‘실수를 다반사로 여기다’ 했습니다만 ‘자주 차를 마시다’ 가 옳은 것 같습니다)” 란 말이 그것입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타고난 성정대로 차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다도(茶道)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보면서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께 2021년 辛丑새아침, 감히 건강과 평화가 깃드시길 바라면서 인사로 대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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